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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10시 23분 등록

 단상1 : 파충류 뇌와 주술치료 

 

걸처 코드를 읽으면서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주술 치료에 대한 라파이유의 견해였다. 라파이유는 학습, 추상적 사고, 논리를 관장하는 대뇌피질,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연변계, 그리고 본능과 생존을 관장하는 파충류 뇌, 이렇게 세가지로 인간의 뇌를 분류한다. 그는 이 세가지 뇌를 언급하면서 파충류 뇌가 어떻게 주술사의 치료방법과 관련되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 열정을 바쳐온 라파이유는 다양한 관점의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해 60년대 말 니카라과와 볼리비아에서 그곳 사람들의 전통적인 치료 방법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특히 아마존의 마토 그로소 주에서는 몇 개월 동안 주술치료사와 함께 지냈다.(p115). 그가 전통적인 주술치료 방법에 관심을 가진 건 과학의 한계에 대한 일종의 회의 때문이었다. 그는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들에 주목하였다.

남아메리카의 연구를 통해 그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가 본 주술치료사들은 위대한 심리학자들이었다. 그들은 환자가 진정으로 치료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전에는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다. 환자가 병을 이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그들은 일종의 입문식도 치렀다. 환자를 숲 속으로 보내 특이한 식물을 찾게 하고 가상적인 악마나 도깨비들과 싸우게 했다. 주술치료사는 환자를 대뇌피질에서 떼어놓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환자에게 두꺼운 의학서적을 펼쳐 보이거나 의료정보가 적힌 차트를 보여주며 자신의 질병을 알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환자의 파충류 뇌를 이용했다. , 환자들로 하여금 원하기만 하면 병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에게 거는 주술인 것이다. 환자가 강한 믿음을 가질수록 치료의 효과는 커지고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진다. 사실 서양의학에서도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불치병의 경우 치료를 환자의 의지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미신이라 업신여겼던 샤머니즘의 치료방법이 어쩌면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최고의 치유 방법인지도 모른다.

주술적인 치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독일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화가, 독일 현대 미술의 신과 같은 존재인 요셉 보이스. 그는 스스로를 무당 예술가라 불렀다. 그가 화가가 된 계기를 이해하면 그가 왜 무당예술가인지를 알 수 있다. 
 

유럽의 내놓으라 하는 현대 미술관은 거의 보이스의 작품을 하나쯤은 소장하고 있다. 모호하고 난해한 것을 빼고 현대미술을 논하긴 어렵지만, 시각적 즐거움이나 미적 감동을 기대하는 일반 관람객들에게 보이스의 작품은 더욱 난해하다. 칙칙한 펠트 천과 지방덩어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돌 덩어리들을 마구 늘어놓은 보이스의 작품을 대하면 도대체 이 작가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술관에 전시된 보이스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퍼포먼스운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생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가 예술가가 된 것은 2차 세계 대전 때 공군 조종사로 죽음의 위기를 맞고 난 이후다. 나치 공군에서 부조종사로 일하던 그는 러시아 크림반도 상공에서 격추되어 타타르 원주민 마을에 추락했다. 불에 타고 얼어붙은 그를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한 것은 바로 펠트 천과 기름 덩어리였다. 사고로 추락한 그를 발견한 타라르 원주민들은 펠트 천으로 감싸고 기름을 발라 결국 8일 만에 보이스의 생명을 기적적으로 회생시켰다. 이후 이 재료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재료로 보이스의 작품에 등장하게 되었다. 보이스는 주술적 치료 경험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 거듭났다.  그의 예술은 자연스럽게 대지의 에너지와 샤머니즘의 힘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철학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는 보이스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보이스의 돌기둥들은 1982카셀 도큐멘타 7에서 처음 선보인 <7,000개의 오크나무>의 결과물이다. 그는 빌딩으로 가득 찬 독일의 도시 카셀에 7,000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이상적인 자연의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5년간 지속되었다. 1987카셀 도큐멘다 8 1년 전 사망한 보이스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마지막 7,000번째의 나무를 심음으로써 그의 프로젝트는 완성되었다. 보이스는 카셀에서 시작된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하나의 발단으로 보았고, 그의 아이디어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원했다. 당시 그곳에 전시된 거친 돌기둥들은 나무 옆에 함께 세워졌던 것들로 어린 나무가 한 그루씩 심겨질 때마다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금 그의 작품으로 여러 미술관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그것은 미술관에 박제된 예술품을 경멸하고, 미술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을 혐오했던 보이스의 생전 철학에 반하는 일이다.

