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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11시 25분 등록
복지국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복지국가란 젊었을 때 아무런 걱정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매일매일의 삶을 즐기며 살고, 노후가 되거나 장애가 닥치는 등 보호가 필요할 때에 사회복지제도에 의하여 의?식?주?의료 등 기본적인 문제를 걱정 없이 해결해 주는 사회를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쾌적한 환경 속에서 스포츠와 레저?예술 등을 즐기면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복지국가는 인간의 생애 전 기간에 걸쳐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복지국가로 가는 길』, 인경석 5p>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복지전문가인 저자(인경석)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야 할 입장임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로 불리는 서구 선진국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복지국가가 되었을까? 사회보장제도의 도입 과정을 통해 그 모습을 들여다본다.

사회보장제도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다. 최초로 근대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Bismarck)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보장제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가 그들이다. 그런데 사회보장제도의 탄생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또 한 사람 있으니, 그가 바로 사회주의 이론을 주창한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이론을 만든 사람이 사회보장제도 발전에 공헌했다니 좀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1867년에 쓴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몰락을 예언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갖는 근본적 속성인 치열한 경쟁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과잉생산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불황이나 공황이 발생하여 경제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사회적 부가 소수 자본가에 집중되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노동자들은 빈곤에 시달리게 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강화되면서 그 결과 자본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하였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원시 공동체사회에서 고대 노예사회, 중세 봉건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이 같은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러시아 이후 사회주의 이념은 유행처럼 퍼져나가 중국, 동유럽, 동독, 쿠바, 북한, 아프리카 등에 확산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위 양극체제(兩極體制)가 자리 잡으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경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주의 확산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응은 사회복지의 확대를 통한 복지국가의 추구로 나타나게 된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폐단은 사회복지의 확대를 통해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복지국가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과 대중민주주의의 확산으로 도시에서 임금근로자들의 노동운동이 격화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이를 예방하고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일에서 1880년대에 처음으로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 이후 유럽 각국은 1920년경까지 기본적인 사회보험제도(의료보험, 노령보험, 산재보험, 실업보험 등)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 각국의 사회보험제도는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상태였다. 사회보험에 적용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았고, 급여 내용도 부실했다. 본격적인 복지 확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시작된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 등은 그 동안 일부 국민들에게만 적용되던 사회보험제도를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확대적용하고, 보험급여 수준을 높이는 등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편안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이상(理想)적인 사회보장 체계를 발전시켜나갔다. 사회보장제도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복지천국론’이란 말까지 등장하게 될 정도였다.

유럽과 미국의 복지확대 정책은 무엇보다 전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선 양극 체제 하에서 민주복지국가로 안정을 이루어야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들 사이에서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전후 과거에 유래가 없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증대된 각국의 경제력이 복지투자를 뒷받침 할 수 있었던 것도 복지확대 정책을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

전후 30여 년 간에 걸친 세계경제의 획기적인 성장은 사회복지의 양적 질적 팽창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이 계속되지는 못했다. 1970년대 석유위기로 인해 세계경제가 침체 되면서 선진국의 과도한 사회복지비용은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전후 복지국가의 이상(理想)은 많은 부분에서 후퇴하게 되었다. 8, 90년대를 통과하면서 나타난 사회주의의 몰락과,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에 점차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미국형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1950, 60년대 복지전성기 시대에 확대되었던 복지수준을 축소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세계화가 가속화 되면서 그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사회복지제도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치유하기 위해 등장하고 발전한 제도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원리로 한다. 반면 사회주의는 평등을 기본원리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는 공동소유에 기초한 공동생산물로부터 ‘평등’원칙에 입각하여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요구에 기초하여 구성원들에게 의?식?주?의료 및 교육 등을 제공’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신봉하는 평등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기여에 상관없이 결과에 있어서 평등을 지향하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유인요인이 사라져 성과를 올릴 수 없었다. 이런 ‘비효율’로 인해 사회주의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요구에 기초하여 구성원들에게 의?식?주?의료 및 교육 등을 제공’ 한다는 사회주의적 개념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자본주의에 이식되어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1880년대 이래 약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오늘날 더욱 번창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안전망(社會安全網)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 인류가 발명해 낸 여러 가지 사회제도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이론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사회주의 체제가 지구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수 있고, 자본주의 체제도 사회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스스로의 보완 노력을 게을리 했을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복지국가를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한 마르크스가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커다란 은인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IP *.5.9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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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2.01 20:23:28 *.30.12.74

칼 맑스가 자본주의의 파산을 선고한 음울한 유령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한 은인이다!
재미있는 접근이네요. 칼 맑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헤주시면 더욱 흥미롭겠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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