- 윤정욱
- 조회 수 2188
- 댓글 수 2
- 추천 수 0
<달래를 먹으면>
달래를 먹으면
봄이라도 어서올까
아내를 졸랐더니
아내가 무심히 달래를 무쳐주네요
국수처럼 달래를 마시는 나의 모습에
옆에 있던 진짜 봄이
활짝 하고 미소 짓네요
어느새 진짜 봄이 찾아왔나 봅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집에서 걸어 가기 편한 OO마트로 향했다. 마트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내가 즐거워서라기 보다는 아내가 장을 보는 걸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와 함께 장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특히 아내와 다툴 일이 없고, 해야 할 청소나 빨래가 밀려있지 않은 날 느긋하게 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장을 본다고 해 봐야 둘의 역할은 정해져있다. 나는 카트를 끌고 다니며 아내가 고르는 것을 담는다. 메인 요리 하나와 찌개 하나를 함께 정하면 아내는 집에 남은 반찬과 재료를 감안해 필요한 것들을 고른다. 나는 그걸 또 담는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활용한 치킨 마요 덮밥에 설날에 받아 둔 어묵으로 끓일 어묵탕이었다. 아내는 홍길동처럼 이곳 저곳을 뛰어 다니며 필요한 재료를 담는다. 아내가 나의 의견을 물어보면 나는 여느 남편과는 달리 성심껏 이런 것이 좋겠다, 저런 것이 좋겠다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물론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도 평화롭게 우리의 장보기가 끝나는 듯 했다. 그 때 였다. 나는 문득 한 아저씨의 장바구니에 들린 봄나물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달래’였다. 쌉싸름하면서도 무침으로 무쳐서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내가 좋아하는 나물이다. 벌써 내 입에는 군침이 반쯤 돌았다. 나는 바로 아내에게 달래 무침을 해달라고 졸랐다. 평소에 장을 볼 때는 제발 맥주 한 병만 넣자고 우기는 나를 달래며 요리조리 피해 다니느라 바빴던 아내는 의외라는 눈치였다. 만들어 본 적이 없다며 자신 없어하는 눈치였지만 아내는 이내 달래 반 단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뒤로 과자 몇 개를 더 담고 또 무언가 더 산 것 같지만 나는 뭐를 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아내는 장 본 것들을 정리하고, 나는 빨래를 돌렸다. 이제 우리는 서로 불평하지 않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안다. 오늘은 왠지 둘 다 기분이 좋은 날이다. 아내는 마트에 가기 전에 미리 불려둔 잡곡 쌀을 다시 한번 씻어 밥을 안치고 그 사이 나는 청소기를 돌린다. 탕탕탕 도마를 치는 소리가 언뜻 들리고, 간을 보려고 후루룩 맛을 보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 사이 밀린 드라마를 보며 빨래를 갠다. 빨래를 다 개어 갈 때 쯤 드디어 저녁상이 뚝딱하고 완성이 되었다. 육수 팩으로 간을 맞춘 어묵탕도 좋고, 메인 요리인 치킨 마요 덮밥도 좋았지만,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달래무침’이었다. 그것도 그냥 달래 무침이 아니라, 무려 아내가 처음으로 직접 만든 달래 무침이었다. 맛이 심심하다는 아내의 걱정스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간이 세지도 않고 심심하게 맛있었다. 고소하면서 짭쪼롬한 치킨 마요 덮밥 한 입을 먹고나면 반드시 그 뒤에는 알싸한 달래무침 한 입으로 입을 헹궈줘야 했다. 둘의 궁합은 너무 완벽했다. 그 뒤로도 나는 달래 무침을 마치 국수 먹듯이 먹었다. 아니 마셨다. 후루룩 후루룩 소리까지 냈던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내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의 입맛이 조금씩 닮아가는 만큼 깊어지는 부부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있을까. 기분이 좋아진 나는 후루룩 후루룩 하는 소리가 일부러 더 내곤했다. 행복이 별다른 것이 아님을 또 한 번 느낀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씨익 하고 웃는다. 참 예쁘다.
그 사이 세탁기에서 빨래가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아내는 바로 빨래를 가져 와서는 널기 시작했다. 서둘러 밥을 다 먹은 나는 바로 일어나 빈 그릇을 들고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동안 우리 집은 타악 탁 아내의 빨래 너는 소리와 나의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 하는 소리로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