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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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의 잊지 못할 인연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그에 못지않은 것이 남자들 군대 이야기다. 나 또한 군대 시절 이야기를 가끔하곤 한다. 그러나 축구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군발이들로부터 들어온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서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고 공자게서도 말씀하셨다. 오늘 이야기는 군시절 내 스승 이야기다. 그는 내 사수였다. 전경민이라는 내 고참과의 잊지 못할 이야기다.
1992년 10월에 국가로부터 논산훈련소로 가라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대학 1학년 때의 일이다. 그해 12월 퇴소식을 마치고 훈련소 동기들은 정해진 열차를 타고 떠난다. 일부는 후방으로 주특기 교육을 더 받으러 가고 그중 극히 일부는 바로 자대로 배치된다. 그때 당시 열차를 탈 때 맨 앞 칸과 그 다음 칸만 피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두 칸이 전방행이라는 것이다.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칸에 탈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10명에 1명 정도가 그 칸에 오르게 된다. 사실 그것이 그리 꼬인 군생활의 시작은 아니다. 어떻게 가든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째 칸에 올랐다.
논산을 출발한 기차가 서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낯익은 풍경 때문에 나는 이 길이 춘천 행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옆에 불과 몇 달 전까지 다니던 우리 학교가 보였다. 아주 잠간이지만 나에겐 그것도 위안이었다.
춘천에 도착했을 때 102 보충대 연병장엔 눈이 한 가득이었다. 논산에서는 이런 눈을 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춘천이 논산보다 북쪽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는 점심을 비상식량으로 먹고는 바로 예정된 곳으로 옮겨졌다. 처음엔 몇 십 명이 함께 움직였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점점 줄어 급기야 나를 포함해 달랑 3명이 남았다. 도착한 곳은 홍천이었다. 2명은 여단에 남고 나는 포병대대로 배치를 받았다. 대대에서 하룻밤 대기 후 바로 자대로 배치 받았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군인들의 일상적인 코스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꺼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내 군생활의 가장 큰 추억이자 얻음은 책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을 맺는데 결정적인 역할이 바로 대대 정비과 사수였던 전경민 병장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름끝에 ‘옹’자가 더 붙을 정도로 한참 나이든 후 군에 입대한 늦깍이였다.
그 시절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의 책읽기도 그리 변변치 못하지만 그때 당시 나의 책 읽기는 별게 없었다. 잠시 맛본 대학 1학년 1학기 때의 철학입문서 몇 권과 소설책이 전부였었다. 그런데 어떤 계기가 되어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와 책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난 그의 책에 대한 앎의 깊이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 때문에 방위산업체 연구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군에 왔다고 했다. 언 듯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학부라는 S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구소에 입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 길을 접고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4개월 고참이었다. 그러나 한번도 나에게 고참으로 군림하려하지 않았다. 아니 군림이라는 단어자체가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는 참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냐고 나에게 물었었다. 나는 그때 당시 도올 김용옥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포대 고참한테 얻어 읽고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빌미가 되었다. 그가 공학도의 꿈에서 한의학을 다시 공부하게끔 한 장본인이 김용옥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그는 제대 후 1개월 만에 수능시험을 보았고, 그가 바라던 바를 이뤘다.
나는 자연과학에 대해 알고 싶다고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처음 카오스 이론에 대해 들었고, 프랙탈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의 페러다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는 마치 영화를 틀어 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 해줬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이런 수많은 용어들을 알 수 있을까? 마치 국사시간에 연대별로 사건을 나열하듯이 그는 자연 과학사를 나에게 강의하듯 이야기 해줬다. 그리고 책을 추천해 줬다. 무슨 책부터 봐야하는지도 알려줬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군대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서 무척 기뻤다.
그와의 대화가 매일매일 기다려졌다. 우리는 오전에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공구실과 자재창고를 그와 함께 정리하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대부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은 프랙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나에게 풀어줬던 적도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 지식의 한계가 여실이 들어나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었다. 어떻게 저런 방정식하나가 프랙탈 같은 복잡한 그림을 그게 하는지 신기했다.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1년 정도였다. 그와 나눈 이야기의 내용을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때 당시의 느낌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디에서건 서로가 통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곤 한다. 지금도 그때 당시를 기록해 두었던 노트가 있다. 그 노트는 내 보물1호다. 이 노트만 보면 그가 생각난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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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그에 못지않은 것이 남자들 군대 이야기다. 나 또한 군대 시절 이야기를 가끔하곤 한다. 그러나 축구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군발이들로부터 들어온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서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고 공자게서도 말씀하셨다. 오늘 이야기는 군시절 내 스승 이야기다. 그는 내 사수였다. 전경민이라는 내 고참과의 잊지 못할 이야기다.
