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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2일 07시 28분 등록
「유년 시절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층의 정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p16

갑자기 이상해 졌다. 전혀 글 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심적 충격을 입은 것 같다. 얼마간 됐다. 고질병일 런지도 모른다. 끈기 없는 사람의 대표적 예와 케이스. 이런 식으로 급작스레 일을 중단한 경험이 몇 번인가 있다.

어려서 한 열 살 무렵에 고전무용이 그랬다.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아버지는 워낙에 바쁘다며 집안일에 별로 신경을 쓰시지 않고 전적으로 어머니께 일임하다시피 하셨다. 성품이 자상하셨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고명딸에 막내였음으로 내가 하고 싶다는 무엇이건 승낙을 하셨을 법하지만, 나는 무엇을 조르거나 한 적이 그다지 없었다. 오빠들과는 나이차이가 많아서 아예 나와 상대할 일이 별반 없었다. 그래서 꿈꾸는 많은 것들이 관계와 존재 사이에서 무지와 모름다움으로 인해 떨어져 나갔다.

한동네에 사는 아이와 엄마들 끼리 서로 알아서 우리는 같은 무용학원에 다녔다. 그 집은 우리보다 살림이 넉넉했고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겨우 학원에 다닐 뿐이었다. 그러나 무용은 재미있었고 어려서부터 키가 컸기 때문에 나는 오래 다닌 언니들과 같은 줄에 서서 무용을 하곤 해서 그런지 제법 잘하였다. 어느 날 시민회관에 나가서 발표회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우리 집에서는 나를 내보내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고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다. 그 후로 며칠 안가서 나는 무용학원에 더는 나가지 않았다.

일찍이 나는 어린 내 선에서 대강 중도 포기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막내로 자라온 눈치코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머님은 사는데 신경 쓰시느라 내가 무용학원에 나가건 말건 그깟 문제는 안중에도 없으셨으리라. 그다지 탐탁해하지 않은 채 남들이 가르치니 같이 가르쳐보신 것뿐이기도 하셨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오륙년 전, 아마 춤으로 나의 재능을 키워주실 생각은 전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런 것 잘하면 팔자가 사나워질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 귓전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나는 나의 꿈꾸고자 하는 존재성을 들어낼 줄 몰랐고(모름다움) 어머니를 설득시켜 내 마음을 알게 하는(아름다움) 관계성도 가지질 못했다.

어려서 나는 나의 의사표현을 하기보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특히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주 많이 그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내 의도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거나 판단하실 때 무척 답답해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 대부분이 그렇기도 했거니와 초등학교 때에는 내 옆에 친구가 나를 괴롭혀도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런 것쯤은 선생님은 다 알고 계시리라 철썩 같이 믿고 있거나 헤아려 주길 바랐다.

어린애 같지 않게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칭찬처럼 종종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나의 심중을 다 이해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밝힐 줄도 잘 몰랐다. 성격과 기질적 성향을 떠나, 아마도 어설피 많이 참아야 한다는 의식이 더 강했던 듯싶다. 존재감을 위해서도 그렇고 관계를 생각해봐도 그것이 당시 배운 대로의 처신이었음에 틀림없다. 내 아이, 아니 지금의 아이들은 어떨까.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그때 우리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십분 헤아려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한번은 이런 나의 혼자만의 고지식한 의식과 부딪혀서 호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인데, 나는 사립에 다녔고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이 늘 잘하길 바라셨다. 언젠가 전체 평균이 떨어져 반 대항에서 중간고사 성적이 다른 반에 밀린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 전체에게 기합을 주셨다. 잘 하겠느냐는 질문에 다짐을 받는 것인데, 나는 선생님의 질문이 너무 당연하고 우리 반의 성적이 떨어진 것은 나 역시도 책임이 있으며 더 잘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뜻에서 고개를 숙였더랬다. 그런데 그 순간 느닷없이 따귀가 날아왔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어찌 선생님께서 내 마음을 이다지도 모르신다 말인가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잊어지지 않는다.

아마 그때 선생님은 경쟁에 뒤진 것이 속상해서 아이들의 표정이나 생각보다 당신의 감정에 더 복받쳤던 듯싶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일은 내게 아주 오래도록 충격이었고 몹시 억울하고 부당한 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내 뒤에 아이들은 내가 맞는 것을 보고 죄다 소리 높여 “잘 하겠습니다”를 외쳐댔고 덜 맞을 수 있었으며, 지금에 와서 그때 일을 기억조차 하지 않을 만큼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지 모른다. 방과 후면 우리는 몇몇 친구들과 늘 선생님의 집에 잘 들르곤 할 만큼 친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 돌이켜 보건데 그 선생님의 열의는 어디가고 아직도 따귀자국만 남아있는 것은, 스승의 의지를 뛰어넘지 못한 여태도 어린 미흡함인가 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때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다지만 관계의 미숙함을 탓하기보다 존재감이 앞서는 것이런가.

