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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8일 18시 25분 등록

살아 있는 꿈


식물이 또 키가 컸다. 새잎을 내었다. 가을인데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녀석 새로 낸 잎을 어느 정도 키우더니 다시 새잎을 낸다.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다. 이 녀석을 처음 만안 것은 올해 5월 어느 화사한 날이다. 막 외출을 하러 집을 나섰는데 눈에 띄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려보겠다고 내가 머무는 공간을 꾸미겠다고 화분하나를 벼르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눈이 띈 것이다. 난 ‘우리 이쁜이’란 이름을 붙여 두었다. 이쁜이는 원색의 이국적인 꽃이 자잘하게 계속 나더니 커다란 송이가 되었고 하나씩 피고 지는 것이 한달을 넘게 꽃이 피었다. 꽃이 오래 가는 것이 무척 경이로웠다. 그리고는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여름을 났다. 햇볕에 시들해졌다가 약간의 물에 다시 생기를 찾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던 녀석이 가을 되면서 새 잎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가을에 새잎을 내는 녀석이라니. 그런 내 걱정은 이 녀석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새 잎을 내었다. 나는 새 잎이 자라도록 햇볕보기를 시켜줘야 했다. 새로 난 잎 들은 예전의 것보다 더 크게 자랐다. 그리고는 웬만큼 자라는가 싶더니 또 싹을 내었다. 새로 싹을 내면서 대가 자랐는데 살 때의 키만큼 커버렸다. 지금도 이 녀석은 새싹을 낼 궁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햇볕보기를 시켜주려고 안으로 밖으로 화분을 안고 이동하는 사이에 이쁜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이쁜이, 많이 먹고 많이 자라라.’ 기다렸다는 듯이 마구잡이로 커버리는 녀석을 보면서 지난 몇 달간 나는 얼마나 컸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난 얼마나 컸지?


내 꿈을 그린 그림 첫 번째는 씨앗에 싹이 난 것이다. 씨앗 안에는 학교가 들어있고, 멋진 자동차, 바닷가의 시원함이 들어있다. 외면하지 못한 채 계속 갖고 있던 것인데 그 그림을 당시에는 씨앗은 이제 잠에서 깨어 싹이 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림. 식물이 자랐다. 잎사귀 하나에 꿈 하나씩을 담고 있다. 그 그림 안에서 나는 꿈꾸는 식물을 보고 그것을 그리고 있는 화가이다. 크게 자라는 식물을 보면서 화가는 행복하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은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본 책에서 오래된 담장을 보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담장의 회칠한 곳에서 10원짜리 동전이 나왔다. 그리고 담장의 틈새에서 자란 왕발아귀를 조심스레 일자 드러이버를 이용해 떠들어서 파내어 땅에 옮겼다. 식물을 떼어서 옮기며 그는 말했다.

“오~ 생명이여, 10년의 세월 속에 한치도 자라지 않는 동전이 있는가 하면, 오~ 생명이란 척박함 속에서도 자라는 것이구나.”


묻어두고, 때론 우스갯소리로 가지고 놀고, 때론 외면하던 것인데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것을 소개할 때는 왜 그리도 가슴이 벅찰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어땠냐라는 질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내 가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부풀어버리는 것을 어찌 그대로 묻어버린단 말인가.


나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이런 것들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상기할 때마다 꿈틀거리고, 가슴을 벅차게 하는 것. 어떤 이에게는 외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 나는 그것을 꿈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씨앗은 작고 딱딱하고 겉이 말라서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이 안 된다. 왕발아귀 씨앗도 처음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동전과 씨앗처럼 곧 알 수 있다. 시간 속에서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살아있는 것, 10년의 세월 속에서도 그대로 인 것은 죽은 것이다.


