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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2일 23시 13분 등록

후드득… 이게 무슨 소릴까.
간단히 점심을 먹고 깜박 낮잠이 들었던 소파에서 귀를 기울입니다. 같은 소리가 이어서 들립니다. 후드득… 후드득… 아, 빗소리네요. 거실 창문에 비 듣는 소리가 연이어 들립니다. 아주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리이기도 하지요. 낮잠은 깨었지만 눈을 뜨지 않고 소파에 누워 빗소리를 들어봅니다. 후드득… 후드득… 기분이 좋아집니다.
창문에 비 듣는 소리, 처마를 타고 빗물이 떨어지는 이 소리를 듣고 싶어 교외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비가와도 빗소리를 소리를 듣기 어려웠습니다. 창문에 빗물이 번지면 그때서야 비가 오는구나 했지요. 빗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눈이 아니라 귀로 느낄 수 있는 빗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갈증과도 같은 욕망 이었습니다.
이제는 비가 오면 빗줄기보다 빗소리가 먼저 알려줍니다. 창문을 열어놓은 날에는 흙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귀를 깨웁니다. ‘쏴아’하고 갑자기 장대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요. 소나기 입니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훅하고 흙냄새가 올라옵니다. 빗줄기에 밀려 솟아오르는 흙냄새는 그리 좋은 냄새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잠시만 기다리면 됩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흙냄새는 비에 쓸려가고 온전한 비 냄새가 허공을 채웁니다.
보슬비나 이슬비는 소리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녀석들은 항상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조용조용 찾아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느 때는 땅을 어지간히 적신 다음에야 비가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부끄러운 걸까요? 아니면 수줍음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내숭? 하여튼 녀석들은 항상 조용하고 사근사근합니다.
빗소리는 가끔 창문을 두드리며 작은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이 혹시 모를까봐 그러는 것 같아요. 작은 소리로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요. ‘밖을 봐. 비가 와. 비가 온다고.’ 작은 외침이 들리면 창문을 내다보지요. 그러면 여지없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지요.
소파에 누워 빗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눈을 뜨면 귀를 간질이는 소리의 즐거움이 깨질까봐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귀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모든 신체감각을 귀로 집중시키지요. 모든 신경기관을 정지시키고 듣기만 합니다. 후드득… 후드득… 후드득…
눈을 뜨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층 지붕을 적신 비는 처마를 타고 흘러내려 작은 테라스 앞으로 빗줄기의 커튼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이층 테라스 앞의 작은 옥상을 적신 빗물은 배수구를 타고 일층으로 흘러내리겠지요. 배수구를 타고 나온 빗물은 일층 처마를 타고 내려온 빗물과 합쳐져 화단으로 향합니다. 빗물이 화단 옆을 지나 마당의 수돗가로 가면 하수구가 빗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빗소리가 조금 더 커집니다. 비가 많이 오는 모양이네요. 서서히 눈을 뜹니다. 아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내는 부엌에서 김치를 담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김장김치가 거의 떨어졌다고 하더니 김치를 새로 담그는 모양입니다. 거실 창문은 빗물이 온통 적셔 놓았습니다. 하품 한 번. 기지개 한 번. 기분 좋은 오후입니다.
부엌으로 가서 찻잔을 꺼냅니다. 평소 즐기던 녹차도 좋지만 이런 날은 향이 살아나는 커피가 제격이지요. 커피 두 잔을 만들어 아내의 손을 이끌고 이층으로 갑니다. 이층에 있는 작은 테라스로 가려는 것이지요.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아 비 오는 모습을 즐기는 것은 우리 부부의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마당을 내다봅니다. 마당 한쪽엔 화단이 있고 다른 쪽엔 텃밭이 있습니다. 텃밭에는 상추와 치커리가 한참 자라고 있습니다. 감자가 두 이랑이나 있고 파, 부추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은 대충 이 텃밭에서 해결합니다. 작지만 우리에겐 풍성한 텃밭입니다.
커피를 마신 뒤 우산을 찾아 쓰고 마당으로 나가봅니다. 한손에 소쿠리를 들고 나선 이유는 상추와 치커리를 뜯어 오려는 것이지요. 며칠 전 뜯어먹은 상추는 벌써 많이 자랐습니다.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봄에 잠깐의 노동을 하고 두세 달 즐거운 식탁을 꾸릴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고맙지요. 한달 쯤 더 지나면 감자도 수확을 합니다. 줄기를 캐어내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감자 캐기는 재미있는 놀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교외로 이사 온 뒤로는 생활의 여러 부분이 마치 놀이 같은 느낌을 줍니다.
뜯어 온 상추와 치커리를 부엌에서 씻기 시작합니다. 제법 크게 자란 상춧잎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김치 담그기에 손길이 분주합니다. 배추를 씻어 소금에 절이더니 큰 그릇에 담아 옆으로 밀어 놓습니다. 내일쯤 양념을 하면 되겠지요. 내일은 일정이 없으니 아내와 같이 양념을 버무리며 김치를 담글 생각입니다.
상추와 치커리를 다 씻고 저녁에 먹을 된장찌개 재료를 마련해 놓습니다. 아내가 한 것보다야 맛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식구들은 맛있게 먹어줍니다. 이제 밥만 하면 되겠네요. 쌀을 씻어 바가지에 불려 놓습니다. 아이가 들어오면 밥을 하고 준비한 된장찌개를 끓이면 또 한 끼의 저녁식사가 완성되는 거지요.
저녁준비를 마치고 읽던 책을 집어 듭니다. 아이가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거든요. 아내는 옆집에 준다고 상추를 싸서 들고 나섭니다. 한참 책을 읽다 내다보니 빗줄기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비가 멈추려는 모양이지요. 한쪽 하늘에 구름이 벗겨지면서 땅거미가 천천히 몰려옵니다.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우르릉… 이게 무슨 소릴까.
간단히 점심을 먹고 깜박 낮잠이 들었던 소파에서 귀를 기울입니다. 같은 소리가 이어서 들립니다. 우르릉… 우르릉… 아, 빗물이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네요. 비가 오는 모양입니다.
비가 제법 와도 빗소리는 들을 수 없고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는 물소리가 먼저 들립니다. 아파트가 다 그렇지요 뭐.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니 역시 비가 많이 옵니다. 깜박 잠들었던 사이에 비가 오기 시작했나 봅니다. 크게 기지개를 한번 켜고 베란다로 나가 앉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땅을, 아니 주차장 아스팔트를 적시는 빗줄기를 내다봅니다.
비가 오면 가끔씩 베란다로 나가 쭈그리고 앉아있고는 합니다. 비를 내다보려 함이지요. 비를 보려 앉아있지만 매양 보는 것은 앞을 가리고 있는 다른 아파트의 창문들과 주차장에 가득한 자동차들입니다. 빗줄기는 그 속에서 줄기차게 땅을 두드리지요.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나 되었는지 가물가물 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 까지는 들어본 것 같은데 그 뒤에는 기억이 없네요. 참 듣기 좋고 기분 좋은 소리인데 말이죠. 교외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그건 참 어려운 일이지요. 이것저것 걸리는 게 한두 가지라야 말이죠. 결국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내리는 비를 내다보곤 하지요.
한참동안 빗줄기를 내다 보다 들어옵니다. 하품을 한번 길게 하고는 책상에 앉습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어둡고 아파트 창밖 허공엔 비가 가득하네요. 책상을 내려다보니 숙제가 가득 쌓여있습니다. 숙제를 해야겠는데 졸음이 또 몰려옵니다. 끄덕끄덕 졸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잠깐 더 자야겠습니다. 혹시 모를 일이죠. 잠을 자다 교외의 작은 집에서 사는 꿈을 꾸게 될 지도요. 하품을 하고 침대에 몸을 누입니다. 벌써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원하는 꿈을 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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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23 06:30:30 *.127.99.16
아파트가 아니라 텃밭이 있는 주택에 사시는군요.
텃밭을 가꾸는 아내와 함께 사는 그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된 쏘로우 보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자연을 즐기는 그대가 더 멋있어 보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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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6.23 09:19:27 *.34.17.28
빗소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네요~^^
자연의 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
이번주말에도 비가 온다기에 기대했는데.
햇빛이 쨍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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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23 09:30:41 *.36.210.11
그대가 머리를 기르고 무공해 댕기동자처럼 길게 꼬아 묶는다면? 닮았다. 누구를? 알아 맞춰 보시게나. ㅎㅎㅎ

