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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등본’에서 ‘가족관계증명서’로
이 제도의 변화는 이제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해당 당사자들의 개인적 요구로 받아들여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고의 전환과 인식의 열림에 근접함인가?
구직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하게 되면 관계기관에 호적등본 등을 제출하여 가족사항을 밝히거나, 때로는 타인으로 하여금 확실한 신분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등의 일이 발생한다. 그럴 경우에는 주민등록표 등 외에 호적등본이라는 서류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이 서류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기재사항에는 개인의 모든 사항들이 다른 어떤 서류들에 비해 가장 정확하게 조목조목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로 그동안에는 외부에 가족관계를 증명하고자 할 때는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동사무소 등을 방문하여 호적등본을 떼어달라고 신청해야 했다. 그러면 그 안에는 가족관계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다 기재되어 나왔다. 이러한 것이 자세한 인적사항을 알기에 충분히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서류는 그동안 어느 부분 필요이상의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가족관계의 사실여부만을 검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무슨 일에 의해 어떤 절차로 등재됨이 확연히 들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계되는 역사는 물론 가족의 행적까지 다 함께 붙어서 덩달아 따라다녀 침해의 소지가 되기도 했다.
일테면 서류상의 출생지나 본적 등을 파악하고 가족관계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떠나, 그 장본인이나 가족 가운데에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만큼을 누구와 어떻게 살았고 언제 헤어졌으며 등의 문제까지도 시시콜콜히 다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 이혼 후 실제로 내 친정 가족에게 서류상의 이러한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이혼 시에 호주이신 아버지의 호적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일가 창립을 단행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개인으로서는 본가로 가는 것이 서류상 소위 오히려 깨끗하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시집을 갔다가 되돌아 왔는지가 덜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가 창립을 하게 되면 전 남편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게 되기 때문에 만약에 재혼 따위를 염두에 둘 경우는 다소 덜 유리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 주는 것이 싫어서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고집하였던 일면도 있다. 그렇게 하면 본가의 내 아버지 호적에는 어느 집으로 시집 가 있는 것으로만 나오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태 나는 아버지의 호적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되어 있다.^^
지난 정부로 하여금 여러 부분에 걸쳐 가족법이 다듬어 지고 수차 개정되면서 호적등본에서 가족관계증명서로 치환되는 이 제도의 변화는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제도에 비하면 새로운 이 제도로 인해 나와 같은 이러한 부분들은 어느 일정 부분을 상대가 고의적으로 숨기면 이제는 예전보다 알아내기가 까다롭게 되어버리는 일면도 없지 않다. 쉽게 말해서 속고만 산다면 이 제도는 어느 부분 위험할 수 있고 상대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다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교제 상대자의 재혼 등의 여부 경우라든가 상대 가족의 가족사를 꼼꼼히 알기에는 이제는 서류적 사항만으로는 그 진위여부眞僞與否(?)를 가릴 수 없이 요원遼遠하게 될 소지가 있다. 12번 결혼하고 이혼해도 이 서류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즉 상대와의 교제를 통해 알아내지 못하면 속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철저히 개인들의 의사와 역할에 맡겨지는 부분이다. 좋게 보면 서로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는 신용사회로의 초석이 되게 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잘 지켜져서 그렇게만 된다면 바랄 것도 없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악용되거나 선의자가 본의 아니게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더한층 주의를 요할 일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태까지의 우리 사회는 기존 제도권의 틀에 맞추어져 개인의 인권이나 기본권의 침해를 받을 소지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쉽게 말하자면 나와 아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의 그 전적이 빌미감이 되기도 하고, 상대의 약점으로 들추며 해당 당사자는 다분히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인사담당자들로 하여금 나는 ‘지난 여름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있으니 알아서 불어라’ 라는 식의 눈총을 받거나, 혹은 표면적인 결격사유에 해당되지는 않더라도 네 눈으로 보듯 남과는 다른 당신은 이러이러한 전적을 가지고 있으니 내면적으로는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는 여지의 위험한 공공연한 합법적 논거 제시에 악용되어 질 수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법과 규율의 잣대와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부터 해당 사항에 부합하는 정확성과 공정성에 적합하게 마땅히 처리되지 못하고, 암암리에 개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필요이상으로 곡해하는 편협성을 보존케 할 우려로 작용되어 다분히 부당성을 내포한 채 관행으로 처리됨이 없지 않아왔다고 하겠다.
이러한 부분은 작가로서 一人大學을 운영하고 있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홈페이지 구소장님의 언제가의 칼럼 <다름, 그 위대한 위안에 대하여>의 어느 부분과 그 맥을 함께하여 살펴보게 한다.