내 안에 학교에 대한 꿈과 꿈을 가진 이를 후원하겠다는 것은 오랫동안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것은 죽은 씨앗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죽은 게 아니라 잠자고 있는 씨앗이었다. 어떤 씨앗을 땅에 떨어져 얼마 안 있어 싹을 내는 데, 어떤 것들은 꼭 겨울잠을 자고 봄이 되어야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있다. 좀 특이하긴 하지만 열대에 꽃이 크고 화려한 식물은 불이 나야만 싹을 낸다고 한다. 다들 제 나름대로 생존전략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 꿈도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여기고 싶다.


그 기다림이란 두려움과 맞설 뭔가를 찾을 때까지였다. 각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꿈을 건드린다 것은 두렵다. 꿈을 듣고 이야기하는 것은 신난다. 나는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 들뜬 목소리, 웃는 눈이 좋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우직하게 가는 미련스러움도 좋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내 꿈이 타인의 소중한 것들과 맞닿아서 각자가 이루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 속에서는 환한데 실제에서는 미지수이다. 어둡다.  결국에는 미소짓게 만드는 환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중간과정은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과 맞설만한 것을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오래 잠자게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 더 이상 내 꿈을 외면한다면 내 꿈은 시들어버릴 거라 것, 그것과 더불어 나도 시들해져 버릴 거라는 것, 그것만을 감지할 뿐이다. 두려움을 없애줄 만한 것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을 생생하게 꿈꾸게 하는 것으로 나는 이미지를 택했다. 머리 속으로 그려내는 것은 현실 속에 곧 나오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현실 속에서 미래에 살기 위해 꿈을 꾼다. 지금의 이야기는 ‘끝’의 이야기가 아닌 ‘중간’의 이야기이다. 환하게 가슴 속에서 살고 있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타나는 이야기. 살아있는 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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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00:58:12 *.180.129.143
꿈을 이야기 하는 얼굴들 중에 정화선배 얼굴이 가장 인상적일 듯, 열심히 움직이는 선배는 자주 안 봐도 본 듯 믿음이 가요. 그런이가 다른이의 꿈을 그려준다면, 그 사람의 꿈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주술을 걸 수 있을 듯. 내꿈도 언젠가 그려주길 청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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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1.19 12:55:12 *.122.143.151
언젠가 누군가가 '인생 뭐 있어~!!'라고 외쳐대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처음엔 웬지 그 말이 멋져 보였다. 남자다움, 박력, 무조건적인 적극성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그런 말을 지껄이면 속으로 말한다.
'지랄도 가지가지 총천연색으로 한다... 니가 인생을 알어?'라고...

우리는 태어난 이상,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게 된 이상, 절대 절대로 우리네 인생을 헛되이 보내면 안된다.
우린 각자가 가진 무언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다만 진실로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한 하더라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화씬 그런 사명을, 운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거다.
두려워하지 마라. 아니 두려워 해라. 그 사명을 두려움 때문에 이행하지 못할 자신에 대해 두려워 해라.
이미 정화씨의 두 발은 빠질 대로 빠진 상태. 이미 허리까지 차 올라 있는 상태.
돌아갈래야 돌아갈 곳이 없다. 정말 어렵사리 돌아간다 해도 곧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차원을 건너 뛰기 위해서는 뭔가 자신의 중요한 것을 걸어야 한다.
이미 변경연의 연구원을 하는 사람들은 그 뭔가를 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을 건너뛰기 위해서는 그 뭔가 보다 한차원 더 높은 그 뭔가를 걸어야 한다.
인생을 걸자.
어차피 한번 죽을 인생, 걸어보고 죽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걸어 놓고 나서 먹자.

우린 같은 길을 가고 있다. 힘들 땐 조금 쉬어 가도 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책 한권이 끝이 아님을 알자. 우리의 목적지는 현재의 3차원이 아닌, 미지의 4차원.
그래서 차원을 건너 뛰어야 되는 것이다.

힘이여 무지막지하게 마구마구 솟아뿌래~!!
정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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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11.19 18:13:11 *.247.80.52

차칸양 나 벌써 밥 먹었는데... 히히히.
그동안 너무 놀았어. 흐흐흐.  차칸양도 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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