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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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촛불집회’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현재의 촛불집회는 단순히 정치적 이슈를 쟁점화하는 거리시위가 아니었다. 과거의 시위는 비장함과 경직됨을 요구했다. 대결의 구도였으며, 선동의 문화였다. 그러나 지금의 촛불집회는 ‘놀이의 장터’였으며, ‘축제의 공간’이었다. 아이를 무등 태우고 나온 부자, 유모차와 함께 하는 모녀, 커플 티셔츠를 맞춰 입은 연인들. 모든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집회문화가 새로운 변환(變換)의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려진 대로 촛불집회의 발화점은 어린 중고생들이었다. 처음 아무도 그 어린 학생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촛불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목소리는 인터넷이라는 파도를 통해 퍼져나갔다. 어린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 전국민적인 저항의 불꽃을 만들어낸 것이다.
처음 어른들은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훈계하려 했었다. “학생들은 학교에나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이에 학생들은 “사회를 책임지는 당신과 같은 어른들께서 잘 하셨다면,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이 거리를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철부지들 취급을 하던 어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고 만다.
부끄러웠다. 나 또한 어느 순간 ‘중년’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참여를 도외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 집회와 같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었기 때문이다. 알렌 B. 치넨은 중년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절망과 냉소주의’라고 지적했다. 중년들의 대다수는 젊은 날 마법의 힘을 잃어버렸다. 밥벌이를 변명 삼아 세상의 변화에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염세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젊은이들이 너무 확신에 찬 것이 문제라면, 중년들은 너무 믿음을 적게 가진다는 함정이 있다. 낭만적인 이상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힘든 현실과 책임 앞에 서서 아담과 이브처럼 일, 고통, 그리고 죽음과 씨름해야 한다.” – 알렌 B. 치넨,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中에서
그림형제의 우화처럼 중년은 당나귀의 삶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밥벌이의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을 흐리게 만드는 것 같다. 세상이 쉽게 변화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사회적 변화에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게 만든다.
어느 날 내 모든 우선순위는 내 가족의 안정적인 밥의 확보가 되어버렸다. 내 가족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는 세상의 부정의(不正義)와 타협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선술집 귀퉁이에서 소주잔을 건네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넋두리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다 그런 거야’ 라고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가족의 ‘밥’은 모든 것에 선행하는 절체절명의 문제다. 그리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과정 또한 가장 우선적인 문제이다. 자신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은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개입과 참여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혁명과 같은 변곡점(變曲點)은 정확히 이 경계에서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나는 군중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 속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 놓을 것이다.”(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中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시인(詩人)이었다. 그는 심장이 없는 언어를 쓰지 않았으며, 영혼이 없는 영감은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억압받는 민중(民衆)의 피눈물과 고단함을 함께 호흡하였다. 그에게 투쟁은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민중의 영원한 사랑을 믿었다.
글로 자유롭고 싶은,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글로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
모두 현실 참여적인 거대 담론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네루다는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현실과의 적절한 긴장의 유지를 지적한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作家)들이 진정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해야 할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네루다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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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난 촛불집회에 참여는 못하지만 감정적인 동조를 보내고 있지.
그렇다고 부끄럽다거나, 중년으로서의 냉소주의라고 생각치는 않네.
난 오히려 백범이 삼일운동 때 만세를 부르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대목을 생각하네, 백범은 이런 말을 했지.
“독립은 만세만 불러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장래 일을 계획, 진행하여야 할터인즉 나의 참, 불참이 문제가 아니니, 자네들은 어서 만세를 부르라.” [283p]
내 태도가 중년으로서의 회피나 임기응변인가?
아니면 벌써 노년에 접어들어 꼼지락 거리기가 귀챦은 건가? ㅎㅎㅎ
여하튼 네루다의 참여 정신은 배울점이 크다고 생각되는군.
그렇다고 부끄럽다거나, 중년으로서의 냉소주의라고 생각치는 않네.
난 오히려 백범이 삼일운동 때 만세를 부르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대목을 생각하네, 백범은 이런 말을 했지.
“독립은 만세만 불러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장래 일을 계획, 진행하여야 할터인즉 나의 참, 불참이 문제가 아니니, 자네들은 어서 만세를 부르라.” [283p]
내 태도가 중년으로서의 회피나 임기응변인가?
아니면 벌써 노년에 접어들어 꼼지락 거리기가 귀챦은 건가? ㅎㅎㅎ
여하튼 네루다의 참여 정신은 배울점이 크다고 생각되는군.

양재우
오홋!!
창형 Win~!!
당신을 "옥에 티 왕자"로 인정합네다~!!
앞으로 줄여서 "옥티왕자"라고 부를께여~!! ㅎㅎ
★우리말 바루기 "옥에 티"
임금의 가문이나 문중을 옥엽(玉葉), 임금의 도장을 옥새라고 하듯 예부터 동양에서는 옥을 귀하게 여겨 장신구 등 보석으로 만들어 왔다. 이와 같이 나무랄 데 없이 좋고 훌륭한 것에 난 사소한 흠을 '옥에 티'라고 한다. '옥에 티'와 '하늘의 별 따기'는 '에'와 '의' 구분에서 자칫 혼동을 일으킨다.
'에'의 뜻과 용법은 다양하지만 '옥에 티'의 경우 앞에 붙어 있는 말이 장소를 의미하는 부사임을 나타낸다. "들판에 서 있다" "하늘에 구름이 없다"처럼 상황이 발생한 장소를 나타낸다. 반면 '하늘의 별'의 '의'는 앞말을 관형사 구실을 하게 만들어 사물이 일어나거나 위치한 곳을 나타낸다. '거리의 빈민' '대지의 열기'처럼 앞말이 뒤의 단어를 수식하는 역할을 한다.
즉 "하늘에 별이 있다"는 별이 있는 위치가 하늘임을 가리키기에 쓸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별 따기'를 '의'가 아닌 '에'로 쓰려면 '하늘에 있는 별 따기'로 써야 올바른 표현이다.
'옥의 티'냐 '옥에 티'냐 논란이 있지만 사전들은 '옥에 티'를 굳어진 표현으로 보아 관용구로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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