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창
- 조회 수 2789
- 댓글 수 8
- 추천 수 0
작은 뒷산을 오르는 오후. 언제 이랬던가 싶게 나무들은 가지마다 푸른 잎을 틔워내고 있다. 나무들뿐인가. 이름모를 풀들은 산길을 이미 푸르게 덧칠하기 시작했다. 싱그럽고 신비하다. 해마다 보는 봄의 푸른 잎들이지만 해마다 싱그럽고 신비하다. 지난주만 해도 삭정이 같은 나뭇가지만 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산은 푸른빛이 은은히 감돌고 있다. 혹한이라고 불린 겨울을 꿋꿋이 버티어내고 다시 찾아온 푸르름이 반갑고 고맙다.
나무가 겨울을 나는 방법은 신기하고 감탄스럽다. 추운 겨울이 되어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나무의 조직은 세포와 세포사이에 있는 공간에 얼음결정이 만들어 진다. 이 세포간극이 얼 때 세포안의 수분은 밖으로 빠져 나와 세포 밖에서 얼음결정을 만든다. 이 얼음결정은 세포보다 크기가 수백 배에서 수천 배에 이른다. 이 얼음결정이 겨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나무에게는 단열재로 작용해 세포가 얼어 죽지 않게 한다.
동시에 세포내 물질은 당류 농도가 높아져 결빙 온도가 낮아진다. 또 세포내의 수분함량은 최대로 낮아진다. 겨울동안 아주 최소한의 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혹한을 이겨내는 지혜이자 자연의 신비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세포간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세포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사람도 추위에 고통을 받는데 나무라고 겨울이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 맨몸으로 겨울이란 시련의 계절을 견디어 내는 것이리라. 맨몸으로 견디는 겨울의 혹한은 나무에게 작은 죽음과 같지 않을까. 그 작은 죽음과 싸워 이기기 위해 나무는 온몸으로 자신을 바꾼다. 자신의 몸속 세포의 수분을 얼려 방패로 삼고, 당류 농도를 끌어올려 결빙 온도를 낮추는 것은 온몸으로 표현하는 생존의 안간힘이다. 그런 노력이 있기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돋워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봄을 맞아 따뜻한 햇살 속에 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단지 나무의 생존력과 푸르름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 푸르름 뒤에는 혹한의 겨울이라는 험한 여정을 견디어낸 몸짓이 숨어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봄이 되었으니 나무가 푸르른 잎을 틔우기는 하지만, 그 푸른 잎이 때가 되면 그냥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세상의 어디에도 노력 없는 결과는 없다. 혹한을 지나며 나이테 하나를 더 늘린 나무의 그 몸짓은 마치 자신의 소명을 찾아 떠나는 신화속의 영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제 봄을 맞아 나무는 힘든 겨울을 지낸 보상으로 푸르름을 선물 받았다. 나무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단풍지는 가을을 지나면, 다시 겨울의 혹한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도 봄은 올 것이고,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보여줄 것이다.
내년 봄. 다시 그 푸른 잎 앞에 서 있을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나무가 사계절을 거쳐 봄을 맞듯이, 우리도 사계절을 거쳐 일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 일년이란 시간뒤에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다를 것이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봄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매양 결심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맞을 때 우리는 그 결심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꽃놀이에 취하곤 한다.
나무는 해마다 혹한을 견디어 내고 자신을 키워간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을 거치며 내 안의 영웅을 찾아 나무처럼 푸르른 잎을 돋아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년 봄 푸르른 나뭇잎 아래서 불어난 나이테와 뱃살만 두드리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여정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혹한의 시간 뒤에 만나게 될 우리의 잎이 유달리 푸를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IP *.214.252.3
나무가 겨울을 나는 방법은 신기하고 감탄스럽다. 추운 겨울이 되어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나무의 조직은 세포와 세포사이에 있는 공간에 얼음결정이 만들어 진다. 이 세포간극이 얼 때 세포안의 수분은 밖으로 빠져 나와 세포 밖에서 얼음결정을 만든다. 이 얼음결정은 세포보다 크기가 수백 배에서 수천 배에 이른다. 이 얼음결정이 겨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나무에게는 단열재로 작용해 세포가 얼어 죽지 않게 한다.
