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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9일 10시 48분 등록

무더운 장마도 제 풀에 꺾여 아침 저녁이면 선선한 바람이 찾아오고 있었다. 세일즈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성과는 최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일즈에 대한 감동의 불꽃은 점점 사그러져 가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 계약에 대한 뿌듯함이나 만족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내 머리 속에는 계약에 대한 커미션이 계산기처럼 그려졌다. 성과는 증대되고, 수입도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대한 행복감은 높지 않았다.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는 더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생명보험의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냉정한 세일즈맨으로 변화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별 일 없으셨죠?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 여동생이 보험에 관심이 있어서요. 그런데 경제적 여유는 많지 않아요? 이런 경우에도 상담을 의뢰해도 될까요?”

소개 전화를 해 준 고객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여동생의 연락처와 인적 사항에 대한 메모를 하였다. 그리고 바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여동생은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언니가 칭찬 많이 하시더라구요.”
별말씀을요. 언니분께서 워낙 좋은 분이시잖아요. 언니분께서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대단하시던데요. 이렇게 통화하게 되서 영광입니다.”

이와 같은 전화를 보험업계에서는 ‘Happy Call’이라고 한다. 고객에게서 예상치 않은 소개를 받은 경우이다. 이러한 고객의 자발적 소개는 대부분 만족스러운 계약으로 체결되는 확률이 높다. 아무튼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는 첫 전화였음에도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처럼 친근하게 통화를 하였다. 자택으로 방문해서 부부상담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부인은 5, 3살의 아이들을 키우는 30대 중반의 주부였다. 집은 1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허름한 15평 주공아파트였다. 네 식구가 살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집은 어수선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은 흐트러져 있었고, 아직 마르지 않은 빨래가 널려 있었다. 남편은 장거리 운송을 하는 트럭기사였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며칠씩 출장 가는 것이 예사였다. 그 날은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갔다 온 직후였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섰을 때, 부인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방 안 구석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편의 약간 험상궂은 인상과 무표정한 표정은 묘한 긴장감을 흐르게 했다. 내가 오기 전에, 이미 부부는 보험가입으로 인해 한바탕 소동을 치룬 것 같았다. 자리에 앉을 겨를도 없이 남편은 말문을 열었다.

저는 보험 안합니다! 저는 관심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계약으로 이어질 줄 만 알았던 상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놀란 기색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보험 가입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저도 밤늦게 시간을 내서 방문했으니, 차 한 잔은 주실 수 있으시죠?”

그렇게 하이소.”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눈치를 보던 아내는 이내 부엌에서 커피를 두 잔을 내왔다.

트럭 운전을 하신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오늘도 지방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많이 피곤하시겠습니다. 오늘은 보험 가입을 떠나서, 편하게 말씀 나누고 가겠습니다.”

그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은 아랑곳 없이 재잘 되며 방안을 휘젖고 다녔다.

선생님. 실례되지 않는다면,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오늘도 먼 길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많이 피곤하시겠습니다. 아이들이 참 이쁜데, 아이들하고는 시간 많이 보내십니까?”
먹고 사는 것이 포도청인데 아이들하고 시간은 무슨 시간. 애 엄마가 알아서 하는 거지요.”

그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결혼을 했고, 나이에 비해 아이들이 어린 편이었다.

저도 4, 1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너무 이쁘지요. 저도 보험사업을 전념하다 보니,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른 새벽 일터에 나가기 위해 일어났을 때, 곤하게 잠들어 있는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끔 쳐다보곤 합니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가슴 뭉클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하지요. 선생님도 아이들 생각하면 그런 마음 드실 때 있으시지요?”
~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닙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아빠들의 마음은 똑같은 것 습니다. 세상 살아가다 보면, 돌부리에 넘어져 무릎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죠. 그래도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은 사랑스런 아이들 때문 아닙니까? 아이들 때문에 다시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렇겠죠. 부모 마음 다 같은 것 아닙니까?”

~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모두 성장한 후에 어떤 아빠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그는 주저하면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 당연히 생각해 본 적 없으시겠죠. 그래도 지금 한 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시선을 맞추고, 침묵을 지켰다.