어려서부터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내가 뭐라 하기 전에 혹은 친구가 뭐라 하기 전에 서로의 눈길만 보고 짐작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하였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과는 별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되었고, 누가 뭐 하자 하면 별 반론 없이 합일이 되곤 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로 상대를 알기보다 서로에 대한 무의식적 관찰과 애정으로 관계를 맺어 왔던 것이었나 보다. 자랑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친한 친구가 내 속을 썩여 피해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오래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던 것(아름다움)이리라.

그 고마움을 사회생활을 해보며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복잡 다난 複雜多難 하고 묘해서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주러 갔다가 욕을 먹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기도 하며,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관심을 받기도 하는 걸보면 천지의 조화인지, 조상님의 음덕의 발동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아이러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선인은 인간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 중용中庸으로서 덕德을 쌓고 깨우치라 이르셨나보다. 사랑에 울고 돈에 속타봤다지만 현실과 이상을 구분 못함인지 나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내 방식이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티 없이 맑고 고왔던 그래서 그 마음이 순결했던, 그 시절 동무들과 같은 마음들이 늘 그립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본래의 어릴 적 純眞無垢의 그러한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임을 믿는다.

다시 마음을 추슬러야 하겠다. 삶의 자락에서 느닷없이 휘몰아치는 들뜬 마음의 거품들을 걷어내고 어제보다 나아지기를 정녕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해가 거듭할수록 습관이나 성품을 고칠 겨를이 별로 없고, 꿈꿀 시간이나 열심히 해볼 날도 아무 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닐 것이며,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운명과 스스로의 약속에 복福 짖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부족함이 넘쳐도 이 과정을 포기할 수가 없다. 책을 낳지 못하는 불임이 될지언정, 나는 이 시간의 강물 속에 뛰어든 한사람이고 싶다. 모름다움을 깨우쳐 아름다움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우리다움의 신화들 가운데 하나의 의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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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바다
2007.11.12 08:29:22 *.246.146.170
요즘은 저를 돌보느라 바빠서 기도도 드리지 못함에 죄송스럽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나자빠지는 마음을 추스리느라 지치기도 합니다.

누님의 열정은 언제나 이 공간의 신바람이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훌륭한 열매를 맺을 것을 믿습니다. 열매만 기대하기에는 과정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가끔은 열매가 없어도 좋을 것이란 생각도 해 봅니다. 과정 밖에 서 있는 사람이 이런 예기를 하는 것이 외람되지만, 그냥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 아름다운 공간과 시간을 함께 소유하는 많은 분들이 다 행복한 한 주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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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11.12 10:16:25 *.92.16.25
'나는 아무 생각없이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대목을 읽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누이의 깊고 순수한 관계를 추구하는 마음이 푸근하게 느껴지는 글이구려. 왜 이런 말이 있잖수? 아름다움의 '아름'은 알음[知] 이고 앓음[痛]이다. 알지 못하고, 앓지 않고 어찌 아름다워지겠수? 누나 흰머리가 가끔 희끗보이지만 예전보다 아름다워진 거 분명하오. 누가 여기에 토를 달겠수?
참, 중간에 간간이 한자를 섞어 쓰니 색다른 맛이오. 종종 그렇게 해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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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12 12:18:49 *.75.15.205
파란바다님. 늘 고마워서리...

창밖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은행잎이 햇빛과 어울려서 너무 고와요. 많이 바쁘시군요. 잊지 않고 응원해 줘서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요.

건강하시고 책도 많이 보시고 글도 쓰시면서 기도 많이 하셔요.
저는 참 게으르지만 차츰 고쳐나가도록 할게요. 잘 지내세요. 감기 조심 하시고요.

칸, 왜 웃으셔? 어제말야, 과제는 솔직히 하기 싫고 ㅋㅋ (사부님 못들으시겠지?) 난데없이 새빨간 떡볶이에 따끈한 순대가 먹고 싶어서 사부님께 덧글 달려고 했다지 뭐유. 억지로 참았네 그려. ㅎㅎ

대학로 그 맛있는 떡볶기집에서 순대랑 오뎅 먹고 싶다. 그 집 정말 맛있었는데... 아우님 닭똥집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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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자
2007.11.16 17:28:01 *.167.208.253
글이 안써진다고 함에도 이토록 기~인 글을 쓸 수 있는 건 언니뿐이지요. ㅎㅎㅎ 저도 막내로 자라서인지 위에 언니가 써둔 말들이 공감이 가네요.

언니야말로 이미 아름다운 사람인거 같은데...왜 굳이 모름다움을 넘으시려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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