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校瀞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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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칵, 따각 따각, 따가닥’
손바닥만한 사기그릇들 한 무더기를 노란 플라스틱 통에서 주워올려 플라스틱 쟁반에 놓는다. 쟁반 하나에는 사기로 된 반찬그릇이 12개가 들어간다. 빨리 한다고 함부로 주워서 딸그락 거리며 쟁반에 쏟아놓듯이 놓는 그릇들은 금새 가지런히 빽빽히 늘어선다. 12개가 어깨를 맞대고 쟁반에 꼭 맞게 들어간다. 그렇게 25개씩 4무더기를 쌓아놓는다. 반찬이 4가지가 담길 300인분의 반찬그릇이다.
문득 반찬그릇 12개씩을 쟁반에 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릇들이 ‘꿈을 담는 그릇’이라면…… 12가지의 다른 꿈을 담을 수 있겠다.’
그 생각의 순간은 짧게 지나간다. 몇 박스의 그릇은 어느새 쟁반에 모두 담긴다.
한쪽에서는 그릇이 셋팅 된 쟁반 무더기를 옮겨다가 깍두기를 담는다. 25판.
반찬이 만들어 지는 대로 모두 25판씩 담아진다. 오뎅볶음 25판. 콩나물 무침 25판. 잡채 25판. 그렇게 준비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오븐에서 쩌낸 밥을 푼다. 이번에도 쟁반 하나에 12개씩의 밥공기가 들어간다. 쟁반은 딱 고만한 크기이다. 이렇게 밥이 쌓인 쟁반을 온장고에 차곡히 넣어서 준비를 해둔다.
일은 대게 단순한 것들의 반복이다.
반찬이 그릇에 담아지는 동안 물병을 테이블에 올려두면 얼추 10시 반. 이때부터는 1인분씩 담아서 셋팅을 해야 한다. 준비한 식판을 쌓아둘 곳에 12개의 쟁반을 나란히 깐다. 좀전에 담아두었던 것을 하나씩 집어들고서 한 귀퉁이 쪽으로 치우치게 깍두기를 놓는다. 그리고는 다른 반찬들도 다른 귀퉁이에 치우치게 놓는다. 탑의 네 기둥처럼 네 가지 반찬이 쟁반의 네 귀퉁이에 놓아지면 그 위에 다시 12개의 쟁반을 깔고 같은 작업을 반복해서 준비한 반찬을 다 나누어 담을 때까지 반복한다.
‘네 가지 꿈이라……음 같은 것들로만 한 무더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어느새 11시가 넘어서 15분 정도가 된다. 그때쯤부터는 손님이 한 분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식사시간은 11시 반부터이지만 급하다고 얘기하면 1~2개 정도는 준비되어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식사를 못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메인 메뉴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다. 반찬과 밥만으로는 장사를 못한다. 메뉴판에 그날 팔기로 한 설렁탕이나 순두부찌게, 갈치조림 등이 하나라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밥이 주방에서 홀로 나갈려면 메인메뉴 하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반찬이 맛있게 만들어지고 많이 만들어졌다해도 그것은 반찬이다.
설렁탕.
11시 반까지는 다 끓여져야 하고, 주문을 받으면 다시 한 소금 끓여서 뜨겁게 해서 내 보낸다.
내 설렁탕은 준비가 되었던가.
다른 것은 없어도 좋지만 그것만은 꼭 있어야 한다고 기를 쓰고 우겨대던 그것.
그날의 메인 메뉴처럼 기억되는 반찬이 아닌 나의 메인 메뉴.
설렁탕.
사부님과 동료가 걱정한다. 인생의 11시 반을 넘어선 놈이 이제 준비해서 나서겠다고 하면서도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겠다고 나서는 놈이 팔팔 끓게 불을 때기 시원찮을 판에 미적거리고 있으니 걱정인 것이다. 나올 시간이 다 되어서도 준비되지 않은 설렁탕 때문에 나도 은근히 속이 탄다.
서두르자고 해도 뭐가 불을 자꾸 줄이는 거야? 이런 이런. 불에 손을 낸 것은 바로 나다.
이럴 때일수록 집중하자. 설렁탕 만들 때는 설렁탕만 생각하자. 왜 이미 만들어진 오뎅볶음 생각하고, 내일 내놓을 도토리묵을 생각하냐. 어믄 생각하다가 설렁탕 솥을 다른 솥으로 착각해서 잘못 알고 자꾸 불을 줄이는 거 아닌가.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던 설렁탕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다 끓었다. 뚝배기에 소면을 넣고, 제대로 진하게 끓여낸 사골 국물을 담아서 미리 준비한 반찬과 밥을 함께 담아서 대접한다.
“맛있었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이 먼저 웃고 있다. 얼굴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된다. 나도 따라 씨익 웃는다.
요즘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밥, 반찬, 접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내 인생을 지금 조리하고 있는지도 생각하곤 한다. 내 놓을 만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가 말이다. 메인메뉴 없이 장사 못 하듯이, 내 인생에 설렁탕에 해당되는 것을 끓여내지 않고는 너무 허무할 것 같다. 내가 만들어 내겠다고 한 것을 결국에는 그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늦게 준비되는 설렁탕처럼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중간에 이런저런 것들이 끼어들어 불을 줄이고, 잘못된 재료 선택으로 다시 만든다고 해도 말이다.
식당에 나가 다시 그릇들을 보면서도 나는 또 내 인생의 큰 것, 설렁탕, 꿈을 생각 하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궁리할 것이고. 그것을 하겠지.
