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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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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9일 05시 4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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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은 한마디로 단순무식복잡한 사람이다. 다혈질의 목소리 크고 성격 무지하게 급하다. 그는 웬만한 일에도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도 못한다. 일을 시킨 후 얼마 후부터는 내 뒤에서 서성거린다. 얼마나 진도를 나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고, 벼락 소리로 휴대폰 컬러링 삼을 사람이다. 어디 그 뿐인가? 보고서를 작성한 후 보고를 하게되면 글자 오자서부터 시작해서 토씨, 줄간격, 문단정렬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보고서는 온통 상처 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물론 거침없는 호통과 함께. 앞끝도 뒤끝도 모두 다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도 사람을 가려서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검열의 내용에서부터 시작하여 꾸중과 칭찬의 경계 그리고 그 강약이 다른 것이다. 물론 나는 항상 깨지는 쪽이다. 일일일파(一日一破)다. 하루라도 깨지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역시나 오늘 아침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봐, 김대리. 이제 대리가 되었으면 보고서 형식이나 글자, 내용정도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줘야 하는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보고서 꾸미는 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정리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줬어?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거냐? 오자(誤字)가 5개에 줄간격 틀린게 3군데 게다가 제목, 소제목 글자크기와 본문의 글자크기는 조금씩 차이 두라고 했지? 지금 김대리가 만든 보고서는 초딩들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야!! 거, 누구냐? 그래, 무박 2일인가 거기 나오는 초딩, 은초딩한테 시켜도 이거보단 잘 하겠다!! 으휴~ 내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이번 건강검진 때 뭐라고 이야기 들은 줄 알아? 스트레스 받지 말랜다... 근데, 이런데, 내가 어찌 마음 평안히 생활하겠냐? 으그 답답해서 말이야. 가서 다시 해 갖고 와~!!”

아무 소리 못한다. 나 또한 속이 터져 산산분해될 지경이다. 서류를 받아 조용히 책상 위에 내려 놓고 옥상으로 향한다. 유일하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다. 담배하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는데, 이런. 양쪽 주머니를 다 뒤져도 라이터가 없다. 이상하다. 아까만 해도 주머니에 있었는데. 아, 맞다. 강대리 그 자식이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지. 나쁜 자식. 빌려 갔으면 째깍째깍 주인에게 돌려주는게 예의지 허구헌날 빌려가면 지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냐. 뭐야, 자기 주머니는 불랙홀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거야. 내 다시는 빌려주나 봐라. 근데 어쩐다, 불도 없고... 쩝...

“탁~!!”

‘어, 이게 뭐지. 불이네, 아... 오과장님... ’

같은 부서의 오과장이 내 안색을 보고는 황급히 쫓아서 올라 왔나보다.

“야, 김대리. 담배만 물고 뭐하냐? 불이 없구나. 자, 불 붙이고 한대 후련하게 펴.”

“아...네... 오과장님, 고맙습니다...”

“조직생활이란거 말이다. 다 그런거야. 한마디로 뭣 같은거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이란거두 다 그런거야. 죽어라고 뛰어봤자 결국 무덤으로 들어갈 때는 축 늘어진 불알 두 쪽만 가지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거야. 루소가 그랬대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러니 다 그러려니 하고 살으란 말야.”

“예...”

“그리고 김대리야. 넌 말 좀 하고 살아라. 그렇게 입에 지퍼 채우고 살면 언제 그 지퍼 내리고 말할래. 혹시 화장실 가서 아랫 지퍼 내릴 때만 윗 지퍼도 살짝 내리는거냐? 응?”

“아닙니다. 과장님.”

“그럼 언제 말하니? 집에가서는 말 좀 많이 하고 살긴 하는거니?”

“그래도 집에 가서는 나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련 하시겠나.. 쯧쯧. 아무튼 조직생활에서 잘 버티려면 인간관계를 잘 해놓아야 해. 그러려면 싫어도 싫은 내색하지말고 적극적으로 해야 해. 누군 좋아서 하겠니? 회사는 결국 군대야. 군대에서도 보면 아부 같지 않은 아부 잘 떠는 얘들이 생활 편하게 잘 하잖아. 너 보고 아부 떨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라고 자존심이나 그런거 버리고 적당히 잘 부벼봐. 회사 생활 오래 하고 싶은면 말야.”

오과장이 거의 끝까지 핀 담배의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힘주어 튕기니 불붙은 재 부분만 바닥으로 날아가 서너번 튀기다가 하수구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김대리, 넌 여전히 담배를 늦게 피는구나. 동작만큼 담배 피는 속도도 느리네. 하긴 그것도 취향이니, 뭐. 나 먼저 내려갈테니 천천히 피고 내려와라.”

“네, 고맙습니다. 오과장님.”

“고맙긴 삶이 다 그런거지, 뭘.”

