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余海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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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사정으로 지난 9월 30일 날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무리 유목민의 시대라고 하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이동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은 고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몇 년 동안 지내왔던 정든 곳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왔습니다. 이사를 자주 한 편인데 매번 사소한 갈등을 겪곤 합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재미난(?) 일을 겪었습니다.
‘움직이면 돈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 손으로 직접 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리게 되면, 그 손에 매번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입니다. 특히 이사와 같은 큰 이동은 많은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사비용을 줄이고자 여러 이사 전문 업체에 견적을 의뢰하였습니다. 같은 규모인데도 정말 다양한 견적이 나오더군요. 사다리차를 사용해야 하는지, 큰 짐은 얼마나 많은지, 책과 옷 등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등 많은 부분들이 견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보고 한 이사 업체에 포장이사를 맡겼습니다.
이사 당일 조금씩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날은 손이 없는 날이라 이사하기에 매우 좋은 날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로 비오는 날씨에 대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삿짐을 주도할 사람이 직접 짐을 보더니 계약한 견적 비용으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며 다른 값을 제시하였습니다. 새로 제시한 이사비용이 매우 컸기에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럼 처음 견적을 낼 때부터 제대로 요금을 산정할 일이지 이제 와서 요금을 더 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사 전날 한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업체의 견적이 싸기에 이미 계약한 이사업체와 계약을 취소하려고 했었습니다. 비용이 싸기도 했지만 다른 여러 가지 면들이 믿음이 가질 않았거든요. 위약금을 물어달라는 말에 원래대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이미 서로의 마음이 많이 불편해져 있었습니다. 이사 당일 아침부터 트집을 잡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골목이 좁고 사방에 전깃줄이 널려 있어 사다리차가 집 앞까지 진입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하면서 짐싸기를 주저하더군요. 그 때 마음 같으면 당장 이사를 취소하고 오히려 위약금을 물어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이 날 이사를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인지라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만 하였습니다. 이사업체도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손해를 본다고 하기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이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고마움의 표시로 계약에 없던 점심식사와 간식거리, 그리고 담배와 음료수 등을 준비해서 대접하며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오히려 추가 비용보다 더 많이 들었지만 서로 기분 좋게 타협할 수 있어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하여 오후 5시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이사가 오후 8시가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큰 짐들은 대충 제자리를 찾았지만 작은 짐들은 구석에 쌓여만 갔습니다. 오히려 이사를 맡긴 우리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좁은 집에 왜 그렇게 짐은 많은지. 이 많은 짐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왔는지. 날라도 날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이사 업체가 이야기한 내용들이 그때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전에 ‘마음으로 나누는 편지’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계산법으로 가치를 매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누구에게 일을 시킬 때 자기 혼자 먼저 그 작업의 가치를 평가한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보다 싸게 부르면 스스로 생각했던 수준만큼 올려서 지불해 준다는 것입니다. 저희도 미안한 마음에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에 저녁식사 값으로 얼마를 더 드리는 것으로 이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정리가 덜 된 거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네 식구의 살림살이가 무척 많아 보였습니다. 족히 대여섯 식구 정도의 살림살이는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버려도 될 짐들이 무척 많았거든요. 못 쓰는 물건이지만 버리기 아까워 보관했던 물건들, 작아서 못 입지만 다른 식구들에게 줄려고 보관했던 옷들, 좋은 추억이 서려 있는 잡동사니들, 죽어도 못 버리게 했던 책들. 이런 것들만 잘 정리했어도 훨씬 가벼운 이삿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리 제대로만 버렸어도 아침에 사소한 실랑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녁 늦게까지 이삿짐을 나르지 않아도 될 뻔 했습니다. 이 모두가 나중에 혹시 필요할지 몰라 잘 버리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이 컸습니다.
변화는 움직임입니다. 경쾌하고 빠르게 움직이려면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자신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것들만 잘 지켜주고 나머지 것들은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히려 더 중요할 지도 모릅니다. 버리지 않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는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존의 것을 버리지 않으려면 새로운 것을 수용할 만큼의 큰 그릇이 필요합니다. 이사할 때마다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겠죠. 그것은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버리는 용기도 중요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그릇도 필요합니다. 두 가지 모두 변화를 위해서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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