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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6일 00시 06분 등록
나에 모든 것을 퍼내자

나는 요즘 자서전을 읽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를 몇 주 전 읽었고, 지난주에는 파블로 네루다라는 칠레 출신 시인의 일대기를 봤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오쇼 라즈니쉬라는 인도의 철학자가 쓴 그의 일대기를 읽고 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나는 소설 장길산을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읽었던 『장길산』. 그 『장길산』의 느낌이 든 것은 의외였다. 열권이나 되는 그 장편소설을 매일 한권씩 읽어갔고 마지막 페이지를 접는 순간 그길로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다음 편을 빼 들었었다.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길산의 리더십에 나는 푹 빠졌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지만 그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백범일지는 그때 장길산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논픽션과 픽션의 차이 만큼이나 그것을 가름하는 것은 괜한 일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정 중앙의 소용돌이에 놓여 졌던 분의 이야기는 의미심장을 넘어 내 눈을 시뻘겋게 충혈 시켰다. 그는 그의 과거를 퍼냈다. 그의 과거는 나에겐 짐작할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나라 잃은 슬픔에 분노했고, 스스로의 주권을 남에게 의지할 수 없다고 두 주먹 불끈 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책읽는 즐거움은 그보다 백범선생님 스스로 이야기 하시던 그의 철없던 어린 시절과 한 방에 왜놈을 쓰러 넘기던 조금은 당황스런 그의 모습이 나는 왠지 더 좋다. 민족의 선각을 즐거움이나 좋고 나쁨의 단순한 마음의 잣대로 가벼이 여기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백범에 더 가깝다고 느꼇다.

파블로 네루다. 솔직히 이분의 이름 여섯자를 안지는 얼마전의 일이었다. 구본형 선생님이 시를 좋아하신다며 한 편의 시를 홈페이지에 올리셨는데 그것이 네루다의 시였다. 처음 그 시를 접했을 때 참 히한한 사람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접해본 시와 그 냄새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라고 웃으며 내 어깨들 툭 건드리고는 손을 흔들며 가는 듯 했다. 그분의 자서전은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란 제목을 앞에 걸었다. 그는 칠레의 영웅이다. 아니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그처럼 아름답게 승화시킨 사람도 없을 것이다. 천방지축의 어린시절을 넘어 오로지 시인이고자 했던 젊은 시절 그리고 그는 아이러닉하게도 정치인으로의 길로 얼떨결에 떠났다. 그에게 정치는 시였다. 시처럼 살다간 그의 삶은 속세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시는 아름다워야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름답지 않은 시는 마치 시도 아닌것마냥 그렇게 폄하하기도 했었다. 역시 내 생각의 저속함을 나는 내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글을 보면서 그랬다. 절망 이상 더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던 시절에 그는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절망을 있는 그대로 허공에 내질렀다. 시라는 언어를 빌어 자신을 갈기갈기 찢고는 이내 띄엄띄엄 실도 매지 않은 바늘로 하늘을 꿰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퍼내는 일이었다. 오로지 자신속에 들어있던 것들로 하여금 하늘이 그렇게도 파랗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에 책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하늘이 그를 먼저 가로챘다. 하늘은 원래 모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이글을 쓰면서 오쇼 라즈니쉬의 자서전을 펴들었다. 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자신 보다는 세상을 먼저 혁명했어야 했던 분들이 백범선생님과 파블로 네루다였다면 오쇼 라즈니쉬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지금 그의 책을 몇페이지 밖에 들여다 보지 못했다. 조금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책을 읽다가 칼럼을 먼저 쓰기로 작정했다. 지난 2주를 숨가프게 뛰어와서일까? 아님 명상의 대가를 만나기 위한 의식일까? 아무튼 오쇼 라즈니쉬 그가 그 스스로를 퍼내는 모습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선승의 화두처럼 알 듯 모를 듯 하다. 퍼내도 퍼내지 않은 듯한 것은 아닐지. 아니, 사실 퍼낸다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를 일이다. 뭐..... 이런 생각들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가뜩이나 주변 상황이 뒤숭숭해서인지 마음을 좀처럼 안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어렵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그래 그가 어떻게 생긴 바가지로 그의 마음을 퍼낼지 그것을 궁금해하기로 하자....... 그가 말하는 내 안에 있는 길을 따라가 보기로하자. 꿈속에서 그를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2008년 추웠는지 선선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올 초의 일이다. 나도 몇 바가지 정도의 내 안에 있던 지난 시절의 나를 퍼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내 개인사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하얀 종이위에 흩어지고 모였다. 가장 빛나는 장면 세가지와 가슴아펐던 장면 한가지.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나는 나에게 빛났던 시절이 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인의 창호지에 놓인 까만 색처럼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믿고 싶었는지 나도 지난 시절의 물을 빨아내고 싶었다. 그 세 바가지를 퍼내면서 꽤나 조심스러워했다. 우물이 얕으면 얕을 수록 그리고 고이면 고일수록 바가지 질을 여간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그 물은 마시기 거북해 지기 십상이다. 오래된 이끼에 몇 년전에 죽은 것 같은 장구벌래의 잔해를 확인하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동안 때절었던 삶의 파편들도 기회다 싶어 아우성을 친다. 마치 우물안 개구리마냥 그렇게 눈을 말똥말똥 하고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나를 빤히 쳐다보던 돌 사이 이끼들도 이때 쯤이면 인생 하직하는 지도 모르고 양지로 나서려 한다. 그래서 조금씩 덜어야 하나보다. 바가지가 크면 우물도 크고 물도 제법 가득해야 하는데 그저 크기만한 바가지에 호리병처럼 좁은 우물 주둥이가 볼성사나운줄은 알았던지 물이 고이길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얼마를 앉아 있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뚤어져라 크고 가벼운 바가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애라 이놈아...... 기다린다고 좁아터진 그 주둥이가 찟어지기라도 한다더냐.”
“집어 던저 박살을 내던지........ ”
“던질 힘 마져 없으면, 미련해 터진 그 몸둥아리로 깔고 앉아라도 봐라......”
“누가 아냐. 그 잘난 주둥이 정도엔 들어갈 정도로 찌그러 질지.”

