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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2일 22시 39분 등록
"나는 젊어서부터 글을 쓰기로 작정을 했던 사람이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전장(베트남전쟁)의 위험속에서도 거의 강박관념이었다.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행복한 사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여생으로서의 삶을 위해서였다" - 황석영

 나는 개인적으로 SNS를 하지 않는다. 나의 일상을 꺼리낌없이 내보이는 일은 마치 나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식으로 포장된 허영을 SNS에 올리는 것 또한 극도로 혐오스러운 일이다.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외부 세계로부터 나의 존재는 진실하지도 거짓되지도 않은 무無존재와도 같았다. 그래서 한때는 나같은 사람은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삶과 글이 동떨어진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발가벗고 나의 속살을 보여줄만한 용기 또한 가질 수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의 알몸과 민낯은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 없을 것만 같았다. 진실함은 내게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못 했다. 진실하다는 것은 나의 모자람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얄팍한 참호에 몸을 숨기고 허공에 총질을 해대는 병사와 다르지 않다. 총알이 맞을리가 없다. 억지로 꾸미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글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은 내 글이 아닌 글, 아무 의미도 없는 글이 된다. 변경연 연구원을 지원하면서 썼던 미스토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변화에 대한 절실함은 꽁꽁 숨어 있던 나 자신을 밖으로 끌어 내렸다. 내 안의 것들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안의 장막이 걷히면서 비로소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생의 전환 과정을 시작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아직 내 바탕이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가진 것이 너무도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 안의 것들이 충만해야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법이다. 마른 샘에서는 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은 처음 글 쓰기를 시작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게 헌책을 사서 읽기를 몇 년, 내 생각은 푸른 나무처럼 자라났고, 산처럼 솟아났다.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하니, 자연히 그 복잡한 것들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였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수 밖에 없다. 내 안의 것들이 흘러 넘치게 되면, 이제 그것들을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같은 맥락으로 신영복 선생은 그의 책 <담론>에서 책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을 간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냈으나, 본인은 책을 집필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옥중에서 편지를 썼을 뿐이고, 녹취된 강의가 책으로 나온 것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끊임없는 훈련 외에는 대안이 없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자신의 전문성으로 강화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앞으로 펼쳐질 학습의 과정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유념하고자 한다. 

 첫째, 남에게서 빌려온 철학으로는 내 글을 쓸 수 없다. 한 두편의 글만 쓰고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인생을 관통하는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골수에 새겨진 것들이여야 한다. 많은 사색과 그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공자가 말하길, 지혜를 얻는 데는 모방, 경험, 사색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모방은 가장 쉽지만 만족스럽지 못 하다. 경험을 통해 얻는 방법은 확실하지만 가장 어렵다. 사색에 의한 방법이 제일 고상하고 효율적이다.  구본형 스승은 우리의 철학이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실천할 수 없는 철학은 아무 쓸모가 없다. 관념으로만 그친 사유를 글로 옮기면, 죽은 글이 된다. 스스로를 감동시키지 못하면, 아무도 감동시킬 수 없다. 일단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 타야겠지만, 그들의 사상과 언어를 내재화시키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내 안으로 들어온 그들의 언어가 훗날 밖으로 튀어 나올 때, 그것들의 창조자가 나인지 그들이었는지 알 수 없는 자연스러움에 도달해야 한다. 본인의 철학을 가지지 못 한 글들은 아무리 치장을 해 보았자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본인의 철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는 원칙으로 돌아간다. 읽고 쓰고 생각하기의 무한반복만이 고유의 철학과 사상을 태동시킬 수 있다. 하루하루 삶과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경험과 꾸준한 훈련이 결합된다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는 기쁨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천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주제와 사상에 대해 자신만의 어록을 만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 나만의 어록은 계속 꾸준히 업데이트해나가자. 자신의 사상과 생각들이 바뀌고 발전하는 모습이 나만의 어록에 기록되면서, 변화하고 어제보다 나아지는 내 자신을 더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끊임없이 나 자신을 격려하고 또한 경계하자. 읽고 쓰는 것이 일상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책 몇 권 읽고 글 몇 편 써본 것으로 나의 한계를 규정하지 말자. 한계란 확장을 위한 조건일 뿐임을 잊지 말자. 확신과 믿음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고무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밥 먹듯이 책을 읽고, 걸음걸음마다 생각을 심으며, 배설하듯이 글을 써야 한다. 시간의 문제일 뿐 곧 그리 될 것이다. 허나 읽고 쓰는 것이 틀에 박힌 일상이 되고, 노동이 되고, 부담이 되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가 노동이 되지 않도록, 천복이 진부한 일상이 되지 않도록 초심을 계속 다지고 이어 나가야 한다. 아직은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질수도 있으나,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혼자 여행을 떠나 보자. 근사한 요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 생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들은 삶의 전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철저하게 '내'가 되자. 나다운 글을 쓰자. 내 삶의 하루하루와 쓰여지는 글 중 어느 것이 원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도달해 보자. 조셉 캠벨은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 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고 말했다. 또한 구본형 스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책을 구성하는 지도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쓰다 보면 묘한 곳에 이르게 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으로, 예기치 않았던 모습으로 다가든다. 그러면 신이 난다. 글은 글에 연하여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언어로 파고든다."

처음은 자연스럽지 못 할 것이다. 아직 진정한 '내'가 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점점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본연의 '나'를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100%의 나를 한번 써보자. 결국 글쓰기는 본질에 숨어 있는 나와 백지에 쓰여지는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무수한 시도가 될 것이다.

 이상은 이제 막 먼 여정을 시작하는 나에게 하는 다짐임과 동시에, 언젠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난 후에도 지속하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자세이다. 동시에 현재의 내가 생각해낼수 있는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사유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다만 그 길에 임하는 수행의 자세를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변경연 연구원 과정을 시작하는 공식적인 첫 칼럼들 중 하나로 나를 향해 던지는 출사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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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22:53:34 *.48.44.227

미리 싸인 좀 받읍시다~~

'밥 먹듯이 책을 읽고, 걸음걸음마다 생각을 심으며, 배설하듯이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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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8:18:02 *.103.3.17

호기롭게 써놓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겁나 먼 당신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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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4:53:19 *.130.115.78

글을 읽으며 행복했어요.

이상한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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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8:22:05 *.103.3.17

여기는 '이상한 나라' 아니던가요?^^ 사실 저도 제 글을 다시 읽으며 행복해라 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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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9:41:53 *.140.208.239
그 행복감이 전달되는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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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1:55:30 *.124.22.184

경종씨만의 어록은 벌써 있는거죠? 그러니 이렇게 표현하는 거 아닐까해요. 부럽습니다.^^

다 아시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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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4:04:13 *.103.3.17

ㅎㅎ 선배님, 제 어록은 아직 그 존재가 하잘 것 없고, 타자의 어록만 쌓아가고 있습니다. ^_^;; 아직은 남의 어록에서 베껴쓰는 수준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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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23:00:36 *.148.27.35
멋진 출사가 담긴 칼럼입니다.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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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 10:14:38 *.103.3.17

감사합니다. 연대님! 너무 호기롭게 큰소리만 떵떵 쳐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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