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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3일 07시 21분 등록

내가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니스의 한 미술관에서였다. 침대 머리나, 부엌용 도구,

집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도구들을 한꺼번에 붙여서 벽에 걸어 둔 듯한 그녀의 초기 작품

에는 이상한 무서움이 잔뜩 묻어 있는 듯 했다. 그녀의 작품을 보던 중 내 몸에는 혼 몸에 소름

이 순식간에 돋았다. 어둡고 깜깜한 동굴 안에서 그녀가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살려 달라는 애절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마술에 걸린 사

람처럼 작품 주위에서 멈춰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작품의 제목을 들여다 봤다. 이 강력한 감정의 덩어리에는 무제라는 성의없

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니키 드 생 팔. 처음 들어본 작가 이름이었다. 나는 얼른 수첩

을 꺼내 그녀의 이름을 띄엄띄엄 적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에 틀림이 없어. 무슨 일일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영 개운치 않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이 지났을까. 나는 서울로 돌아와 바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

던 중이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길 한가운데 육교 위에 커다랗게 그녀의 이름이 써 있었다.

니키 드 생 팔’. 순간 나는 살려 달라던 그녀의 목소리를 상기했다. 그녀가 지금은 어떤 모습으

로 지내는 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주 주말, 나는 국립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녀의 전시가 열린다는 전시관을 방문하기 위

해서였다. 그녀의 전생애에 걸친 작품 수십,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전시회였다. 사실, 난 그

녀가 이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작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시관 입구를 착각해서 거꾸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뒷편에 마련되어 있던 그녀의 최근작부터

관람하게 되었다. 알록달록 유치원생들이나 쓸 것 같은 알록달록 화려한 색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조각 작품들을 보며 나는 예전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 두었던 수첩을 다시 뒤적거렸다.
니키 드 생팔_2.jpg

 

 니키 드 생 팔

 

분명 그 이름이 맞는데 왜 이리 다른 느낌일까? 과연 그 때 살려 달라고 그림 속에서 외치던

그녀가 맞기나 하는걸까?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발랄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자신의 꿈을 구현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살려 달라며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던 그녀. 대체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리도 달

라진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 우울했던 그녀의 과거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탕 탕 탕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왔다. 시원스런 서양 미인인 니키 드 생 팔이 환하게 웃으면서 총을

쏘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은 기록용 다큐멘터리 -- , 바로 이거다.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이 그

녀를 해방시켰다. 서서히 이해라는 기계가 내 머리 속에서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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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겐 오래된 분노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그 시

한 폭탄 같은 마음의 응어리들이 그녀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했음은 더욱 당연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터뜨리지 않는 분노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터뜨리지 않는 분노를 밖에서 보는 사

람은 그 폭발이 언제 일어날까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폭발

하지 못한 분노를 누르고 있는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은 분노를 누르고 있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누군가 자신의 폭발물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감싸 안는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 버

린다 

 

아마 이 슈팅 페인팅을 제작하기 전 니키가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폭발하려는 분노의

폭탄을 감싸 안는 데 모두 써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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