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소은
  • 조회 수 3231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9년 3월 10일 01시 16분 등록

사랑하는 사부님께

시간은 수수께끼입니다. 그 속에 몸 담고 있으면 마냥 길고, 이렇게 벗어나 돌이켜볼라 치면 마냥 짧기만 한 것이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1년의 시간이 그랬습니다. 길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편 너무 짧고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 수료라는 말은 소망하던 어떤 하나의 과정을 끝낸다는 의미에서는 기쁜 말이지만, 오늘 나에게 수료는 사부님의 안온한 품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마냥 기쁠 수만은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저에게는 참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20년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때가 이르면 모든 것이 빠르게 힘을 모아준다는 것을 저는 지난 1년 반 동안 실감하였습니다. 2007 5월 저는 4년 전에 보았던 사부님을 만나러 어느 강연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부님이 인용하신 아놀 토인비의 말을 꼭 붙잡았습니다. ‘역사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때 저의 마음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 해 7월 오래 미루어둔 행동 한 스텝을 꿈벗 프로그램을 통해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10월 고대하던 사부님 댁을 방문할 영광을 얻었습니다.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은 그대로 버티고 서 있었지만 저는 그 동안 나를 비껴간 행운들이 그곳에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발 밑으로 굽어 보는 짙푸른 저녁 하늘과, 점차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달과, 둥그런 와인 잔을 통해 내려다보는 인왕산 불빛들, 그곳에 사부님이 계셨습니다. 사부님은 그날 제가 그려낸 10대 풍광이 참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사부님의 발코니에 서서 저는 어릴 적 시골 마당에 누워 바라보던 카시오페아를 보았습니다. 하나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대양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돌고 싶어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바로 그 순간의 나였습니다. 그날부터 가슴에 쿵쿵 진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동은 12월 어느 날 문득 직관이 나를 강렬한 소망으로 이끌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직관은 운명의 부름이었습니다. 4기 연구원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불편했던 안정을 버리고 치열한 변화의 괴로움을 택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돌아보니 저는 연구원을 제가 택했습니다. 물론 사부님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직관에 의존해 제 인생을 새롭게 열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의식(ritual)으로 Me Story를 한 달 동안 고심해서 썼습니다. 지원서에 방점을 찍던 날, 저는 스스로를 위해 많이 울어 주었습니다. 더 이상은 자기 연민 때문에 울지 않겠노라, 앞으로 내가 우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기쁨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일들 때문에만 울겠노라 그렇게 다짐을 하였지요. 그리고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기 전, 사부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말을 아끼시는 사부님의 문자 두 마디,

'지원서 좋다.'

풀리지 않는 화두를 안고 오래도록 머리를 싸매던 사람이 답을 깨치는 순간의 기분이 그런 것일까요. 저의 마음이 순간 공중에 잠시 정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옥의 레이스, 그러나 가장 행복했던 한 달의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레이스를 거치는 동안 함께 경쟁했던 우리들은 이미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동행자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할 1년은 기대만으로도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일생을 사부님이라 부를 분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요. 그 동안 숱한 스승이 저의 인생을 스쳐갔지만 바로 그 한 분의 스승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나이든 어머니에게서 뒤늦게 태어난 저에게는 늘 제 인생을 이끌어 줄 한 분의 정신적 스승에 대한 이상이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사부님 아시나요. 사부님은 비단 저에게는 인생의 사부만이 아니십니다. 백오와 써니, 성주와 떠났던 남도 겨울 여행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그곳에서 사부님의 야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지난 1년 동안 스승으로서의 권위와 무게를 혐오하는 사부님의 진심을 숱하게 보았습니다. 사부님은 우리와 함께 속돼지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부님의 추임새가 아니었다면 어찌 우리가 사부님과 그토록 허물없이 웃고 떠들 수 있었을까요. 우리 속의 가식의 찌꺼기들을 털어내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사부님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이렇게 사부님을 존경하고 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셨던 첫 순간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하나도 없는데도 사부님은 저를 작가라 불러 주었습니다. 재능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아는 저는 제 재능을 별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자괴감이 몰려오고, 별로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내게 재능이 좀 있는 것 같은 자만에 빠지곤 했습니다. 사부님은 말씀하셨지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재능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자주 누가 얼마나 더 잘 활용하는가의 문제라고요작가는 철저히 자신이 쓴 글로만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신 사부님 가르침대로 저는 입 보다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우리들의 빛나는 장면 중에서 뉴질랜드 여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보지도 않은 뉴질랜드 여행을 단지 맘에 끌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모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건 동일한 감성코드를 가지고 지지해주신 사부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22명이 함께 한 캠퍼밴 여행을 우연에 맡길 수 있었던 배포는 절대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을 질러준 것은 다름 아닌 사부님의 부지깽이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놀랐습니다. 모두 원래 한 팀이었던 것처럼 자신의 몫을 유감없이 발휘해준 덕분에 모든 게 그 이상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기적의 동인이 되었고 그래서 하늘도 우리의 편이었습니다. 그것은 변경연의 시민들이었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70
년대 문어춤을 추시던 사부님의 모습에서, 트윈 폴리오의 노래를 몰래 죽어라 연습했다 그럴싸하게 불러주시던 사부님의 모습에서 우린 우리들의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우리도 사부님처럼 그렇게 멋진 존재들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멋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부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사부님의 믿음입니다. 때로 우린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할 때도 있지만 사부님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 믿지 못하는 부분까지 믿어주셨습니다. 사부님은 우리 자신이 기적인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스스로 이루어가는 기적을 바라보는 일이 우리 인생의 낙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주셨습니다. 사부님 덕분에 미래를 앞당겨 우리는 현실인 것처럼 꿈을 꿉니다. 앞으로 우리 인생이 얼마나 흥미진진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오늘 수료를 앞두고,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세상이라는 대양으로 나아갑니다. 사부님 때문에 전혀 새로운 여행길에 오를 수 있으니 가슴이 벅찹니다. 먼저 길이 되어주신 사부님 덕분에 우리는 의심이라는 적을 상대하지 않고도 이 여행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 숲에 우리들의 감나무를 심고, 해마다 열린 감을 따러 우리는 한 자리에 모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떨어져 있어도 한 감나무의 가지처럼 동일한 열매를 맺으며 세상 곳곳에서 자신의 몫을 살아낼 것입니다. 오늘 이 감격을 기억하며 우리는 서로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4기 여러분, 그리고 사부님, 너무 너무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IP *.240.107.140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9.03.12 07:11:35 *.160.33.149