내려가는 오과장의 뒤통수에 대고 목례를 했다. 오늘따라 담배가 잘 빨리지도 않을뿐더러 담배 맛도 쓰다. 몸이 좀 안 좋은가? 그래도 이 담배가 있어 참 고맙다. 담배는 나의 유일한 친구다. 나와 대화하고 소통하고 서로를 보담어 줄 수 있는 죽마고우다. 담배 연기는 나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하늘로 날아간다.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그래도 담배란 놈을 한대 피우고 나면 격해졌던 감정이 좀 가라 앉는다. 그래서 담배가 좋다. 아내는 냄새 난다고, 돈 들어 간다고 자기처럼 담배를 끊으라고 성화다. 지가 가르쳐 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자기 끊었다고 나도 끊으라니 이게 어느 독재 국가의 말도 안되는 법이란 말인가. 이건 한마디로 병을 주고 약을 주는게 아니라, 병을 주고 상처를 주는 거다. 두 번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에이, 머니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니 담배가 더 땡긴다. 한대 더 피고 내려가야 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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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유일한 과장인 오과장은 팀원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술자리에서나 평소 일할 때에도 내가 스스로의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면 따로 차 한잔 하자고 불러내어 이런 저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곤 하신다. 본인도 입사하여 다른 부서에 근무할 때에는 일이며 인간관계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 자신을 어떻게 추스릴 수 있었는지 노하우도 전달해 준다.

그리고 팀의 유일한 홍일점인 나미인씨는 이제 입사한 지 1년을 갓 넘긴 신입사원이다. 하지만 눈치하나는 최소 과장급 수준 이상이다. 회사의 규정은 잘 몰라도(사실 그다지 배우려고 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팀의 돌아가는 분위기 하나는 재빨리 캐치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능력하나는 탁월하다. 그리고 신세대답게 모든 면에서 거침이 없다. 좋으면 좋은 거고, 자기가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표현한다. 그래서 강대리는 좋다고 하고, 나는 싫다고 한다. 표정 하나만 봐도 모든 게 드러난다. 그리고 복사나 팩스를 보낼 때 대부분을 내가 직접 처리하긴 하지만 급할 경우 부탁을 하게 되면, 바쁘지 않아도 바쁜 척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말은,

“저, 김대리님.. 제가 이거 급하게 보고 드려야 되거든여.. 웬만하면 해드렸으면 좋겠지만... 이게 워낙에 급하다보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이년아. 니 못된 심보. 내가 너한테 부탁을 한게 잘못이지....’

“아... 그래요.... 나미인씨가 많이 바쁘구나.... 괜, 괜찬아요... 내가 하면 되지, 뭐... 어서 급한 거 하세요.”

‘이런 등신. 그냥 한마디 확 해버리지. 니가 바쁘긴 뭐가 바뻐? 바쁘단 사람이 계속 친구랑 메신저로 수다나 떨고 있냐. 오늘 저녁은 어디서 뭘 하고 놀지 고민하는게 바쁜거냐? 엉?’

울화통이 터지려는걸 꾹 참는다. 하기사 참는거, 그건 나의 특기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난 잘 참는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잘 참는 것을 보면서 가엾다는 식으로 쳐다본다. 잘 참는게 무슨 잘못인가? 나는 잘 참기 때문에 입이 무겁다. 아무에게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물론 몇 명의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내 신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스스로 먼저 꺼내는 일은 없다. 뭐 그것 때문에 입안에 곰팡이가 피겠다느니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내 입 안쪽을 연구하면 지구 탄생 비화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니 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도 자주 듣다보니 웬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렇다면 난 혹시 태생이 외계인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렇게 지구인들과 어울리기가 힘든건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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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2.30 19:42:07 *.5.98.153
ㅎㅎㅎ. 재미있다.
공감가는 얘기야.
한편으론 좀 찔리기도 하고.
나도 오탈자, 글자크기, 줄간격... 이런거 많이 따지거든...
그렇다고 팀장처럼 닥달하지는 않지만....
이거 꼮지글로 써도 괜찮겠다. 1월에 북페어 할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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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02:22:23 *.41.62.204

  가로안에 글이 줄었음. 글구 저렇게 구박받는 김대리에게는  사부님 신간을 선물해야 할 듯,
  사부님 신간 속에 못된상사들의 전형이 더 있지 않을까 사료됨.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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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06 00:37:22 *.100.109.186
재우야.. 다른건 몰라도 가독성 끝내준다.. 내가 소설을 많이 읽어봐서 아는데 너 확실히 소질이 있어 보인다.. 이거 읽는 직장인들이라면 푹 빠져들것 같은데.. 바로 그들의 이야기니까 말이야.. 앞으로 계속 열독할테니 마음껏 너의 재능을 뿜어내기 바란다..^^ 나는 니가 설정한 캐릭터 중 오과장하고 싶구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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