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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0일 07시 53분 등록

플레이빌표지모음1.jpg

어떻게 해서 <플레이빌> 한국판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나.

 

뉴욕대 대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타임 스퀘어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데 같이 간 친한 오빠의 회사 동료가 <플레이빌>을 들고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이전에도 한 번 함께 공연을 본 적이 있는 예일대 MBA 학생이었다. 그는 < 플레이빌>의 질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음악 비즈니스를 전공한다는 걸 알고 딴에는 신중하게 비즈니스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잡지, 우리 할아버지가 하시는 건데, 너 이거 한국에서 낼 생각 없니? 있다면 도와줄 의향이 있는데…’

 

그 때 나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다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박사과정을 계속할까, 아니면 일종의 공연기획사인 <바이스 베르사 프로덕션>을 키워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해볼까... 여러 가능성을 놓고 미래를 계획하던 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제안은 이상하게 나의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잡지를 아주 좋아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피아노와 관련된 잡지로 시작했지만 나의 잡지 취향은 점점 넓어져갔다. 피아노에 집중하느라 다른 건 시도할 엄두도 못 내던 시절, 잡지를 이것 저것 사서 보는 것은 내게 유일한 사치이자 즐거움이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나의 집 거실 가장자리는 완전히 잡지 책장으로 둘러싸여있었다. 나는 패션, 음악, 디자인, 건축 등 8-9개의 잡지를 늘 정기구독하였다. 다행히 미국은 저렴하게 잡지 구독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주말에 연주를 보려면 타워 레코드에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주말이면 으레 나는 타워 레코드에 가서 차를 마시며 하루 종일 잡지를 훑어보곤 했다. 그러니 공연을 좋아하는 내게 <플레이빌> 한국판 창간이라는 말이 어찌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도 사업은 사업이다. 특히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이 열악한 잡지 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보통 용기가 아니었을텐데...

 

솔직히 말해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평생 외동딸인 내가 피아노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것도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낙워상가에서 미광사라는 악기 도매상을 하며 자수성가한 부지런한 분들이셨다. 피아노로 제법 인정을 받던 내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솔직히 두 분은  매우 속이 상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내색하지 않고 그래? 네 결심이 정 그렇다면 해봐!’ 하며 이번에도 나를 믿어주셨다. 박사과정으로 쓰게 될 돈을 미리 대주는 것이니 열심히 해보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어쩌면 한국 시장을 잘 몰라서 시작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한국에 계속 살고 있어서 한국 잡지 시장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면 아마도 쉽게 이 사업을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사업을 피아노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운 곡을 칠 때는 늘 모험심이 필요했다. 미지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곡을 하나씩 익혀나가야했다. 사업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처음 1-2년은 무척 힘들었다.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없었더라면 중도에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의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잡지와 함께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우아하게 귀국 독주회를 열어야 할 시간에 나는 피아노 치던 손으로 책을 날랐다. 차에 책을 싣고 배포처를 돌아다녔다. 나에게 사장의 권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광고도 직접 따러 다녔다.(가녀리고 순수해보이는 연주씨 인상으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대학원 시절 만들었다는 <바이스 베르사 프로덕션>은 어떤 회사인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예전 작곡가들이 미디가 다양하게 발전한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떤 시도들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이 회사의 출발이었다. 대학원 수료에 즈음하여 대중이 클래식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친구들과 설립한 것이다0.01%도 안 되는 좁은 음악 시장을 두고 경쟁하느니 경쟁이 안되는 분야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클래식 음악들을 새롭게 작곡하고 변형해서 연주하는 행사를 기획해보았다. 꽤나 호응이 좋았다. <플레이빌>을 한국에서 만들게 되자, 그 회사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

 

외양은 많이 다르겠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다를 게 없다. 연주회에서 보는 피아니스트는 얼마나 우아한가. 그러나 관중들의 박수세례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는 연주자의 화려한 모습은 극히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머리에 핀 100개 꽂고 츄리닝 입고 오로지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땀의 시간인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미 나는 피아노로 잘 훈련된 적응성과 낙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사업하며 겪는 궂은 일들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잡지 역시 그러했다. 잘 빠진 잡지는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일은 모두 노가다였던 것이다.

 

악보 상에 있는 평면적인 음악이 입체적인 음악으로 멋지게 살아나기 위해선 몇 시간이고 거듭해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해야 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모호하고 안 될 것 같고, 명확한 그림이 안 그려질 때에도 확신을 저버려선 안된다. 인내를 가지고 연습하면 멋진 음악이 언제나 결과로 주어졌던 경험이 나에게는 앞이 안 보이는 힘든 비즈니스 상황들을 인내하게 해주는 힘이었다.