1992년 10월에 국가로부터 논산훈련소로 가라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대학 1학년 때의 일이다. 그해 12월 퇴소식을 마치고 훈련소 동기들은 정해진 열차를 타고 떠난다. 일부는 후방으로 주특기 교육을 더 받으러 가고 그중 극히 일부는 바로 자대로 배치된다. 그때 당시 열차를 탈 때 맨 앞 칸과 그 다음 칸만 피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두 칸이 전방행이라는 것이다.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칸에 탈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10명에 1명 정도가 그 칸에 오르게 된다. 사실 그것이 그리 꼬인 군생활의 시작은 아니다. 어떻게 가든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째 칸에 올랐다.
논산을 출발한 기차가 서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낯익은 풍경 때문에 나는 이 길이 춘천 행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옆에 불과 몇 달 전까지 다니던 우리 학교가 보였다. 아주 잠간이지만 나에겐 그것도 위안이었다.
춘천에 도착했을 때 102 보충대 연병장엔 눈이 한 가득이었다. 논산에서는 이런 눈을 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춘천이 논산보다 북쪽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는 점심을 비상식량으로 먹고는 바로 예정된 곳으로 옮겨졌다. 처음엔 몇 십 명이 함께 움직였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점점 줄어 급기야 나를 포함해 달랑 3명이 남았다. 도착한 곳은 홍천이었다. 2명은 여단에 남고 나는 포병대대로 배치를 받았다. 대대에서 하룻밤 대기 후 바로 자대로 배치 받았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군인들의 일상적인 코스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꺼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내 군생활의 가장 큰 추억이자 얻음은 책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을 맺는데 결정적인 역할이 바로 대대 정비과 사수였던 전경민 병장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름끝에 ‘옹’자가 더 붙을 정도로 한참 나이든 후 군에 입대한 늦깍이였다.
그 시절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의 책읽기도 그리 변변치 못하지만 그때 당시 나의 책 읽기는 별게 없었다. 잠시 맛본 대학 1학년 1학기 때의 철학입문서 몇 권과 소설책이 전부였었다. 그런데 어떤 계기가 되어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와 책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난 그의 책에 대한 앎의 깊이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 때문에 방위산업체 연구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군에 왔다고 했다. 언 듯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학부라는 S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구소에 입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 길을 접고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4개월 고참이었다. 그러나 한번도 나에게 고참으로 군림하려하지 않았다. 아니 군림이라는 단어자체가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는 참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냐고 나에게 물었었다. 나는 그때 당시 도올 김용옥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포대 고참한테 얻어 읽고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빌미가 되었다. 그가 공학도의 꿈에서 한의학을 다시 공부하게끔 한 장본인이 김용옥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그는 제대 후 1개월 만에 수능시험을 보았고, 그가 바라던 바를 이뤘다.
나는 자연과학에 대해 알고 싶다고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처음 카오스 이론에 대해 들었고, 프랙탈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의 페러다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는 마치 영화를 틀어 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 해줬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이런 수많은 용어들을 알 수 있을까? 마치 국사시간에 연대별로 사건을 나열하듯이 그는 자연 과학사를 나에게 강의하듯 이야기 해줬다. 그리고 책을 추천해 줬다. 무슨 책부터 봐야하는지도 알려줬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군대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서 무척 기뻤다.
그와의 대화가 매일매일 기다려졌다. 우리는 오전에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공구실과 자재창고를 그와 함께 정리하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대부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은 프랙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나에게 풀어줬던 적도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 지식의 한계가 여실이 들어나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었다. 어떻게 저런 방정식하나가 프랙탈 같은 복잡한 그림을 그게 하는지 신기했다.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1년 정도였다. 그와 나눈 이야기의 내용을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때 당시의 느낌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디에서건 서로가 통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곤 한다. 지금도 그때 당시를 기록해 두었던 노트가 있다. 그 노트는 내 보물1호다. 이 노트만 보면 그가 생각난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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