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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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타는 것일까요?
자주 한숨이 납니다. 힘이 없습니다. 생각은 슬픈 상상을 날고, 가슴은 자꾸 아파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이유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려고 해, 얼른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파란 하늘 아래 누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한달만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만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독하게 외롭습니다.
이상합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아픕니다.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명치 아래 시옷자로 갈라진 곳이 정확히 심장 크기만큼 뚤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로 퍼런 서슬의 가을 바람은 지나갑니다. 마음의 창으로 눈물이 번져 흐릅니다. 가슴속으로 겹겹이 흘러 내립니다.
대개 이렇게 마음 아픈 날은 집에가서 일찍 자거나, 슬픈 영화를 봅니다. 펑펑 울고 나면 다음날은 웃으며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릅니다. 벌써 증상이 2주가 넘었습니다. 잠도 많이 자고, 슬픈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자주 이야기를 해보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기조차 귀찮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검색창에 ‘남자는 왜 가을을 타는가?’라고 썼습니다. 대번에 똑같은 제목의 글 한편을 발견했습니다.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읽어보니 제법 그럴듯합니다.
남자가 가을을 타는 첫 번째 이유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때는 현저히 해가 짧아지고 그만큼 일조량도 줄어듭니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사람의 몸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늘어나는 반면 빛을 받아야 늘어나는 세로토닌은 줄어들게 됩니다. 통상 멜라토닌은 기분을 가라앉게 해주고 세로토닌은 기분을 좋게 해주므로 우울해 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정신분석학적인 것인데, 모험심과 개척정신이 강한 남성이 겨울을 대비해 안정 지향적이 되는 가을에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을이면 유독 일탈을 꿈꾸고 더 나아가서는 바람(?)을 피우는 남성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란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음양학으로 분석한 것인데 성향이 ‘양’인 남자가 ‘음’의 시기로 접어드는 가을에는 우울해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향이 ‘음’인 여자는 ‘양’의 시기로 들어가는 봄에 괜스럽게 마음이 들뜨고 계절을 탄다는 것이랍니다.
젠장. 그런 분석따윈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저 저를 옭아매는 이유 한 가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유없이’ 마음이 아픈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번 추석 때 한숨섞인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과학고라는 곳이.. 좋은 곳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희들이 가족과 일찍 떨어져야 했던 것은 참 안타깝구나”
고교시절부터 혼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기숙사였지요. 좋았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몰래 빠져나와 밤거리를 쏘다니기도 했습니다. 늘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기숙사는 모여살기에 외로울 틈 없어 보이지만, 누구나 외로워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자취 생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혼자 지낸지 15년. 계산해보니 제 인생의 정확히 반을 홀로 지낸 셈입니다. 그래서 힘든가봅니다. 앞서 15년간 받아 두었던 사랑이 이제 완전히 소진되었나봅니다. 이제 지쳤습니다. 감정은 바닥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우울하기에 산책을 나섰습니다. 차디찬 밤공기가 숨을 멎게합니다. 폐포 가득 공기를 품꼬 힘껏 내뿜습니다. 갑작스레 도전적인 마음이 되어, 그 자리에 앉아 메모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게 다시 사랑이 온다면..
마음을 다해 섬기리라.
그대의 고운 발을 정성껏 닦아 주고,
가녀린 어깨를 단단한 팔로 감싸안아 주리라.
하얀 손목에 살포시 키스하여 평안으로 인도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대를 내 종교로 맞이하리라.
내게 다시 사랑이 싹튼다면..
다시는 상처주지 않으리라.
불쑥불쑥 나오는 날카로운 말들은 가슴에 묻고
깊은 곳, 피어나는 사랑의 노래로 그대 옛 상처를 감싸 안으리라.
날카로운 나는 잊고 부드러운 내가 될 것이라,
그리하여 가장 달콤한 카라멜이 되리라.
만일 내게, 다시 한번 가슴떨리는 사랑이 주어진다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사랑만하리라.
평생 안고 가야할 추억을 만들고 기억하기 위해, 내 남은 젊음을 쏟아 부으리라.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그리하여 두 번째 첫사랑에 가슴앓이하는 뜨거운 사내가 되리라.
이것은 지독한 외로움의 벼랑끝에 선 사내의 절실한 다짐이다.