『문명 마다 다른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많은 21세기적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허용의 한도가 좁은 폐쇄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가 가장 고약한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민지의 생활 그리고 해방 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독재정권은 사회의 다양성과 자유의 수준을 엄격히 제한했다.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모두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었고 곤욕을 치뤘다.』
자칫 다름은 서로에게 틀림으로 인식된 채 伏地不動복지부동의 고지식함을 남발할 수 있다. 과거의 인식의 틀을 계속해서 고집하다보면 더 이상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착상태에 빠져버리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이란 물처럼 흐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체성이란 이미 만들어져 형성된 딱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리고 기존의 정체성의 어딘가를 깨뜨릴 수 있는 다른 생각과 다른 세계는 자칫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지고는 한다.
마침 오늘 호적에 관한 서류를 신청하려고 보니 명칭이 바뀌었단다. ‘가족관계증명서’로 말이다. 게다가 내용도 완전히 확 바뀌어 딴 판으로 간출하게 달라져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장수만도 대여섯 장이 호치케스에 묶여져 여러 장이 딸려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우선 부피부터가 가볍고 한 장 안에 깔끔히 필요사항만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가. 순간 “세상에, 이럴 수가!” 하는 가슴 한구석 알싸한 울먹임 같은 감춰진 탄성이 새어나온다.
무엇에 쓰려고 호적등본이나 하나 떼러 갔다가 무심결에 받아들게 된 이 서류 양식의 간소한 변화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관련 서류를 창구에 신청 시 명칭이 바뀌었다고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름이나 바꾸고 내용은 그게 그것이겠지 했다. 그런데 나오는 서류를 보니 너무나 가뿐한 것이 아닌가. 단순히 본래의 취지대로 가족관계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차르르르 마치 인쇄물이 빠르게 밀려나오듯 내 머릿속 기억의 여러 장면들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빠른 호흡으로 넘나든다.
우선 불필요한 부분을 완전히 제거한 그 내용의 간결함이 주는 깔끔함의 반가움일랑 차치하고라도, 서류양식의 변화와 격랑의 전환은 그동안의 서류가 가진 역사와 그 의미를 새삼 더듬어 보게 한다. 긴 세월 동안 서류 한 부분으로 말미암은 얼마나 많은 사건과 의미들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서류의 한 기재 내용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파생적으로 유발하여 왔으며, 또한 얼마나 불필요한 형식에 얽매어 우리의 사고를 고정관념의 틀 속에 꽉 가두어 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깨달음이다.
그랬구나. 이렇게 간출한 것을 구질구질하게 엮어 달아매어 놓고서 그토록 오랫동안 불필요한 멍에를 끈덕지게 달고 힘겹게 살아가게 하였던 것이로구나. 마치 호적 등본이라는 서류 안에 그동안의 내 삶이 그대로 투영되고 반영되어 있었던 듯하다. 미숙한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의 한계와 굴레에 천형처럼 갇혀 살아왔던 것에 그동안의 회한이 찾아든다.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과 함께 나의 지난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바뀐 제도와 더불어 변화의 새로움조차 서글픈 감회에 젖어들게 한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공연한 바위덩어리의 허무함에 어느 일면 무색해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구직 시 당연한 구비조건으로 전재되어 있는 이 서류를 제출해야 할 때마다 본의 아니게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질문과 선입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진땀을 빼곤 하였던가. 심지어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려고 신청을 할 때만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흘깃거림과 “혼자사세요?” 라는 한톤 높게 쏘아붙이듯 대하는 불필요한 질문에 얼마나 마지못한 대답을 어이 없이 해야 했던가 말이다.
나의 경우 좀 더 공식적인 공공기관에 이력서를 내는 것을 그래서 더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괜시리 마치 결격 사유자를 뽑아주는 듯한 상대의 거들먹거림이나, 혼자 살면서 일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작은 중소 병원급에서 일할 때면 사소하게 받아왔던 차별성 불이익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일테면 이런 것들이다. 명절 비상근무 시에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냐 면서 자기들 멋대로 나오라고 지정해 놓는 경우 등이 아주 허다했지 뭔가. 경력을 가지고 연봉이나 월급 책정을 할 때면 본말이 전도되게시리 자기들이 인상시켜주기 싫음을 교묘하고 공공연하게 뒤집어씌워 “혼자 사는 데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해요? 라는 말도 안 되고 되먹지 못한 구실과 협상들을 얼마나 많이 거쳐야 했던가 말이다. 이 간단한 서류 요식 한 장이면 될 것을 너덜너덜 있는 대로 다 달고 나와서 뭇 사람들을 괴롭혔던 공공제도에 대한 기막힘이, 오늘은 마치 늦게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시원섭섭함과 같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는 심정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제와 그나마 이렇게라도 행해지는 것이 다행이긴 하기에 그 씁쓸함에 절로 묘한 표정을 짓고 만다.