 소은은 늘 날 즐겁게 했다.   구름사이로 돌연 햇살이 비치듯  그렇게 경쾌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소은이다.     즐거움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그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    사람들과 가까워 진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웃음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늘 웃을 수 있다.    봄이 좋구나.
프로필 이미지
소은
2009.03.12 12:03:12 *.240.107.140
네 사부님,
연구원들을 뽑아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신 사부님은 정말 영민하신 분입니다.
그들과 놀 수 있는 길을 터가시는 모습이 사실은 제가 가장 흠모하는 모습입니다.
그토록 치열하게 연구하게 하는 것이 사실은 인생을 즐기는 법을 터득케 하려는 것임을,
1년 과정이 끝나는 지금, '무릎을 탁 치며' 깨닫습니다.
그런 점이라면 제 유전자가 먼저 알고, 제대로 반응을 해줍니다.
저는 사부님과 더불어, 또 내가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네크워크 속에서 
남은 인생 잘 놀 것입니다. 
그리고 사부님이 그러셨듯 남들도 잘 놀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돕는 방법도 사부님에게서 배웁니다.
내가 잘 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노는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하나 둘 늘어갈 것입니다.   
잘 놀 수 있는 사부님인 것이 제 인생을 풍요하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2 [42] 빗속을 걷는 이유 [2] 2009.03.15 3677
1011 [41] 부모는 봉 [1] 2009.03.15 3385
1010 [36]화성인 구라 변경연 탐험기 (1) [3] 구라현정 2009.03.14 3564
1009 (43)인터뷰 7: Scene Playbill 사장 정연주 - 내 인생에 핑계는 없다 file [3] 소은 2009.03.10 5165
» (42)연구원 수료식날 사부님께 드리는 편지 [2] 소은 2009.03.10 3231
1007 [42] 들이대기 2 현웅 2009.03.06 3302
1006 [40] 시련 16. 장한 우리딸 [4] 지희 2009.03.04 3699
1005 [35]분노가 그녀를 어떻게 만들었나? file 구라현정 2009.03.03 12265
1004 [40] 어느 한 직장인의 단상(斷想) [4] 양재우 2009.03.02 3522
1003 [39]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최코치 2009.03.01 6506
1002 [40] 생존 혹은 비굴 2009.03.01 3178
1001 (41)인터뷰6:정낙용세무사-무대포로 하면 길이 보인다 소은 2009.02.24 8072
1000 [42] 이상한 반 아이들 - 서문 [7] 현웅 2009.02.18 3386
999 [37] 기본에 충실한 삶 정산 2009.02.17 3552
998 (40)인터뷰5:양길용편-앞으로 나가는 힘은 내가 이룬 성취에서 나온다 [1] [2] 소은 2009.02.17 5285
997 미리 떠나는...2009년 봄날 단편 file [1] 이은미 2009.02.17 7464
996 [41] 들이대기 현웅 2009.02.16 3320
995 [39]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4] [16] 거암 2009.02.16 15052
994 [38] 직업은 내 안에 있다. 최코치 2009.02.15 3518
993 [39] 사랑과 전쟁 그리고… 이별 2009.02.15 3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