맛나게 만들어진 음식 보며 웃는 것만큼, 낮에도 꿈을 꾸며 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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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사기그릇들 한 무더기를 노란 플라스틱 통에서 주워올려 플라스틱 쟁반에 놓는다. 쟁반 하나에는 사기로 된 반찬그릇이 12개가 들어간다. 빨리 한다고 함부로 주워서 딸그락 거리며 쟁반에 쏟아놓듯이 놓는 그릇들은 금새 가지런히 빽빽히 늘어선다. 12개가 어깨를 맞대고 쟁반에 꼭 맞게 들어간다. 그렇게 25개씩 4무더기를 쌓아놓는다. 반찬이 4가지가 담길 300인분의 반찬그릇이다.
문득 반찬그릇 12개씩을 쟁반에 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릇들이 ‘꿈을 담는 그릇’이라면…… 12가지의 다른 꿈을 담을 수 있겠다.’
그 생각의 순간은 짧게 지나간다. 몇 박스의 그릇은 어느새 쟁반에 모두 담긴다.
한쪽에서는 그릇이 셋팅 된 쟁반 무더기를 옮겨다가 깍두기를 담는다. 25판.
반찬이 만들어 지는 대로 모두 25판씩 담아진다. 오뎅볶음 25판. 콩나물 무침 25판. 잡채 25판. 그렇게 준비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오븐에서 쩌낸 밥을 푼다. 이번에도 쟁반 하나에 12개씩의 밥공기가 들어간다. 쟁반은 딱 고만한 크기이다. 이렇게 밥이 쌓인 쟁반을 온장고에 차곡히 넣어서 준비를 해둔다.
일은 대게 단순한 것들의 반복이다.
반찬이 그릇에 담아지는 동안 물병을 테이블에 올려두면 얼추 10시 반. 이때부터는 1인분씩 담아서 셋팅을 해야 한다. 준비한 식판을 쌓아둘 곳에 12개의 쟁반을 나란히 깐다. 좀전에 담아두었던 것을 하나씩 집어들고서 한 귀퉁이 쪽으로 치우치게 깍두기를 놓는다. 그리고는 다른 반찬들도 다른 귀퉁이에 치우치게 놓는다. 탑의 네 기둥처럼 네 가지 반찬이 쟁반의 네 귀퉁이에 놓아지면 그 위에 다시 12개의 쟁반을 깔고 같은 작업을 반복해서 준비한 반찬을 다 나누어 담을 때까지 반복한다.
‘네 가지 꿈이라……음 같은 것들로만 한 무더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어느새 11시가 넘어서 15분 정도가 된다. 그때쯤부터는 손님이 한 분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식사시간은 11시 반부터이지만 급하다고 얘기하면 1~2개 정도는 준비되어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식사를 못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메인 메뉴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다. 반찬과 밥만으로는 장사를 못한다. 메뉴판에 그날 팔기로 한 설렁탕이나 순두부찌게, 갈치조림 등이 하나라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밥이 주방에서 홀로 나갈려면 메인메뉴 하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반찬이 맛있게 만들어지고 많이 만들어졌다해도 그것은 반찬이다.
설렁탕.
11시 반까지는 다 끓여져야 하고, 주문을 받으면 다시 한 소금 끓여서 뜨겁게 해서 내 보낸다.
내 설렁탕은 준비가 되었던가.
다른 것은 없어도 좋지만 그것만은 꼭 있어야 한다고 기를 쓰고 우겨대던 그것.
그날의 메인 메뉴처럼 기억되는 반찬이 아닌 나의 메인 메뉴.
설렁탕.
사부님과 동료가 걱정한다. 인생의 11시 반을 넘어선 놈이 이제 준비해서 나서겠다고 하면서도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겠다고 나서는 놈이 팔팔 끓게 불을 때기 시원찮을 판에 미적거리고 있으니 걱정인 것이다. 나올 시간이 다 되어서도 준비되지 않은 설렁탕 때문에 나도 은근히 속이 탄다.
서두르자고 해도 뭐가 불을 자꾸 줄이는 거야? 이런 이런. 불에 손을 낸 것은 바로 나다.
이럴 때일수록 집중하자. 설렁탕 만들 때는 설렁탕만 생각하자. 왜 이미 만들어진 오뎅볶음 생각하고, 내일 내놓을 도토리묵을 생각하냐. 어믄 생각하다가 설렁탕 솥을 다른 솥으로 착각해서 잘못 알고 자꾸 불을 줄이는 거 아닌가.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던 설렁탕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다 끓었다. 뚝배기에 소면을 넣고, 제대로 진하게 끓여낸 사골 국물을 담아서 미리 준비한 반찬과 밥을 함께 담아서 대접한다.
“맛있었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이 먼저 웃고 있다. 얼굴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된다. 나도 따라 씨익 웃는다.
요즘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밥, 반찬, 접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내 인생을 지금 조리하고 있는지도 생각하곤 한다. 내 놓을 만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가 말이다. 메인메뉴 없이 장사 못 하듯이, 내 인생에 설렁탕에 해당되는 것을 끓여내지 않고는 너무 허무할 것 같다. 내가 만들어 내겠다고 한 것을 결국에는 그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늦게 준비되는 설렁탕처럼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중간에 이런저런 것들이 끼어들어 불을 줄이고, 잘못된 재료 선택으로 다시 만든다고 해도 말이다.
식당에 나가 다시 그릇들을 보면서도 나는 또 내 인생의 큰 것, 설렁탕, 꿈을 생각 하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궁리할 것이고. 그것을 하겠지.
맛나게 만들어진 음식 보며 웃는 것만큼, 낮에도 꿈을 꾸며 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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