우리 삶의 부적절한 관행에 대하여 공공기관의 앞장섬은 정치와 제도가 마땅히 해나가야 할 몫이고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제도가 먼저일까, 우리의 인식이 더 먼저 앞서야 하는 걸까? 만약에 눈에 보이지 않고 몰라서 상대를 인정하는 것과 눈에 뜨이는 공교로움으로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면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또 이는 제도적 조치로서만이 완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제도가 어느 정도의 뒷받침을 해주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한 사람인데 이러한 사항들이 모두 기재되어 있을 때와 기재되어 있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하더라고 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기에 우리는 보다 나은 의식 수준과 인식의 전환을 모색하는 가운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타인을 향한 진심어린 이해와 배려를 가질 수 있는 포용과 열림의 자세를 잘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열림과 사고의 유연성은 무엇으로부터 어디서 어떻게 올 것인가? 아마도 그래서 끝없는 부단한 배움과 늘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한 것일 게다. 부지런히 읽고 써야 함의 이유가 여기에서도 느껴진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루를 잘 살아가게 하는 황홀한 일상의 거듭남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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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의 변화는 이제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해당 당사자들의 개인적 요구로 받아들여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고의 전환과 인식의 열림에 근접함인가?
구직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하게 되면 관계기관에 호적등본 등을 제출하여 가족사항을 밝히거나, 때로는 타인으로 하여금 확실한 신분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등의 일이 발생한다. 그럴 경우에는 주민등록표 등 외에 호적등본이라는 서류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이 서류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기재사항에는 개인의 모든 사항들이 다른 어떤 서류들에 비해 가장 정확하게 조목조목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로 그동안에는 외부에 가족관계를 증명하고자 할 때는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동사무소 등을 방문하여 호적등본을 떼어달라고 신청해야 했다. 그러면 그 안에는 가족관계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다 기재되어 나왔다. 이러한 것이 자세한 인적사항을 알기에 충분히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서류는 그동안 어느 부분 필요이상의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가족관계의 사실여부만을 검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무슨 일에 의해 어떤 절차로 등재됨이 확연히 들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계되는 역사는 물론 가족의 행적까지 다 함께 붙어서 덩달아 따라다녀 침해의 소지가 되기도 했다.
일테면 서류상의 출생지나 본적 등을 파악하고 가족관계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떠나, 그 장본인이나 가족 가운데에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만큼을 누구와 어떻게 살았고 언제 헤어졌으며 등의 문제까지도 시시콜콜히 다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 이혼 후 실제로 내 친정 가족에게 서류상의 이러한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이혼 시에 호주이신 아버지의 호적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일가 창립을 단행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개인으로서는 본가로 가는 것이 서류상 소위 오히려 깨끗하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시집을 갔다가 되돌아 왔는지가 덜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가 창립을 하게 되면 전 남편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게 되기 때문에 만약에 재혼 따위를 염두에 둘 경우는 다소 덜 유리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 주는 것이 싫어서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고집하였던 일면도 있다. 그렇게 하면 본가의 내 아버지 호적에는 어느 집으로 시집 가 있는 것으로만 나오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태 나는 아버지의 호적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되어 있다.^^
지난 정부로 하여금 여러 부분에 걸쳐 가족법이 다듬어 지고 수차 개정되면서 호적등본에서 가족관계증명서로 치환되는 이 제도의 변화는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제도에 비하면 새로운 이 제도로 인해 나와 같은 이러한 부분들은 어느 일정 부분을 상대가 고의적으로 숨기면 이제는 예전보다 알아내기가 까다롭게 되어버리는 일면도 없지 않다. 쉽게 말해서 속고만 산다면 이 제도는 어느 부분 위험할 수 있고 상대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다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교제 상대자의 재혼 등의 여부 경우라든가 상대 가족의 가족사를 꼼꼼히 알기에는 이제는 서류적 사항만으로는 그 진위여부眞僞與否(?)를 가릴 수 없이 요원遼遠하게 될 소지가 있다. 12번 결혼하고 이혼해도 이 서류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즉 상대와의 교제를 통해 알아내지 못하면 속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철저히 개인들의 의사와 역할에 맡겨지는 부분이다. 좋게 보면 서로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는 신용사회로의 초석이 되게 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잘 지켜져서 그렇게만 된다면 바랄 것도 없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악용되거나 선의자가 본의 아니게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더한층 주의를 요할 일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태까지의 우리 사회는 기존 제도권의 틀에 맞추어져 개인의 인권이나 기본권의 침해를 받을 소지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쉽게 말하자면 나와 아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의 그 전적이 빌미감이 되기도 하고, 상대의 약점으로 들추며 해당 당사자는 다분히 선입견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인사담당자들로 하여금 나는 ‘지난 여름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있으니 알아서 불어라’ 라는 식의 눈총을 받거나, 혹은 표면적인 결격사유에 해당되지는 않더라도 네 눈으로 보듯 남과는 다른 당신은 이러이러한 전적을 가지고 있으니 내면적으로는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는 여지의 위험한 공공연한 합법적 논거 제시에 악용되어 질 수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법과 규율의 잣대와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부터 해당 사항에 부합하는 정확성과 공정성에 적합하게 마땅히 처리되지 못하고, 암암리에 개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필요이상으로 곡해하는 편협성을 보존케 할 우려로 작용되어 다분히 부당성을 내포한 채 관행으로 처리됨이 없지 않아왔다고 하겠다.