 

지금 <플레이빌>은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긴 했지만 한국에서 잡지로 수익을 낸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의 경기침체로 좀 힘들었다. 그러나 견딜 만 했다. 광고 수익이 줄어 타격을 입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겁날 건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우리 잡지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어려울 때도 나는 우리 잡지가 해외에 라이센스를 주는 날이 올 것을 꿈꾼다.  

 

나에게 변화란

 

터닝 포인트다.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혹은 인생의 반전을 위해 뭔가를 시도한다면 그런 시도들이 삶을 바꾸어 줄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하는 자가 질문이 잡지의 질을 바꾸는 것처럼 삶의 질도 바꿀 수 있다. 변화가 없는 인생은 재미없다. 나의 모토는 유지하되 바꾸어라이다.  

 

미국의 <플레이빌>은 어떤 잡지인가

 

뉴욕 사람들은 공연을 단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즐긴다 브로드웨이(영국 웨스트엔드도 역시)에서는 공연 입장권 예매 시기부터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는 물론이고, 공연관람 후에도 사람들이 빠트리지 않는 것이 <플레이빌>이다. 공연 전부터 꼼꼼히 챙겨 읽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통계에 따르면) 95%가 버리지 않고 그것을 간직한다고 한다뉴욕의 약 150만부를 비롯, 미국 내 발행부수가 700만을 넘을 정도로 <플레이빌>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공연소개는 물론 전문적인 글과 가벼운 읽을 거리, 전문가에 의한 엄정한 공연 선별 외에도 주변 식당가와 쇼핑에 대한 안내까지 싣고 있어 공연장과 그 주변을 모두 즐기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휴대가 간편한 작은 판형과 부담 없는 두께도 인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
플레이빌>의 이런 좋은 이미지가 아무래도 나에게 바람을 넣은 것 같다. 아직도 우리 잡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공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우리 잡지를 통해 공연과 친숙해졌으면 한다. 한 사람이 한 달에 한 공연 만이라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기회를 우리 잡지가 만들어내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재미없는데 티켓 값만 비싼 공연을 보면 화가 난다. 그런 공연도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 잡지 만드는 사람으로서 애로 사항이기도 하다. 라이센스를 한 외국 저명한 연극보다 사실 우리나라 연극이 내용이 좋고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브랜드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심리는 공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잡지를 통해 독자들이 좋은 공연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워가면 좋겠다.

 

목숨처럼 여기며 쳐온 피아노를 어떻게 떠날 수 있었나

 

나는 내가 피아노를  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아노를 치지 않고 회사일로 바쁜 요즘에도 피아노를 치는 나의 모습을 뇌리에서 지운 적은 없다. 지금 이 카페(나는 종로3가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그녀 회사의 아래층, 카페 ‘Scene’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애초 아무 때나 공연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커튼을 내리고 조명을 올리면 이내 멋진 공연장으로 변한다. (카페 가운데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가르키며) 저기서 내가 직접 연주를 할 수도 있다. 한국의 공연장은 미국의 공연장들과는 달리 이야기와 역사가 없다. 인사동이나 홍대, 대학로와는 또 다른 종로 문화 지구를 만들어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오래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극장을 만들어 의미있는 문화사업을 하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우선 이곳이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잡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좋은 매개가 되어 줄 것이다.

 

<플레이빌>의 근황은

 

2년 될 때까지 위기였다. 그때 플레이빌 본사에다 지원 요청을 했다.
'
당신들이 오래된 노하우를 가지고 잡지를 만들어라, 나는 경에서 빠지고 도와주는 역할만 하겠다.'
그래서 내게 처음 잡지를 제안했던 그 친구가 한국에 왔다. 2달 가까이 한국에서 지내며 직접 상황을 파악한 결과, 그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연주,
어떻게 지금까지 끌고온 거니?’
그는 경악했다. 내가 도저히 가능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그로 인해 본사는 플레이빌의 카피라이트를 영원히 나에게 위임했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가 감당해 가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 이후 사람들에게 좀 더 어필할 수 있도록 (공연의 '막'을 의미하는 Scene을 추가해) <씬플레이빌>로  잡지 이름도 바꾸었다. 그렇게 잡지 이름을 바꾸며 심기일전하던 내게는  <Scene Playbill> 뿐 아니라 <Scene Wedding>, <Scene Dining>... 등으로 잡지를 분화시켜나갈 장기적인 계획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직원을 뽑을 때 적용하는 원칙이 있나.

 

기자 한 명 뽑을 때 300명씩 서류가 온다. 편집장이 일단 글을 보고 1차 필터링을 하면 내가 면접을 본다. 먼저 내 원칙은 신입을 뽑는 것이다. 신입 회사원, 신입 기자, 신입 디자이너첫 경험의 열정과 에너지, 아이디어를 나는 소중히 여긴다. 몇 개월의 인턴 생활을 잘 감당한 신입 기자는 이미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안에 가득하다. 그런 의지가 발동되는 이상, 그들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게 빠르다.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신입 기자들은 기존 기자들보다 공연도 더 많이 보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한다.