이러면서까지 우물물을 고갈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뚜껑을 덮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뚜껑을 덮고 있는 내 우물을 다시 찾은건, 우물속에서 커다란 보름달을 볼 수 있을 때였다. 다시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달을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달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호리병처럼 좁아터졌던 우물 주둥이가 한동안 내리왔던 보름달 만큼은 커져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냅다 퍼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역시 거사는 일사분란하고 빠르게 치러야한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정도라면 달이 잠시 머물렀던 시간보다도 빠를지 모른다.

세 바가지에 나눠담긴 나를 한통에 부었다. 그 속에서 나는 마음것 헤엄치고 놀았다. 내 몸이 둥둥 뜰만큼 통을 키웠고 나를 더 작게 만들어 그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한 가지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더 이상 헤엄치며 놀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아픔마져 나를 보다듬어 주었다. 기쁨의 환희와 번뇌의 슬픔이 함께하고 있는 내 우물. 아직 나는 우물에 채울 날이 많다. 언제가 그 우물을 퍼올릴 때 수많은 기쁨과 아름다운 아픔들이 한데 어울려 서로 부둥켜 안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열 바가지 정도는 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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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26 22:13:40 *.36.210.11
살아 움직이는 우물 홍스야, 이것도 '에'가 맞는 겨? 사기인지 아닌지 창'의'게 물어보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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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30 14:50:43 *.244.220.254
지난주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대단히 다부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님이 생각하시는 비즈니스적 모델도 좋은 것 같습니다.

(다부지다의 사전적 의미 : 1. 벅찬 일을 견디어 낼 만큼 굳세고 야무지다. 2. 생김새가 옹골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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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7.01 11:50:06 *.97.37.242
글이 시를 닮아간다. 연구원 생활을 열심히 해선가?
그래 홍스, 세바가지 퍼냈으니 이제 일곱바가지 남았구나.
시작이 반이다. 올해도 반 지났다. 열심으로 퍼내서 바라는 걸 얻어라.
어려워도 웃고 즐기면서 가자.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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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1 12:26:45 *.64.21.2
나 '창'의''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어떤 아낙이 자꾸 나를 물고 늘어진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더라
도대체 '창'의''를 왜 자꾸 물어버리자고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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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7.01 13:11:50 *.117.68.202
써니누나, 창형님 제 마누라가 그러는데 '의'가 맞다고 하네요.
저는 마누라 말을 잘 들으니 그것이 맞는 것 같아요..ㅋㅋ
거암 다부진거로 치면 누가 널 따라가겠냐..
그래도 다부지다는 말 기분조타..ㅋㅋ^^
정산큰형님... 갑자가 형님 웃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ㅋㅋ
다음주 익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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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한정화
2008.07.02 15:13:09 *.247.80.52
다 퍼내고... 또 퍼내고 몇번이고 퍼냅시다.
퍼내는 바가지에 우물 주둥이가 닳아서 더 큰 우물이 될지 누가 알겠수. 옆에서 퍼내라고 응원해 주니까 이때다 하고 냅다 퍼내야지. 그럼 또 찰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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