이러한 부분은 작가로서 一人大學을 운영하고 있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홈페이지 구소장님의 언제가의 칼럼 <다름, 그 위대한 위안에 대하여>의 어느 부분과 그 맥을 함께하여 살펴보게 한다.
『문명 마다 다른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많은 21세기적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허용의 한도가 좁은 폐쇄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가 가장 고약한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민지의 생활 그리고 해방 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독재정권은 사회의 다양성과 자유의 수준을 엄격히 제한했다.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모두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었고 곤욕을 치뤘다.』
자칫 다름은 서로에게 틀림으로 인식된 채 伏地不動복지부동의 고지식함을 남발할 수 있다. 과거의 인식의 틀을 계속해서 고집하다보면 더 이상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착상태에 빠져버리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이란 물처럼 흐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체성이란 이미 만들어져 형성된 딱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리고 기존의 정체성의 어딘가를 깨뜨릴 수 있는 다른 생각과 다른 세계는 자칫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지고는 한다.
마침 오늘 호적에 관한 서류를 신청하려고 보니 명칭이 바뀌었단다. ‘가족관계증명서’로 말이다. 게다가 내용도 완전히 확 바뀌어 딴 판으로 간출하게 달라져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장수만도 대여섯 장이 호치케스에 묶여져 여러 장이 딸려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우선 부피부터가 가볍고 한 장 안에 깔끔히 필요사항만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가. 순간 “세상에, 이럴 수가!” 하는 가슴 한구석 알싸한 울먹임 같은 감춰진 탄성이 새어나온다.
무엇에 쓰려고 호적등본이나 하나 떼러 갔다가 무심결에 받아들게 된 이 서류 양식의 간소한 변화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관련 서류를 창구에 신청 시 명칭이 바뀌었다고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름이나 바꾸고 내용은 그게 그것이겠지 했다. 그런데 나오는 서류를 보니 너무나 가뿐한 것이 아닌가. 단순히 본래의 취지대로 가족관계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차르르르 마치 인쇄물이 빠르게 밀려나오듯 내 머릿속 기억의 여러 장면들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빠른 호흡으로 넘나든다.
우선 불필요한 부분을 완전히 제거한 그 내용의 간결함이 주는 깔끔함의 반가움일랑 차치하고라도, 서류양식의 변화와 격랑의 전환은 그동안의 서류가 가진 역사와 그 의미를 새삼 더듬어 보게 한다. 긴 세월 동안 서류 한 부분으로 말미암은 얼마나 많은 사건과 의미들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서류의 한 기재 내용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파생적으로 유발하여 왔으며, 또한 얼마나 불필요한 형식에 얽매어 우리의 사고를 고정관념의 틀 속에 꽉 가두어 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깨달음이다.
