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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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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9일 12시 43분 등록

 

Chaplin slept with teen-agers, too -- so I can't enjoy any of his films now, either?
Egon Shiele slept with his sister -- so I have to hate his art?
Socrates slept with little boys -- should I dump philosophy now, too?   -Woody Allen


채플린은 십대들과 잤다. 그러니 나는 그가 만든 영화를 즐길 수 없는가. 에곤 쉴레는 자기 여동생과 잤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예술을 혐오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어린 소년들과 잤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철학 역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가? --- 우디 알렌


 

이 글을 읽으니 나는 그들보다 더 한 것을 마음 속에 도모하며 산다. 그렇다면 나의 영화도 볼 가치가 없는 것인가 라고 반박하고 싶어하는 우디 알렌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너무 넘겨 짚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전 아내 미아 패로가 그와 결혼하기 전 입양했던 한국계 양딸 순이 프레빈과 결혼한 사람이다. 그들의 나이 차이는 35살이다. 유태계 뉴요커로서 세상을 그만의 해학으로 비틀고 꼬집어온 그의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디 알렌이 이렇게 말하는 게 그다지 놀랍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디 알랜은 예술가들의 성 모럴에 상관없이 그들의 작품만 떼어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상식에 갇혀 예술, 혹은 예술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 같다. 사실 도덕이라는 잣대로 예술가를 평가한다면 문제는 무척 복잡해진다. 이 글은 예술과 모럴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내게 다가온 한 예술가의 인상을 예술사적인 의미를 떠나서 말해보고 싶을 뿐이다. 예술의 핵심은 어쩌면 편견 없이 인간 본성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에곤 쉴레의 그림들은 그 점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부류고, 어떤 사람이 예술가다운 예술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단지 그 누구의 정의에 기대지 않고 나 나름대로 예술가를 정의하라면 나는 세상의 상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혹은 상식이란 바운더리에 묶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방식대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특별한 집착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상한 짓을 하는 미친 놈으로 오해 받을 때가 많고 때로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예술가를 오해하는 무리 중의 하나였다. 상식을 넘어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쉽게 미친 놈으로 간주했다. 아마 그건 내가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상식을 깨는 사람은 평범한 가정의 윤리 마저 깨는 사람으로 비쳐졌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는 가정과 사회의 존속을 굳건히 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반 도덕적 주장이나 이념은 거부했다. 지금 우리에게 통용되는 윤리란 오랜 세월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잡은, 현재로선 가장 최선의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이름으로 통념의 물을 흐려놓는 이들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특히 성 모럴이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혐오했다. 자신들의 이상한 행동을 합리화하는 허울로 예술을 오용한다고 생각했다. 모럴의 옷을 입지 않은 자는 그 시대의 정신을 이끄는 예술가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순화하는 것이 예술이지, 쓰레기 같은 넘들이 자신을 변명하라고 있는 게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우디 알랜의 글을 예전에 읽었으면 내가 보일 반응은 딱 한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채플린이, 에곤 쉴레가, 소크라테스가 그런 놈들이었어? 우디, 너도 할 말 없잖아?


그런 내가 요즘 많이 달라졌다. 아니 완전, 내부의 반란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관습에, 상식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데 더 많이 동의하고, 결혼제도라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가장 이상적인 제도인가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예술에 대한 정의를 도대체 누가 내릴 수 있는 것인지, 건전하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모럴이란 건 대체 누가 어떤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것인지, 답도 찾기 힘든 문제들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식에서 먼 작품을 볼수록 더 마음이 끌리고, 상식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를 발현하는 예술가의 용기가 부럽고, 그들의 정직함을 대면할 때는 오히려 불에 댄 듯 얼굴이 빨개지면서 내 안의 어떤 것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 속이며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자기 정리도 잘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감당 못할 소용돌이에 빠지면 그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대책이 없는 일이지만 이런 변화를 나는 환영한다. 내 안에도 상식과 모럴이란 이름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갇혀있는 있는 것들이 많아서, 어떤 점에서 그런 동요가 일어나는 것이리라. 뭔가를 표출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하나 갖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에선 예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내가 다시 본 예술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뜨겁게 껴안는 사람들이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남들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과 치열하게 투쟁하는, 어쩌면 피가 빨간 사람들이다.   


에곤 쉴레, 28년 밖에는 이 세상에 머물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진하고 굵게 살다간 젊은 예술가. 그가 내 눈에 띈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떤 이가 보낸 그의 자화상 한 점을 보고 처음 내가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그의 그림은 충격적이었다. 비쩍 마르고 사지가 뒤틀린 그림 속의 사내는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은 뭔지 모를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불편한 감정을 누르고 그 남자를 계속 쳐다보았다. 아니 그 남자의 눈빛이 나를 자꾸 잡아 끌었다. 처음엔 섬뜩하던 그의 눈은 볼수록 미묘한 감정에 빠지게 했다. 그 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눈은 그걸 듣고 싶은 나의 욕망을 부추키는 눈이었다.


그렇게 에곤 쉴레는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비엔나 방문은 마음 속에 숨겨둔 에곤 쉴레를 잠시 꺼내 볼 좋은 기회였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한 레오폴트 미술관은 꼭 들려보리라 다짐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림을 오리지널로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바로 그의 그림이 직접 말하는 걸 듣고 싶다는 충동이기도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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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8.12.10 13:46:25 *.129.207.121
그를 보면 한국 시인, 이상 이 생각납니다. 불안하면서도,  갈길 찾아가는 선線이 매력적입니다. 비틀 비틀 쭈뼛 쭈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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