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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9일 11시 29분 등록

 

처음 보험영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힘들어하는 과정은 무엇일까? 앞의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가장 중요한 단계는 단연 ‘가망고객 발굴’이다. 그 다음 중요한 단계는 ‘전화접근’이다. 지난 세일즈 경험을 반추해 볼 때, 이 2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보험설계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영원한 숙제이다. 이 문제 풀이 과정은 수학의 정석이나 해법과 같은 지름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가망고객을 발굴해야 하며, 상담 스케줄을 잡기 위해 전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초기 보험영업을 시작한 이들에게 가장 힘겨운 과정을 질문하면, 의외로 다른 답변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장 어려움을 많이 호소하는 단계가 바로 ‘클로징’(종결) 과정이다. 이 과정은 청약서에 사인을 받는 마무리 단계이다. 그 동안 힘들게 지었던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추수의 단계이다. 힘들게 지은 농사를 한 순간의 실수와 미숙함 그리고 두려움으로 망쳐버릴 수는 없다. 누군가 나에게 종결과정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긴장과 긴장이 교차하는 승부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초기 영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왜일까?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해답은 간단하다. 거절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절은 아프다. 매일 주먹세례에 익숙한 권투선수도 매 경기 맞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종결과정이 쉽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거절의 아픔이 싫었으며, 침묵의 긴장을 피하고 싶었다. 아예 고객이 미리 생각해 보겠다거나, 연락 주겠다는 답변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깨달음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온다고 했는가?
두려움 많던 나에게도 종결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

2001년 초겨울.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였다. 당시 난 개인병원 의사시장을 한참 공략하고 있었다. 인천 지역에는 연고가 없었기에, 의사협회를 통한 명부가 유일한 가망고객리스트였다. 다행스럽게 의사시장 진입은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성과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의사시장 진입에 용기를 얻어 다른 전문가 마켓을 고민하다 선택한 시장이 바로 ‘약사시장’이었다. 약사시장은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만나기가 쉬웠다. 약국은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둘째, 개인병원과 달리 늦은 시간(밤 9시)까지 영업을 했다. 이는 만날 수 있는 시간의 확장이었다. 셋째, 다른 업종과 달리 높은 소득을 유지하는 시장이었다.

개척의 과정은 역시 녹녹치 않았다. 의사시장과 달리 ‘약사시장’은 훨씬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의사시장과 달리 약사시장은 다른 보험설계사에게 완전히 오픈된 시장이었다. 개인병원의 경우, 간호사가 있어 일정의 진입장벽이 있었으나, 약국의 경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진입이 가능했다. 또한 의사들과 달리 약사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약사시장을 포기할 즈음, 상담 약속이 잡혔다. 50대 초반의 부부약사였다.
직감적으로 따뜻한 분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약사시장으로의 진입을 위해 이 부부약사의 상담은 중요했다. 그러나 역시 상담은 쉽지 않았다. 특히 약국은 차분하게 상담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개인병원과 같이 1 : 1 상담이 불가능했다. 상담을 진행할 만하면, 환자들의 내방이 끊이지 않았다. 두통약부터 시작해서 자양강장제를 찾는 사람까지 쉴 틈 없이 약국을 노크했다. 상담은 계속해서 맥(脈)이 끊겼다. 첫 상담 하는데, 무려 2시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렵사리 약사부부의 재무정보를 파악했다.

다음 상담은 실질적인 상품 제안서를 설명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첫 번째 방문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니드환기와 계약체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상담은 약국 끝나는 시간으로 상담을 잡았다. 그러나 가방을 들고 나오는 순간, 약사부부는 친절하게 이런 단서를 남겼다.

“저희 부부는 가입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시는 것은 상관없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가입에 대한 결정은 제가 제안 드리는 계획을 검토하시고 하세요. 가입에 대한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 9시에 찾아 뵙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의례히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인사를 했다. 그러나 기대하지 말라는 마지막 말이 마음 속 한구석에 내려앉았다. 다음 주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저녁 9시에 다시 약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 시간까지 약국은 정신이 없었다. 약국 닫을 시간이 되었음에도 환자들은 계속해서 꼬리의 꼬리를 물고 방문했다. 또한 부부약사는 그리 환영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지 않았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약국의 환자들의 발길이 끊겼다. 나는 즉시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제안서를 가방에서 꺼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다시 취객부터 유흥업소 종업원까지 약을 구입하기 위해 방문했다. 시간은 이미 11시. 그때 부인약사가 짜증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오늘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오세요.”
“약사님, 잠깐의 시간이면 되니까.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집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중에 오세요.”

약사 부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상담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내일 같은 시간에 방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세요. 그러나 오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어요.”

약국을 나오는 데, 유난히 서류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후 몇 차례 방문을 하였으나, 상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투자한 시간 때문이라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슬며시 오기(傲氣)가 발동했다. 직감적으로 빠른 시간에 결판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여러 번의 방문으로 인해 두 분께 불편함을 드리지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다만 제가 제안 드리는 상품이 두 약사님께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물론 선택은 두 분의 몫입니다. 다만 오늘만큼은 가입여부를 떠나서 꼭 상담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녁에 인사 드리겠습니다.’

간단한 문자메시지였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마지막 상담이라는 생각으로 온 몸에 흐르는 기(氣)를 모아서 보냈다.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 답신은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 승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다 듬었다. 어차피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결과는 No일 테니까……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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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12.30 20:34:52 *.5.98.153
오기. 그거 매력있지.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에서 이길 수 있도록 탄력 받게 하는 덕목. 승부욕이라고도 하지.

"어차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지라도 결과는 'NO'" 라는 사고방식에도 공감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나면, 속이 편해지지. 그렇게 편한 상태라야 가진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지.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게임의 법칙이고, 삶의 지혜들이야.
이런 공감이 있어서 좋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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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02:23:48 *.41.62.204
'그러나 깨달음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온다고 했는가?'

 오늘의 명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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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1.04 07:50:05 *.160.33.149

  거암아,   보험에 국한 된 시각이 계속 걸리는 구나.  시선을 넓히자. ,
  보험이야기를 하되 인간이 있고, 직업이 있고, 고뇌가 있고 승리가 있는 인생의 이야기로 가자는 것이 좋겠다. 예를들어  제목이 ' 세일즈의 기쁨' 쯤 되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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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9.01.04 18:33:36 *.123.249.253
넵!  알겠습니다.
아직 제 글에 여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차근차근 채워나가겠습니다.

최근 몇편의 글들은 일부러 거절과 시련의 실화를 담아보았습니다.
이 칼럼들은 정확히 제가 쓰려고 하는 글들의 반쪽입니다. 다른 반쪽(이론적인 서술)은 아직 시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른 반쪽들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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