동시에 세포내 물질은 당류 농도가 높아져 결빙 온도가 낮아진다. 또 세포내의 수분함량은 최대로 낮아진다. 겨울동안 아주 최소한의 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혹한을 이겨내는 지혜이자 자연의 신비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세포간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세포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사람도 추위에 고통을 받는데 나무라고 겨울이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 맨몸으로 겨울이란 시련의 계절을 견디어 내는 것이리라. 맨몸으로 견디는 겨울의 혹한은 나무에게 작은 죽음과 같지 않을까. 그 작은 죽음과 싸워 이기기 위해 나무는 온몸으로 자신을 바꾼다. 자신의 몸속 세포의 수분을 얼려 방패로 삼고, 당류 농도를 끌어올려 결빙 온도를 낮추는 것은 온몸으로 표현하는 생존의 안간힘이다. 그런 노력이 있기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돋워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봄을 맞아 따뜻한 햇살 속에 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단지 나무의 생존력과 푸르름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 푸르름 뒤에는 혹한의 겨울이라는 험한 여정을 견디어낸 몸짓이 숨어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봄이 되었으니 나무가 푸르른 잎을 틔우기는 하지만, 그 푸른 잎이 때가 되면 그냥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세상의 어디에도 노력 없는 결과는 없다. 혹한을 지나며 나이테 하나를 더 늘린 나무의 그 몸짓은 마치 자신의 소명을 찾아 떠나는 신화속의 영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제 봄을 맞아 나무는 힘든 겨울을 지낸 보상으로 푸르름을 선물 받았다. 나무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단풍지는 가을을 지나면, 다시 겨울의 혹한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도 봄은 올 것이고,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보여줄 것이다.
내년 봄. 다시 그 푸른 잎 앞에 서 있을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나무가 사계절을 거쳐 봄을 맞듯이, 우리도 사계절을 거쳐 일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 일년이란 시간뒤에 우리의 모습은 많이 다를 것이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봄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매양 결심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맞을 때 우리는 그 결심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꽃놀이에 취하곤 한다.
나무는 해마다 혹한을 견디어 내고 자신을 키워간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을 거치며 내 안의 영웅을 찾아 나무처럼 푸르른 잎을 돋아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년 봄 푸르른 나뭇잎 아래서 불어난 나이테와 뱃살만 두드리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여정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혹한의 시간 뒤에 만나게 될 우리의 잎이 유달리 푸를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댓글
8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내년봄에는... [8] | 유인창 | 2008.04.13 | 2789 |
611 | [02]그리스에 남겨둔 내 슬픔 [4] | 오현정 | 2008.04.13 | 2973 |
610 | 내가 본 영웅들 [7] | 이은미 | 2008.04.13 | 3351 |
609 | [49] 자극과 반응이 쌓여간다. [3] | 교정 한정화 | 2008.04.08 | 2790 |
608 | [01]별자리와 비명횡사 [7] | 오현정 | 2008.04.08 | 3198 |
607 |
<01>황무지에서 나를 구원하자 ![]() | 이은미 | 2008.04.08 | 2981 |
606 | [85] 목련꽃 피는 사월에 만난 4기 연구원 11인의 가인들 [22] | 써니 | 2008.04.07 | 3719 |
605 | [84] 아이들 때문에 살지 말자 [7] | 써니 | 2008.04.03 | 3180 |
604 | [83] 여왕을 위한 예단과 혼수 허수아비의 방관 [1] | 써니 | 2008.04.03 | 2728 |
603 | [81] 무서운 년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 | 써니 | 2008.04.02 | 2627 |
602 | [80] 너무 빠른 권태 너무 이른 엇갈림 | 써니 | 2008.04.02 | 2373 |
601 | (45) 그림자의 정체 [6] | 香仁 이은남 | 2008.03.30 | 3026 |
600 | [79] 14박 15일 간의 이별 여행 [2] | 써니 | 2008.03.29 | 2876 |
599 | [78] 시누이와 월급통장 | 써니 | 2008.03.29 | 2365 |
598 | [77] 우리는 30 년 차이 | 써니 | 2008.03.29 | 2909 |
597 | [76] 미운 정 고운 정/ 글 속 편지 | 써니 | 2008.03.28 | 3123 |
596 | [48]서른 여섯 번째 생일 [3] | 한정화 | 2008.03.27 | 3047 |
595 | 소박하지만 소중한 일상들 [3] | 현운 이희석 | 2008.03.27 | 2893 |
594 | [47]기도를 그리는 벽 | 한정화 | 2008.03.25 | 3331 |
593 | [75] 천년고도 경주에 대한 동경 [2] | 써니 | 2008.03.23 | 26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