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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1일 23시 33분 등록
"Thou art that!"
"너는 (결국) 신이다"라는 이 문장은 최후의 은유이다. 더이상 어떤 말로도 그 이상을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자신을 향한 궁극의 은유는 여전히 내게는 텍스트에 불과했다. 영웅의 여정을 가고 있는 거라고, 글을 씨부려 놓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한번도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신과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내면와 외면의 여전한 불일치와 함께 변경연 12기 첫 오프수업이 시작되었다.

차원(dimension)과 그것을 살아내는 인류와 우리 자신의 실체에 대한 김용규선생의 강의는 신선했다. 선택이 불가한 인간의 태어남은 그 자체가 불완전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 낼수 있는 자기력自氣力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신화와 연결된다는 내용이 숲과 삶에 대해 선생이 가지고 있는 통찰의 깊이만큼 묵직하게 다가왔다. 모든 만물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시킨적이 없음에도 반드시 그렇게 되고야 마는 이理는 씨앗의 발아와도 같은 것이다. 본성(本性)을 따르는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선생은 우리에게 다음날 수업전까지 여우숲안에서 각자의 나무를 찾아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나무의 성性과 나의 성性을 은유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 4명의 연구원들과 우리 측 3명의 연구원들은 자신의 신화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이어나갔다.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는 부분이 좀 있었다. 처음 만난 이들과의 교감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엇나가기도 했고, 불충분한 마디마디가 있었다. 자신만의 언어로 생각하고 묻고 대답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간들인데, 그러지 못 했던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개선해 나가야 할 자세이다. 투박했지만, 모두가 진지하게 열과 성의를 다해 야심한 시간까지 수업이 이어졌다. 

새벽 3시를 넘겨 잠자리에 누웠다. 장시간 수업으로 인해 디스크로 고생중인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많이 피곤했지만, 머리속에는 정리되지 않는 여러가지 상념들이 가득했고, 이성적으로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피로나 풀어보려는 요량으로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얼마를 뒤척거렸을까, 갑자기 밖이 환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새벽 4시30분이었다. 통창문 밖으로 말갛게 일출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저없이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새털구름에 가려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샛노란 해가 산과 산사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우숲에 아침이 오고 있었다. 온갖 새들이 감미롭게 지저귀고 있었고, 솨아 바람소리에 나뭇잎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금새 눈부시도록 장엄해진 태양은 쳐다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온 생명이 태동하는 무아지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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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찰나의 순간 내가 보였고, 세상이 보였으며 신의 존재가 느껴졌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여우숲은 내게 구본형이었다. 그는 나무가 되고 싶다 했었다. 바람결에 솨아 소리를 내며 잎을 날리는 그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고 싶다 했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이 곳의 풍경은 석달전 내가 변경연 지원서에 써놓은 그 풍광 그대로였다. 순간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했다. 탱자나무의 가시가 하나 둘 떨어지듯이 어제의 상념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그곳에 현존해 있었다. 멀리서 나의 나무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이미 거기에 있었다. 찬란한 해를 머금은 나무 한 그루가 내 앞에 서있었다. 그것은 순간이였으나 영원이었고, 꿈이었지만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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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도 마라톤과 같은 수업이 계속되었다. 우리의 무의식과 화해하고, 승리하고, 포용하는 법, 그리하여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 결론은 이제 순리順理가 되어 나에게 이르렀다. 후기라는 미명아래 통섭과 통찰로 가득했던 김용규선생의 강의를 단 몇 줄로 요약하고 싶지는 않다. 울창한 숲속에서 그가 던진 씨앗은 언젠가 내 안에서 새로운 언어로 피어날 것이다. 김용규 선생은 숲에서 길을 찾았고, 난 그가 숲애서 보았던 그 길을 볼 수 있었다. 

또 한꺼풀의 허물을 벗었다. 아직 나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허물을 벗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결국) 나비"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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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14:36:10 *.252.203.12

멋진 순간이었네요. 휴대폰으로 보여줬을 때는 몰랐는데, 크게 보니 황홀한 순간이었겠다 싶습니다.


저는 육체는 무척 힘겨웠지만 주말 그 1박2일 때문에 또 몇날 며칠을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건강하게 재미나게 공부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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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1:19:46 *.140.242.43

정화선배님, 그 긴 시간 수업 참여하시며 멘토링해주신 모습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마치 신성체험이라도 한듯 여우숲에서의 여운이 아직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선배님들이 뽕맛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제가 뽕맛을 알아버린 걸까요? ㅋ 생각해보니 저희가 여우숲에서 야외수업한 바로 그곳이 뽕나무 아래였던 것 같습니다 ㅋㅋ 뽕나무 아래서 첫 수업을 한 것은 신의 안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응원 감사드리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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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1:14:15 *.48.44.227

젊으나 늙으나 꿈은 같아요.  나는 아직도 허물을 벗고 있으니 좀 민망하네요?

'나는 나비'는 우리 밴드 공연곡이기도 하지요. 가사가 아주 훌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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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21:21:11 *.140.242.43

선생님 날개가 가장 아름다우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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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16:27:27 *.130.115.78

그날을 보내고, 시간이 이리 흐른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우리의 몸 어딘가에 숨어있는 나비의 형상이야말로

이리도 사무치는 그리움의 이유였나보구나!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번엔 기필코 그 그리움의 끝을 보고야 말거라고.


모두 화.이.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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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17:40:40 *.140.242.43

네, 화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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