어쨌든 불행한 비행기 사고가 보이스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타타르 원주민이 행한 주술적인 치료의 힘은, 사고 이후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보이스에게는 보이지 않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고 갈 길의 방향을 정하도록 보이스를 이끈 건 그의 대뇌피질보다는 파충류 뇌 레벨의 욕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현대과학이 주술의 힘에 다시 주목하는 것과 보이스가 독특한 방향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끌어 간 것과, 라파이유가 사람들의 특정 행동 기저에 존재하는 컬처 코드에 주목하는 것은 서로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인 대뇌피질 아래 존재하는 잠재 의식의 세계에 관심을 갖는 시대가 도래했다.


단상 2: 문화 브랜드의 힘과 기업 각인

나는 이 책을 유럽 출장 중에 읽었다. 일할 때도 쉴 때도 이 책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자주 외국인을 만나는 내 직업상 상이한 문화권의 사람들의 상이한 생각을 만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양한 문화를 겪으면서 내가 한 가장 큰 일은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린 것이다. 덕분에 편협하던 나의 사고가 많이 느슨해지고 남의 세계에 더 스며들 수 있었다. 지리적인 경계를 넘어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사람들 생각의 경계를 넘어 그 속을 여행하는 것도 내게는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은 마치 문화 문법책 같다. 미국을 준거로 해서 몇몇 나라들만 한정적으로 비교해주는 문법책이긴 하지만 매우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내용 중에는 내가 이미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 아는 것을 접할 때는 '그렇지' 수긍하게 되어서 좋고, 모르는 것을 접할 때는 '아하 그렇구나' 이해하게 되어서 기쁘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에 한국의 예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파이유에게 아시아는 일본이 그 상징인 것처럼 보인다. 가끔 중국이 등장하고 티벳 같은 나라의 문화가 언급되긴 하지만 아직 '한국'과 관련해  라파이유에게 '각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한국의 물건이 세계 각국에 많이 팔리고 있다. 세계 유수기업의 마케팅을 지원하는 라파이유가 한국 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에 대해 모를 리 없겠지만 그에게 한국과 관련해 특별한 각인이 없다는 건 왠지 서글프다. 

이 책 읽기를 막 끝낸 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체코로 진입할 때였다. 이제 유럽의 국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톨 게이트같이 생긴 게이트를 검사없이 통과하면 오로지 웰컴 사인만이 우리가 다른 나라에 진입한 걸 알려준다. 체코 프라하에는 'SAMSUNG' 배너가 시내 가로등 곳곳에 붙어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삼성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삼성 뿐 아니라 엘지, 현대 같은 기업들의 배너와 제품 광고판은 유럽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들이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늘 기쁘다. 마치 척박한 땅에 새로 깃발을 꽂으며 불굴의 투지로 일하는 파이오니어들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삼성과 엘지는 기억해도 이들이 어느 나라의 기업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립스와 하이네켄이 네덜란드 기업이고, 버드와이저가 미국 기업이라 걸 잘 모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우리 기업들은 일부러 우리 나라 타이틀을 광고에 사용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한국 기업이라고 각인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그것은 문화 코드가 갖는 힘에 역설적으로 주목한 결과이다. 서구 사람들에게 한국은 거의 각인되지 않은 나라이다. 각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영향력이 없다는 말이다. 설령 각인된 이미지가 있다 해도  6.25전쟁과 가난, 데모와 불안정한 정치, 분단 등과 같이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 뿐이다. 그들에게 각인된 한국의 이미지가 강렬하고 긍정적이라면 왜 엘지와 삼성이 한국기업임을 내세우지 않겠는가. 그들은 한국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그저 국적이 없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이미지 승부를 걸고 있다. 라파이유 식으로 말하면 한국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과 엘지를 각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라하의 삼성 배너를 보면서 저절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문화 브랜드의 힘에 대한 상념에 빠졌다.그 때 내 손에 들려있던 이 책 <컬처 코드>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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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8.12.04 09:00:49 *.165.140.205
사실 인류학 연구라는 것이 마케팅과 같은 실용학문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죠. 전 로이스의 글을 보면서 엉똥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인문학의 존재 위기가 앞으로 우리사회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요.^^ 결국 국가 경쟁력과 연관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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