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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일 15시 15분 등록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A.J.맨델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엑서사이즈 하이라고도 한다. 신체 및 정신적인 측면과 동시에 관련이 있는 현상으로 일정 시간 동안 적정 강도의 운동을 지속하는 경우 때때로 나타나는 신체 스트레스로 인한 행복감을 말한다. 이때의 느낌은 마약과 같은 약물을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느낌 또는 그 상태와 유사한 것이라고 한다.

- 네이버 백과 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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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그래도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쉴 새 없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었다. 모처럼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길에 햇살은 상쾌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찾지 못하는 동안에도 길은 그대로였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푸근함이 그 곳에서 느껴졌다.

몸뚱이를 혹사시키는 행위가 정신을 맑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하던 머리 속이 땀을 흘리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맑아지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것들이 조금씩 씻겨져 내렸다. 먼저 '외부'의 것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밥벌이의 현장에서 쌓인 지저분한 오해와 긴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조금 더 발에 힘을 주자 요즘 며칠 째 속을 썩이던 돈 문제가 그 뒤를 이어 나뒹굴었다. 그리고 또 조금 더 달리자 이번엔 가족들에 대한 섭섭함이 녹아 내렸다. 양파껍질처럼 한 겹씩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나'만 남았다. 벌거벗은 듯한 가벼움으로 강변을 달리는 나만 남았다.

이제 마음이 안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만치 가라앉고 보니 식은 열정이 보였다. 언젠가는 뜨거웠을 그것이 너무 오래 돌보지 않아 뻣뻣이 식어 작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가슴이 꾸욱 아픈가 싶더니 금새 그 느낌이 사라졌다. 조금 더 가라앉으니 이번엔 벌겋게 성한 욕심이 눈에 들어왔다. 손안에 쥐고 있는 작은 것조차 놓아 보낼 수 없는 좁은 마음이었다. 다시 가슴 한 쪽이 지잉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라앉고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온통 검은 속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안을 들여다본 끝에 만난 칠흑 같은 어두움이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 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터널 끝의 구멍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듯이 어두운 가운데로 밝은 느낌이 서서히 치솟았다. 주변이 차차 밝아지는가 싶더니 가슴 한복판 어딘가 쯤에서 간질간질한 따스함이 온 몸의 끝 쪽으로 퍼져나갔다. 몸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몸의 감각이 조금 둔해지는 듯 하더니 주변의 풍경이 오히려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약간 느리게 흐르는가 싶은 가운데로 기분이 살짝 들뜨고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야릇한 쾌감이 몸의 구석구석을 간질였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였다.

마약이 주는 쾌감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는 러너스 하이. 마약을 해보지 않았으니 그 느낌과 비슷한지 알 길은 없지만 좋은 느낌이었다. 아니, 좋은 느낌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언제까지나 이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피어 올랐다. 이런 상태라면 어디까지라도 자전거를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몇 분 쯤 그런 느낌이 지속되었을까. 언제나 흥분은 가라앉고, 폭풍은 물러가기 마련이다. 떠올랐던 몸이 다시 땅으로 내려 앉았다. 온 몸을 휘감았던 흥분이 사그라지고 어느새 자전거 페달을 젓고 있는 두 다리의 통증과 산소부족을 호소하는 찢어질 듯한 가슴의 뻐근함이 되살아났다. 그 순간 아까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갖가지 상념들이 되돌아왔다. 조금 전에 느꼈던 러너스 하이의 환각 속으로 다시 숨어들고 싶었다.

이내 마음이 돌아왔다. 갑자기 찾아왔던 쾌감의 끝에 되살아난 육체의 고통보다 한 박자 늦게 정신이 자리를 찾았다. 숨고자 했던 초라함에 코웃음이 새나왔다. 여전히 저릿하게 남아있는 흥분의 여운이 선명하다.

러너스 하이는 사람들을 운동 중독으로 이끌 만큼 강렬한 자극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과도하게 운동에 몰두하고 일상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러너스 하이, 하나만으로 운동에 중독된 사람들의 몰입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갖는 은밀하고 달콤한 유혹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충분한 매력이 있다.

한편,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36·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1등으로 결승점에 골인했을 때의 희열과 러너스 하이의 행복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등으로 골인했을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로 가득 찬다. 정신적인 기쁨이 훨씬 크고 오래오래 간다. 잠깐 왔다 가는 러너스 하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러너스 하이의 의미를 일축할 수 있을까.

러너스 하이는 운동을 처음 하는 초심자에게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또한 지나치게 과도한 운동을 통해서는 느낄 수도 없다. 그것은 적절한 강도와 환경, 거기에 꾸준함이 더해져야만 문득 찾아오는 것이다. 결국 멀리, 오래 가기 위한 조건을 충족한 이후에야 맛볼 수 있는 것인 셈이다. 승리한 마라토너가 결승선에서 가슴 터질 듯이 느꼈던 희열에는 그 여정에 때때로 찾아왔을 수 많은 러너스 하이가 숨어있다. 그렇게 러너스 하이는 순간인 동시에 긴 과정이기도 하다.

모처럼의 자전거 타기에 행운처럼 찾아온 짜릿함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깨워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스스로를 깨닫는 일정 속에 어느덧 조금쯤 지쳐있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다. 처음에 가졌던 열정의 자리에 얄팍한 요령이 들어앉은 것 같아 부끄럽고 불편한 마음이다. 몸으로 하는 운동의 사이로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이 러너스 하이라면 스스로를 달구고 벼리는 마음 작업의 중간에 만나는 것이 바로 사부님이 말씀하신 그 '뽕맛' 아닐까. 공교롭게도 달리는 자의 '뽕맛',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배우는 자의 '뽕맛', 러너스 하이(Learners' High)가 우리 말로 똑같이 발음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뽕맛'은 계속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것이 계속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멈추지 말자. 과속하지도 말자. 꾸준히 가자. 언젠가 맛보게 될 큰 '뽕맛'을 위하여!


IP *.227.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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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0.02 10:48:10 *.249.162.56
저는 요즘 운동부족인가봅니다.. 몸이 영 무거운 것이^^

다음주, 화요일날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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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10.02 20:35:18 *.145.231.231
그랬군요. 짜릿하죠?
2년 전 여름 밤새 달렸던 때가 있었어요.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들어설 때쯤 아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혼자 간직하고 나를 지켜줄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았어요.
연구원 생활과 그 때 그 순간이 앞으로의 생활을 이끌어 줄 것 같아요.
가장 힘들땐 오직 하나에만 집중해 보세요.
직장이든, 가정이든, 연구원이든 말이예요.
조금만 더 힘내 보세요.
아마 지금이 연구원 활동에서 러너스 하이를 느끼는 시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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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10.05 11:27:59 *.46.151.24
^^ 어쩌면...

30년 동안 아무생각없이 살게 했고
어떤 지난함도 넘게 했고
나를 맛이 가게 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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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07 22:59:24 *.72.153.12
러너스 하이...
연구원들의 글을 읽으면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재미가 연신 '와아~'를 연발하게 했는 데 어느때 부터인가 동료들의 글을 읽는 것이 지루해졌다. 그리고는 의사소통이란 것을 닫아버리고 지낸 것이 한달은 된 듯 하다.
다시 글들을 하나씩 읽는다. 동료들에게서 은연중에 배우게 되는 기쁨, 희열, 흥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런것이 뽕맛일까? 여기에 그 '뽕맛'이란 것이 같이 했으면 한다.

혼자서 가면 빨리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사막을 건너는 일 같은... 멀리가는 일은 같이 가야 한다고 한다. 같이 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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