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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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날의 식당 방랑기
불가마속을 다니는 것 같은 날들이다. 나는 곧 자연산 통돼지구이로 변신할 것 같다.
이렇게 아침부터 푹푹 찌다보니 밥해먹기가 고역이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더워서 밥이 안 먹힌다는데 나는 규칙적으로 배가 고파진다.
어느 일보다도 먹는 일만큼은 규칙적으로 한 탓일 것이다.
이 나이에 대충 먹으면 특히 뼈에 나쁘니까 잘 먹어야 한다는 말에 무엇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위를 채우려는 본능보다 밥하기 싫은 게으름이 클 때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린다.
먼저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에 찾아가 보지만 내 혀는 금방 조미료를 듬뿍 넣은 음식임을 알아챈다.
역시 대중들의 인기란 믿을게 못 된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했을 뿐, 배가 부른 후에는 그런 식당에 간 내게 화가 난다.
나는 거짓을 싫어하는 투사가 된 것처럼 조미료로 음식의 참 맛을 못 느끼게 한 그 식당에 결별을 고한다.
그러게 내가 만들어 먹어야 한다니까... 결심을 해도 작심 하루,
밥은 굶더라도 책을 굶지 말자는 어느 작가의 말과는 다르게 책은 굶으면서 밥은 안 굶으려고 아예 뷔페식당에 가본다.
뷔페에 가면 눈에 보기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즐비하지만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고
이것저것 마구 섞인 뱃속이 편안치가 않다.
게다가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게가 놓여있지만 먹어보면 왜 그리 짜고 차가운지, 많이 먹지 못하게 하면서 구색만 갖추어 놓은 식당에 분노까지 느낀다.
마치 각자 요란하게 차리고 나온 동창모임에서 이것저것 얘기했지만 돌이켜보면 씁쓸한 이야기뿐, 영양가 있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애초에 거기 간 나를 반성하지 않고 그 식당에게만 또 결별을 고한다.
동네의 소박한 식당에 들어가 본다. 놀랍게도 순두부를 마음껏 먹게 되어있는데 그 순두부는 애기피부처럼 뽀얗고 맛도 부드럽고 좋아 술술 넘어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재료가 파주의 장단콩이란다. 그 국산콩 중에서도 유명한 장단콩으로 만든 귀한 순두부를 저렇게 마구 퍼 줘도 이윤이 남을까 걱정한다. 특히 남고생들의 먹는 양을 보면 주인도 아닌 내가 봐도 떨릴 정도로 먹어 제끼는데 파주 장단콩을 사용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외쳐봤자 콧방귀도 안 뀌는 마음을 알겠다.
국산콩을 저렇게 공짜로 마구 퍼주다니 유전자변형 콩이나 아니면 좋겠다.
그런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식당 유리창 너머로 콩을 쑤는 직원이 땀을 흘리며 두부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지만 왜 굳이 거기서? 하며 심드렁한 마음이다.
단순 수입콩을 쓴다면 가끔 들르고 싶다.
또 한군데는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골목으로는 거의 가지 않는데다 간판이 초라하여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던 식당이었다.
비빔밥을 시키니까 각종 나물이 푸짐하게 돌솥에 얹혀 나온다. 그걸로도 충분한데 수제비와 계란찜과 앗! 도라지 나물에 각종 반찬이
딸려 나온다. 안 달고 안 짜다. 이럴 수가 값까지 싸다. 싫어하는 조미료도 안 넣었다.
오징어볶음, 냉콩국수등 정말 진한 맛이다. 老부부가 미원 안 넣고 정성껏 차린 음식이다.
흠이라면 음식량이 좀 과하다.
일단 상에 나온 반찬은 손을 대었던 안 대었던 다 버리기에 밥도 좀 적게 달라고 미리 말한다.
비빔밥에 왜 수제비를 끼워 주는지 알 수 없는 조화이지만 국물을 마셔보면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깊은 맛이 나서 놀랍다.
그 대신 주말에는 영업을 안 한다. 너무 피곤하기 때문일 것이다. 손님들이 돈을 내면서 다들 만족한 표정이다.
이 더위에 고마워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화려함은 없어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주인의 얼굴에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나는 그 식당주인이 숨어있는 고수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 고수는 현금만 받는다. 고수답다. 어쩌다 카드를 내는 사람은 미안해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박한 것도 좋지만 색다른 맛을 느끼고 싶었다.
한강에 뜬금없이 둥둥 떠 있는 곳에 이태리 식당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 설겆이 물은 어디로 갈까 또 걱정한다)
아니 거기는 식당이 아니고 레스토랑이라고 부른다.
큰 접시에 한 숟가락만 뜨면 더 뜰 것이 없을 만큼 바닥에 깔린 스프가 나올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틀림없음을 확인하였다.
코스 요리를 다 먹고 나자 그 적은 양의 음식이 위를 자극하여 도리어 배가 고파졌다.
양보다 질이라 하지만 질적으로 뭐가 좋았던 것인지 아리송한 가운데 그저 양만 줄였을 뿐
마치 보이스피싱 전화에 당한 것 같은 불쾌감이 든다.
잘 먹고자 하는 본능을 무참히 짓밟고 많은 돈만 받아간 이 식당에 또 결별을 고한다.
하기야 나 하나 안 간다고 그 식당이 망하지는 않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다.
폼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나 넘치니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둥둥 뜬 마음으로 이 곳에 오겠지.
여기저기 다녀보아도 내 맘에 쏙 드는 곳이 없다. 아니 그걸 기대한 내가 웃긴다.
또 사람이나 식당이나 겪어봐야 진국인지 아는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진작에 알고 있던 것을 잠시 잊은 것은 순전히 더위 탓이다.
소설이긴 하지만 뜨거운 태양 탓에 살인까지 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뜨겁고 정신없는 와중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군인들의 죽음, 한 사람은 자살, 한 사람은 病死
군인들의 죽음은 누구라도 그렇지만 가슴 찢어지게 아프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6.25 기념식에 불참했다고 나중에 알았다. (뉴스를 안보기 때문이다)
더 더워졌다.한증막같다. 태양이 내 머리에 꽃히는 것 같다.
또 한 사람은 정치인인데 처음엔 거짓말했다가 나중엔 시인하고 자살했다. 극단적 선택을 안할 수 없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또 한 사람은 병 중에도 연단에 서서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던 여자인데 사람들은 그녀를 투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애국자로 부른다.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막말과 선동과 유언비어와 갖은 비도덕적 언행을 삼가는 정치가 되었으면 한다. 정치가 꼭 격투기 시합을 보는 것 같다. 죽을 때 끼지 팬다. 저만 옳다고 한다. 국민들은 그에 따라 분열하여 더하면 더했지 격투기 뺨친다. 과격하고 MSG쳤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유언비어 퍼뜨리고., 의심하고 음모를 꾸미고 목소리만 높이고.. 인구도 줄어드는데 하다하다 자살률도 세계 1위를 하니 ... 사람들은 맛집이니 뭐니 돌아다니지만 나는 세상이 싫어 산 속에 은둔하는 도사처럼 다시 내 부엌으로 돌아왔다. 산 속의 도사가 풀뿌리와 나무껍질과 솔잎 등을 먹으며 살아간 것 처럼 살게될 것같다. 더워서 나가기도 귀찮네 오랜만에 냉장고를 열어보고 심호흡을 한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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