나와 그대의 계절이 다시 한번 돌아온다면
힘껏 사랑하리라.
허허. 문장의 가벼움에 쓴 웃음이 납니다. 저는 죽어도 시인은 못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전화벨이 울립니다. 감성적인 소라씨입니다.
“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픈 때에는 더 후벼파는 편이야. 그러면 다음날 더 괜찮아져”
또 전화벨이 울립니다. 이번에는 유쾌한 병곤형씨입니다.
“야, 옹박. 뭔일있냐? 마음이 아퍼?
그럴땐 궁상을 좀 떨어야해. 혼자서 소주 두병 까고 막 갈겨(?)대고 그래~”
사부님이 승완형에게 한 말씀도 떠오릅니다.
“방황을 할 때에는, 깊이 하거라”
이번 주말에는 소주를 한병 사야겠습니다. 아니 넉넉히 세병은 사야겠네요. 안주는 멸치와 고추장 정도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준비해서 밤에 산을 올라야겠습니다. 담배를 다시 안피려면 산이 좋겠습니다. 열라게 슬픈 노래도 준비해야겠습니다. 졸라게 울기 위해서입니다. 가서 달을 보며 펑펑 울다가 와야겠습니다. 소주 나발을 불고 막 갈겨대야 겠습니다. 아픈 곳을 후벼파서 절망이 바닥을 드러내게 해야겠습니다.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외로움도 행복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밤, 지나간 사랑에 마음아파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십번 왔다갔다하는 아들 마음의 굴곡 가운데에 앉으셔서, 어머니는 차분히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그게 젊은이의 특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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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난 이 글 심각하게 마음으로 다가오도록 열심히 읽고,
도윤오빠 댓글 보고 왼쪽 입꼬리 살짝 올라갔다가,
종윤오빠 댓글 보고 오른쪽 입꼬리 마저 다 올라갔다 ㅋㅋㅋ
옹박오빠..오빠글을 읽고 있노라니 나도 혼자 살 때가 생각나는구료...
나는 한때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신촌에서 사당까지
오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이목 아랑곳 않고 펑펑 울었던 적도
있고, 내 맘 알아주는 이 없다 생각되어 홈페이지에다 두서없는 글들
쏟아낸 적도 많았고,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런가보다 싶어 아예 감정을
죽이는 연습도 해보았더랬지...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생각해보니 도윤오빠 말대로 그랬던 내가
참 웃겨 죽겠네 그려... 한때 그랬던 내 자신의 모습들이 넘 소중해...
요즘은 어떤 생각이 드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그
시간들을 외로움에게 빼앗길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그래서 더 지금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구나 하는. 그리고 하루만큼씩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고 있구나 하는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가슴을 채우고 있어.
그리고,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로움은 행복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싶어하는 것일 뿐. 그러니까, 괜히 소주 들고 산 타면서 궁상
떨지 말고 언제 시간 내서 전시회 보러 가자 ^^
아픈 곳은 후벼파는 것보다 보듬어 줘야한다고 나는 생각해 ^^
도윤오빠 댓글 보고 왼쪽 입꼬리 살짝 올라갔다가,
종윤오빠 댓글 보고 오른쪽 입꼬리 마저 다 올라갔다 ㅋㅋㅋ
옹박오빠..오빠글을 읽고 있노라니 나도 혼자 살 때가 생각나는구료...
나는 한때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신촌에서 사당까지
오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이목 아랑곳 않고 펑펑 울었던 적도
있고, 내 맘 알아주는 이 없다 생각되어 홈페이지에다 두서없는 글들
쏟아낸 적도 많았고,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런가보다 싶어 아예 감정을
죽이는 연습도 해보았더랬지...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생각해보니 도윤오빠 말대로 그랬던 내가
참 웃겨 죽겠네 그려... 한때 그랬던 내 자신의 모습들이 넘 소중해...
요즘은 어떤 생각이 드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그
시간들을 외로움에게 빼앗길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그래서 더 지금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구나 하는. 그리고 하루만큼씩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고 있구나 하는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가슴을 채우고 있어.
그리고,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로움은 행복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싶어하는 것일 뿐. 그러니까, 괜히 소주 들고 산 타면서 궁상
떨지 말고 언제 시간 내서 전시회 보러 가자 ^^
아픈 곳은 후벼파는 것보다 보듬어 줘야한다고 나는 생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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