넓은 앞마당에는 장작더미와 호미와 굉이 등이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고 아무때고 느닷없이 지인들이 들이닥쳐도 반갑다는 인사 대신 슬그머니 텃밭으로 나가 상추며 쑥갓 부추에다가 파와 고추, 토마토, 머구잎사귀와 콩잎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소복이 뜯어다가 개울에 살랑살랑 씻어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 찌게와 쌈장을 곁들여 싸먹으면서 불룩 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반주 한 잔에 벌개진 얼굴로 마누라쟁이 허벅지를 베개인양 더듬더듬 끌어다 베며 파고드는 중천의 낮잠이라... 비도 오고 눈도 내리는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고 구름에 떠 있는 신선이로세.

그나저나 오늘은 매연속을 휘집고 달려들어야 하는 깜찍한 도시의 월요일이로구먼. 꿈의 낭만과 현실 사이의 두개의 축으로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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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6.23 13:27:19 *.117.68.202
몇일전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봤는데 거기서 형 닮은 사람을 봤어...
내가 제일로 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였지...
형 머리길이만 비슷하면 딱이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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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6.23 17:02:47 *.97.37.242
아냐 그사람은 들개 닮았지. 창이 훨 낳다. 글쓰는거나, 생긴거나. ㅎㅎ

근데, 3분지 2를 읽을때 까정 난 정말 단독주택에 사는 줄 알았다.
소은님 봐, 아침에 잠이 덜깼는지 그냥 속아버렸잖아. ㅋㅋ
창님이 간절히 원하는 꿈인 모양인데, 머지않아 꿈 이루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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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23 17:24:56 *.127.99.16
그러게요, 깜빡, 그가 아파트에 산다고 한 말을 들은 적도 있는데 하도 사실적인 묘사를 하니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 같군요.
잠 덜 깬 아침의 실수(?)를 웃음으로 날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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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24 12:44:58 *.244.220.254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소박하면서도 운치있는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형님~ 책 대박나서 그런 집 사시면, 함 초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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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6.24 13:04:36 *.122.143.151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소박하면서도 운치있는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형님~ 책 대박나서 그런 집 사시면, 좀 사시다가, 저한테 싸게 파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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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24 13:09:46 *.84.242.254
오라버니들 또 남의 집서 장난 치시고 계시네..ㅉㅉ

빗소리 하나로 이렇게 글을 길게 쓸수 있는 창 오라버니 너무 부러비..
한 가지에 대해서 집중하시는 능력이 너무 탁월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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