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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6일 11시 57분 등록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성은 아름다운 여신, 요정, 인간이다. 그들은 아름다움으로 인해 고충을 치르기도 하고, 그들을 선택하는 남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스퀼라, 메데이아, 아리아드네는 사랑에 눈이 멀어 부모를 배신하지만 결국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버림 받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한다.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악한 여자로 등장한다. 뷔블리스 등의 아버지나 오라버니를 사랑한 여성은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신의 경우 근친간의 사랑과 결혼이 많이 그려지고 있지만 인간은 이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듯 하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자영웅은 테게아의 여걸이자 뒤에 륀카이오스 숲의 자랑거리라고 불리게 되는 여전사 아탈란테다.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는 당시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암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2011.4. ‘유재경의 리뷰 중에서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review&search_keyword=%EB%B3%80%EC%8B%A0&search_target=title&page=3&division=-841982&document_srl=113604 )

 


그녀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변신이야기>로 그리스로마신화의 원액을 접하며 나 역시 분개하고 있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로부터 수천년 세월이 흘렀건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이 느껴지는 현실이었다.


 

아주 안타까운 것은 특별한 능력과 지혜를 가진 여자들이 스스로 영웅의 길을 나서는 게 아니라 영웅의 조력자나 여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보낸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누군가를 죽이고 괴롭히는데 사용하는 점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마녀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녀도 버림받았다. 매우 안타까웠다.

 

2012.4. ‘권윤정의 리뷰 중에서

(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review&search_keyword=%EB%B3%80%EC%8B%A0&search_target=title&page=2&division=-841982&document_srl=301139  )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구조야 그렇다치더라도 여성들 자신들은 왜 그런 태도를 고수했던 걸까? 뿌리깊은 문화적 관성인건가? 아니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인가? 어쨌거나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느냐 여부를 떠나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는 그녀들이 안쓰럽고 속상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 <영웅이 아니라 조력자인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8년 전 연구원 수련 1년을 통째로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바쳤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족이란 이름의 희망 별자리

 

요즘 부쩍 누군가의 누가 되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나를 움직인다고 믿었던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실은 누군가의 누가 되어주고 싶다는 열망의 마그마가 굳어진 작은 화산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열망이 깊어질수록 과연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는 할까? 하는 의심 또한 깊어져갔다. ‘36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했구만...대체 난 지금껏 누군가의 누구였단 말이냐? 나에겐 애초에 그들처럼 살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닐까? 그래도 그렇게 살고 싶다면 뭘 얼마나 더 노력하고 애써야 한단 말인가?’...하며 심각하게 반성과 회의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몸서리 쳐질 만큼 서늘하면서도 후끈한 무엇이 등골을 타고 전해졌다. ~! 나는 창훈이와 서영이의 엄마지! 내 남편의 아내지! 나는 이미 그렇게나 부러워하던 누군가의 너무나 특별한 그 누구였구나. 나는 이미 그렇게나 기다리던 기회를 넘치도록 누리고 있었구나. 문제는 이미 찾은 별을 알아보지 못하고 먼 곳의 별만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이었다.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이 내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꿈을 펼치려는 내 발목을 잡는 덫이라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선 안 된다고 수없이 나를 타일렀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선 그래도 역시 피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며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나 부담스러워하던 엄마와 아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현명한 조력자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내가 원하는 누군가의 누구가 역할이란 그릇 자체가 아니라, 그 그릇을 가득 채우는 충실한 내용물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아이들의 엄마, 남편의 아내라는 그릇부터 즐겁게 채워보는 건 어떨까? 만약 이 과정을 즐길 수 없다면 누군가의 누구가 되고 싶다는 꿈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혹 운이 좋아 원하는 그릇을 갖게 된다고 해도 기꺼운 마음으로 그 그릇을 채울 수 없다면 그릇이 크고 멋질수록 더 단단하게 나를 옥죄는 구속이 되지 않을까?

 

꿈은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꿈으로 향하는 길은 바로 내 곁을 지나고 있다. 내가 현실에서 수행해야하는 지루한 의무가 사실은 나를 내 꿈으로 데려다 줄 마법의 양탄자이자, 행복한 나를 만끽하기 위한 기초체력단련 수련코스였던 것이다. 내게 이미 수련장이 주어져 있음에 감사하고, 그 수련장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음에 또 감사한다. 어렵게 찾아낸 내 곁의 소중한 세 과 함께 밤하늘을 밝히는 아름다운 희망별자리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2010.11 연구원 칼럼 중에서

 


이 글을 쓴지도 7년이 넘은 오늘, 다시 한번 그날의 깨달음이 축복이었음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또 한번의 타협일 뿐인거 아니냐고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추동하던 영웅의 욕망을 버리고 세상이 강요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선택의 보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오늘 여기서 누리는 충만함이 심상치가 않다. 그러고 보니 굳이 作家로 살 이유가 없다는데도 기어코 스스로에게 지면을 허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욕망을 한 몸에 품을 수 있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욕망들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풀어놓게 될 모든 이야기 구슬들을 꿰어줄 핵심꿰미다. 궁금한 사람은 얼른 자리를 맡아두는 것이 좋을 거다. 3천년 묵은 질문이니 청중을 헤아리기가 어려울테니까.

 

! 잠깐! 그러나 듣고자 하는 이들이 동서고금에서 몰려올까봐 너무 겁먹지는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한 때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인들이 가정의 수호여신인 베스타(그.헤스티아)를 국가의 수호여신으로 섬기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테니까. 언제어디서고 질문을 품고 있던 자들은 답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답을 알아볼 눈과 담아들을 귀였을 뿐. 부디 여러분의 눈과 귀가 그대들의 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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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12:36:48 *.130.115.78

7기 유재경, 8기 권윤정 연구원님

영감을 주는 귀한 리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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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13:48:22 *.124.22.184

한 가지 질문에 이리 오래 매달릴 수 있다니... 대단해요. 전 집중과 성취테마가 있어 하나에 그렇게 오래 머물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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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3:08:20 *.130.115.78

저도 집중이 제1테마예요.


연구원 지원 당시 기질적 약점으로 '실증을 잘 내는 기질'을 꼽았을 정도로 단기 프로젝트 선호형이었던 사람이었는데...

이리도 오래 한 질문을 물고 늘어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일거예요.


연구원 과정을 통해 저를 들여다보면서

그냥 건너뛰기엔 너무나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구요.  


그나마 다행은

이젠 완전 깜깜하고 막막하던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나간 듯 하다는 거. 

고마운 일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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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9:47:57 *.215.110.24
남들이 모두 똑같이 보는 고루한 신화로부터 아무도 보지 못하는 미옥선배님만의 신화를 찾아내신 건 아닐런지요! 조력자, 영웅의 길 모두 잘 꿰어나가시길 응원합니다~^^ 해피맘도 자기 인생의 CEO도 모두 이루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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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8 12:25:23 *.130.115.78
응원 고마워요~^^

각자의 신화속으로 풍덩 빠져들 그 날이 기대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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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1 07:10:11 *.48.44.227

조력자와 영웅은 결국 하나가 아닐까요?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조력자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니까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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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3:53:41 *.130.115.78

역쉬 연륜!! 


이제사 가까스로 이걸 눈치채고 이리도 큰소리 뻥뻥치고 있답니다.

그래도 완전 자랑스럽다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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