그랬구나. 이렇게 간출한 것을 구질구질하게 엮어 달아매어 놓고서 그토록 오랫동안 불필요한 멍에를 끈덕지게 달고 힘겹게 살아가게 하였던 것이로구나. 마치 호적 등본이라는 서류 안에 그동안의 내 삶이 그대로 투영되고 반영되어 있었던 듯하다. 미숙한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의 한계와 굴레에 천형처럼 갇혀 살아왔던 것에 그동안의 회한이 찾아든다.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과 함께 나의 지난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바뀐 제도와 더불어 변화의 새로움조차 서글픈 감회에 젖어들게 한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공연한 바위덩어리의 허무함에 어느 일면 무색해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구직 시 당연한 구비조건으로 전재되어 있는 이 서류를 제출해야 할 때마다 본의 아니게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질문과 선입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진땀을 빼곤 하였던가. 심지어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려고 신청을 할 때만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흘깃거림과 “혼자사세요?” 라는 한톤 높게 쏘아붙이듯 대하는 불필요한 질문에 얼마나 마지못한 대답을 어이 없이 해야 했던가 말이다.
나의 경우 좀 더 공식적인 공공기관에 이력서를 내는 것을 그래서 더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괜시리 마치 결격 사유자를 뽑아주는 듯한 상대의 거들먹거림이나, 혼자 살면서 일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작은 중소 병원급에서 일할 때면 사소하게 받아왔던 차별성 불이익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일테면 이런 것들이다. 명절 비상근무 시에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냐 면서 자기들 멋대로 나오라고 지정해 놓는 경우 등이 아주 허다했지 뭔가. 경력을 가지고 연봉이나 월급 책정을 할 때면 본말이 전도되게시리 자기들이 인상시켜주기 싫음을 교묘하고 공공연하게 뒤집어씌워 “혼자 사는 데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해요? 라는 말도 안 되고 되먹지 못한 구실과 협상들을 얼마나 많이 거쳐야 했던가 말이다. 이 간단한 서류 요식 한 장이면 될 것을 너덜너덜 있는 대로 다 달고 나와서 뭇 사람들을 괴롭혔던 공공제도에 대한 기막힘이, 오늘은 마치 늦게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시원섭섭함과 같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는 심정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제와 그나마 이렇게라도 행해지는 것이 다행이긴 하기에 그 씁쓸함에 절로 묘한 표정을 짓고 만다.
우리 삶의 부적절한 관행에 대하여 공공기관의 앞장섬은 정치와 제도가 마땅히 해나가야 할 몫이고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제도가 먼저일까, 우리의 인식이 더 먼저 앞서야 하는 걸까? 만약에 눈에 보이지 않고 몰라서 상대를 인정하는 것과 눈에 뜨이는 공교로움으로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면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또 이는 제도적 조치로서만이 완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제도가 어느 정도의 뒷받침을 해주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한 사람인데 이러한 사항들이 모두 기재되어 있을 때와 기재되어 있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하더라고 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기에 우리는 보다 나은 의식 수준과 인식의 전환을 모색하는 가운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타인을 향한 진심어린 이해와 배려를 가질 수 있는 포용과 열림의 자세를 잘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열림과 사고의 유연성은 무엇으로부터 어디서 어떻게 올 것인가? 아마도 그래서 끝없는 부단한 배움과 늘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한 것일 게다. 부지런히 읽고 써야 함의 이유가 여기에서도 느껴진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루를 잘 살아가게 하는 황홀한 일상의 거듭남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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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 [55] 부러지러 가는 고속도로상의 連理枝 | 써니 | 2008.03.02 | 2627 |
565 | [54] 생명은 지프차를 타고 | 써니 | 2008.03.01 | 2846 |
564 | [모순이야기 #1] 가깝고도 아주 먼 사이 [1] | 여해 | 2008.02.27 | 3088 |
563 | [53] 연구원 4기 지원자 구이수님과 함께 떠오르는 큰오빠 생각 [2] | 써니 | 2008.02.27 | 3255 |
562 | [44]놀이 [1] | 한정화 | 2008.02.26 | 2637 |
561 | [칼럼45]생생한 여론 수렴기 | 素田 최영훈 | 2008.02.26 | 2437 |
560 | [52] 뇌신과 머리수건 [1] | 써니 | 2008.02.25 | 2921 |
559 | [51] 그게 참, 문제다 문제 | 써니 | 2008.02.25 | 2401 |
558 | [50]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에 부침 | 써니 | 2008.02.25 | 3095 |
557 | (41) 고양이게 먼저 고백하다 [8] | 香仁 이은남 | 2008.02.24 | 2637 |
556 | (40)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 | 香仁 이은남 | 2008.02.24 | 2584 |
555 | 성실함에 대하여 [6] | 구본형 | 2008.02.24 | 3595 |
» | [49] ‘호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의 차이 [3] | 써니 | 2008.02.20 | 11955 |
553 | [칼럼44]세종대왕, 광화문에서 만나다 | 소전최영훈 | 2008.02.17 | 27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