좀 어렵네요. ~ 그냥 좋은 아빠면 되겠지요.”
.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시겠지요. 저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 자랑스런 아빠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아빠와 아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끈은 어떠한 경우에도 견딜 수 있는믿음의 끈입니다. 아이들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빠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지요. 자신들이 살아가면서 혹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항상 아빠가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들이 힘겹고 어려울 때,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세상 최고의 영웅이지요.”

그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변화가 있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얼마 전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고등학교 동창들이 60세가 되어 교실에서 다시 모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50명중 25명만이 참석을 했습니다. 물론 이민을 갔거나 미처 연락이 닿지 않아 못 오신 분도 있었지만 그 중 11자리에는 국화꽃이 대신하고 있었다는 기사였습니다. 물론 국화꽃이 놓인 그 11자리의 주인공들은 이미 세상과 인연이 끊긴 분들입니다. 그런데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 국화꽃이 놓인 그 11자리의 주인공은 제가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의 자리일 수 도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즉 아빠와 아이의 보이지 않는 끈이 끊어지는 상황이 생긴다면, 남아있는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약간 더듬거리는 말로 대답했다.

~ 누가 그런걸 생각합니까? 생각 안하지~”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실 겁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가족들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실 것입니다. 물론 남아있는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실 겁니다. 사모님께서 무슨 일이든 하시겠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생명보험이 선생님을 모두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간절한 꿈과 희망만큼은 지켜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빠의 애절한 사랑을 이 생명보험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잠시 침묵후)
선생님. 사랑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 지켜주실 거죠?
 
언제까지나 아이들을 지켜줄 거라는 약속 지켜 주실 거죠?”

한동안 오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결국 그는 생명보험 계약서에 사인했다. 모든 계약이 마무리된 후, 집을 나설 때 그는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게 한 마디 건넸다.

저는 설명하신 계약내용도, 무슨 보험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무슨 사고라도 발생하면, 내 새끼들 굶기지는 않을 거라는 말씀을 말입니다. 오늘희망이라는 말, 오랜만에 들어본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은 희망이 없을지라도, 아이들의 희망만큼은 지켜주고 싶습니다. 내가 비록 궂은 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 때문이라도 희망이라는 녀석을 놓고 싶지는 않군요. 나중에 내게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꼭 좀 도와주이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희망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실제 두 부부의 계약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빠듯한 재정상태에서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들이 가입한 보험은 단순히 금액으로 표현하기 힘든 아빠의 애틋한 희망을 담았던 것이다.

커다란 계약을 했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내면에 갑자기 밀려왔다. 그 동안 단순히 계약을 커미션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고객을 새로운 이익창출의 교두보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생명보험 판매를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으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문득 선배 보험설계사가 해주었던 조언이 떠올랐다.

우리 수입의 80%는 상위 20%의 고객에게서 나오지만, 우리 일에 대한 소명의식은 평범한 80%의 고객에게서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순히 수입의 측면에서 고객을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희망을 담는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보험 사업은 특별하다. 다른 비즈니스와 달리 고객이 비바람에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조용히 다가가 우산을 받쳐주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대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재무상담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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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12.09 11:30:20 *.122.143.151
뭉클하다..
좋은 글이다..
삶을,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희망"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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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12.09 12:40:43 *.51.218.167
우리 수입의 80%는 상위 20%의 고객에게서 나오지만, 우리 일에 대한 소명의식은 평범한 80%의 고객에게서 얻을 수 있다.

이 말이 이 글의 주제네요. 무슨 일이든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건 너무 필요한 일이지요.
보험의 실제상황을 하도 잘 묘사해서 내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다만 대화에서 애기 아빠의 변화가 너무 빨라요,
설계사님의 말이 어느 면에서 가르치는 감이 없지 않고요,
그 점에 유의해서 다이얼로그를 한 번 더 다듬으면 정말 완벽할 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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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2.09 15:19:30 *.97.37.242
그래 뭉클하다. 부모의 사랑, 희망, 보람, 이런 것들이 보이네. 짜임새도 좋고...
이렇게 접근하면 보험가입 안하고 못배기겠는걸? ㅎㅎ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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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2.10 07:20:49 *.244.220.253
조교님, 정산형님, 재우성~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가르치려고 하는 것, 내용의 비약............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다만 슬픈 사실은 이번 주 칼럼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ㅜ.ㅜ
특히 재우성의 관심과 농락(?)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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