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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0일 18시 17분 등록

우리는 금융상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매일 수 많은 금융상품들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파생상품을 비롯해서 최근의 금융상품들은 복잡화,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금융상품이 있다. 바로 생명보험이다. 공식적인 생명보험은 1762년 영국에서 에퀴타블 생명보험이 처음으로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역사와 관록의 측면으로 보면 생명보험의 위치는 단연 장자(長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장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평가는 어떠한가? 그리 긍정적인 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장자는 불구하고 적자의 취급도 못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까지 생명보험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생명보험의 사회적 인식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단계를 잠깐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70년대에 은행들이, 80년대에 증권회사들이, 90년대에 보험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설립되었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각 금융기관의 역할을 보면, 가장 대표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은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가? 지금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바로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는 역할이다. 즉 은행은 예대마진을 챙겨서 생존하는 기관이다. 증권회사는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증권회사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주식, 채권을 사고 팔아서 ‘수익’을 내는 곳이다. 그래서 증권회사의 존재이유는 ‘수익률’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보험회사는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인가? 당연지사 보험을 판매하는 곳이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2가지 역할을 명확히 해내야 한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예측(prediction)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빈도와 경우의 수를 측정해야 한다. 또한 평균수명의 연장 트렌드를 분석해서 사망률에 대한 데이터를 도출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고객에게 위탁 받은 보험료를 가지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야 한다. 즉, 보험회사는 예측과 수익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발하기 가장 어려운 금융상품 중에 하나가 보험상품이다. 결론적으로 생명보험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자산 운용이라는 2가지를 소화해 내야하는 선진상품이다. 

그런데 생명보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긍정적이지 않는 걸까?

생명보험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일본의 역사적 사례를 드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잿더미 속에서 수많은 문제들에 빠져 있었다. 산적한 문제들 중에 하나가 바로 전쟁미망인과 고아였다. 이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은 가난과 궁핍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국가는 전쟁미망인과 고아를 지원할 사회적 자본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때 일본의 생명보험회사들이 값싼 노동력을 고용한다는 측면에서, 이 전쟁미망인들을 보험판매원으로 대량모집 하게 된다. 특별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전쟁미망인들에게도 좋은 구직의 기회였을 것이다. 

전쟁미망인들은 굶주린 아이들의 고픈 배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보험을 팔아야 했다. 그러나 전쟁미망인들은 보험판매를 전문적으로 설명할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미망인들은 고객의 니드에 맞춘 보험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안면과 인맥에 의한 판매를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보험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판매자의 필요에 의해 구매 당하게 된다. 즉 ‘들어준다’라는 말이 만들어진다. ‘들어준다’라는 말은 비즈니스에서 흔히 통용되지 않는 독특한 표현이다. 아무튼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 출발한 생명보험은 자연스레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보험판매 문화가 6. 25이후 그대로 한국에 전파 된다. 그래서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안면과 인맥에 의한 지인판매 문화가 고착되게 되었다.

위의 논리는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명보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원인을 설명하는 주류 논리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대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전쟁미망인이 보험판매를 시작하지 않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생명보험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거절’과 ‘편견’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미망인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생명보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생명보험은 무슨 원죄가 있기에,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생명보험 상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속성에 비롯된다. 생명보험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보험금이 지급되는 상품이다. 즉, 죽음 = 생명 = 화폐가 교환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암묵적으로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생명은 성스러운 것(the sacred)이고, 죽음은 두려운 것(the fear)이다. 그리고 화폐는 속된 것(the profane)이다. 생명보험은 자신의 사후(死後)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는 애정과 책임에 기초한다. 달리 말하면 이 가족에 대한 애정이 생명보험이라는 상품으로 ‘자본화’되는 것이다. 신성한 생명을 일개의 상품으로 변환시키는 측면이 있다. 또한 보험설계사들은 생명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화두를 꺼낼 수 밖에 없다. 죽음으로 인해 남아있는 가족들의 경제적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사고 후 벌어질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고, 예견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러한 음울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새 생명보험 설계사들은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생명보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일정부분 벗어나게 해준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때로는 천사와 같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종교가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명보험은 육체의 구원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처음 생명보험을 판매했던 에이전트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다름아닌 ‘성직자’들이었다.

“목사들 대부분은 생명보험이 진전되는 것에 깊고도 변함없는 관심을 표명하였다. 생명보험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어떤 이는 미리 각 보험회사의 지역 에이전트로서 행동할 것을 수락하고……그들 신자에게 이것을 실행에 옮길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 Knapp, Lectures on the Science of Life Insuarance, p209 -

성직자들은 원죄 속에 신음하고 있는 고귀한 영혼을 구제한다. 그들에게 생명보험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영혼의 구제사업이 확장된 개념이었다. 생명보험은 ‘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서 인수되어야만 되는 ‘무엇’이었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였다. 그래서 이 당시 성직자들은 생명보험 판매가 하늘나라의 역사를 도래하게 하는 하나의 복음이었다. 

생명보험은 자체로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비즈니스적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의 이타적 본능과 상업적 본능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생명보험회사는 상업적 사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하더라도, 과부와 고아를 보장하는 구제사업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딜레마(ambivalence)는 생명보험 내에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이다.  나프(Moses Knapp)는 1853년 생명보험을 이렇게 정의했다.

 “생명보험은 이익 추구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자선으로 엮여져 있다. 대단한 이기심 또는 돈을 움켜쥐는 상업의 힘과, 가장 신성한 박애의 동정심이 혼합되어 있다.” - Knapp, Lectures on the Science of Life Insuarance, p205 -

생명보험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경계에 서 있다. 그러나 생명보험 회사들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경계에서 상업적 이윤추구에 경도 된다. 이윤추구에 함몰된 보험회사는 무분별한 에이전트의 대량도입을 시도하게 된다. 무분별한 대량도입은 보험설계사의 질적 역량을 떨어뜨렸다. 질적 저하는 대량탈락이라는 악순환의 구조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고객에게 낮은 서비스로 이어졌으며, 결국 보험설계사와 보험회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최근에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경향이 있지만, 아직도 기존의 인식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아직도 보험설계사를 부담을 주는 성가신 존재로 기억하는 경향이 남아있다. 

처음 생명보험의 가치를 믿고 판매했던 사람은 ‘성직자’들이다. 생명보험은 다른 여타의 금융상품과 달리 인간의 존엄한 생명과 연관된 상품이다. 가장 힘겨운 상황에 빠져있는 미망인과 고아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절망적인 환자에게 작은 희망의 불꽃을 준다.

또한 생명보험은 금융상품 중에서 유일하게 목적(目的)이 분명한 상품이다. 예를 들어 한아름OO적금, 미래OO펀드, 해외OO펀드, 장기OO채권와 같은 금융상품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떠한 계획과 목적에 쓰일지 관심이 없다. 오직 이 상품들의 관심은 ‘수익률’(earning rate) 뿐이다. 그러나 생명보험은 상품의 목적이 분명하다. 종신보험, 연금보험, 건강보험, 교육보험, 어린이보험, 재해보험, 의료보험과 같이 상품의 목적과 효용이 분명하다. 생명보험은 고객의 꿈과 목표 그리고 희망과 함께 성장하는 금융상품이다.

아직 생명보험이 환영 받는 친구가 되기에는,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아니 영원히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금융상품 중에서 가장 따뜻한 인간의 피가 흐르는 것이 바로  '생명보험'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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