다음으로 인상을 중요시한다. 직관으로 끌리는 상이 있다. 상이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나온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나서는 학교도 본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아서 대학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그러니 자타가 공인하는 좋은 대학 출신을 어느 정도는 선호하게 된다. 내 경우를 비추어보건대 인생의 목표가 있는 학생은 20살 이전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는 반증이 그가 입학한 대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 리사가 올해부터 <씬플레이빌>의 표지를 그린다던데


우선 리사는 가수라고 한정할 수 없는 예술가다. 그녀를 보면 진짜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예술의 경계는 없어 보인다. 그녀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라서 다국적 무늬가 그녀의 생각 속에 있고, 그것이 그녀의 예술이 되어 나온다. 그녀는 홍대 미대를 나왔고, 미술 전시회까지 연, 노래를 대단히 잘하는 가수다. 우리 빌딩 지하를 개조해 그녀의 작업실로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그림이 독특한 건 그녀의 생각이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훌륭하고 젊은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는 건 큰 기쁨이다. 2009년부터 그녀의 그림을 표지에 싣고, 잡지 사이즈도 바꾸는 등 다시 잡지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다. 그녀의 표지 그림은 볼수록 맘에 든다.

 

좋아하는 피아노 음악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나는 쇼팽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이 따뜻하다.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과 달리 내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한껏 실을 수 있어 좋다. 쇼팽은 대중 음악으로 치면 발라드의 음악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연주를 계속 했더라면 아마도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피아니스는 침머만이다. 그 역시 쇼팽을 좋아하는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행복한 가정을 이룬 사람이어서 존경한다. 일반 사람들에 비해 예술가들이 배우자와 행복한 관계를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그를 좋아하는 건 일과 삶에서 균형을 이룬 인생을 살고 싶은 내 마음의 반영이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아직 결혼하지 못했지만 나는 따뜻한 가정에 대한 소망이 있다.

 

당신이 기억하는 스승 시머 립킨은

 

어린 나이에 도미하여 줄리어드에 입학한 이후부터 그는 나의 부모를 대신하는 스승이었다. (그는 피아니스트 박중훈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분은 진정한 아티스트다. 성악가인 부인과는 아래 위 블록에 따로 산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홀연히 분가를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남편이 피아노를 자기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당신은 피아노랑 살고, 우리는 친구로 남자!' 고 선언해버렸다. 정말 그들은 지금까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스승에게서 작품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큰 시선을 배웠다.

나의 스승은 참으로 피아노를 사랑하는 분이다. 교육과 연주는 그의 삶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다. 고령이 된 지금도 피아노 연습하는 시간을 밥 먹듯 소중히 여긴다. 그는 부드럽기도, 단호하기도 하다. 부모처럼 나를 잘 보살펴주시는 분이었지만, 한편 학생들이 약속한 시간보다 레슨에 일찍 가면 자신의 연습 시간을 빼앗는다면  아주 싫어하는 분이기도 했다내가 진로를 놓고 고민할 때 마침 그의 아들도 같은 처지에 있었다. 경영학과에 다니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닌 것 같다며 회의하고 있을 때 그는 스스럼없이 내게 해준 조언을 그에게도 해주었다. '1년 쉬면서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해보라는 것! 아들은 사진을 하고 싶어했고, 그는 1년 쉬면서 정말 맘껏 사진을 배웠다.   

 

나는 어떤 사람?

 

나는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친구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째 그 놈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르니’ 라는 말이다. 가만히 노는 것을 참지 못하고, 무얼 귀찮아 하는 법도 없다. 힘들어 하는 것도 별로 없다. 혼자서 넘치는 감정을 풀어놓고 놀기를 즐긴다. 울 때도 하염없이 울고, 슬퍼할 때도 마구 슬퍼한다. 무엇이든 그 감정에 푹 빠진다. 푹 빠지고 나면 힘이 더 난다.

 

현역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피아니스트요, <플레이빌>의 안주인이요, 카페 <>의 운영자다. 그런 조각들이 모여 오늘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시간과 더불어 나를 지칭하는 역할에도 변화가 오겠지만 거기에도 여전히 나는 녹아있을 것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과 나눌 행복한 인생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를 이끌어가는 힘은

 

나는 어떤 순간에도 긍정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티 내지 않는다. 내 공을 남 앞에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나는 증거물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를 공치사 없이 쿨하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잡지가 매력있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결과물이 나와주기 때문이다. 책 하나가 나올 때마다  떨린다. 이는 연주회를 앞두고 대중을 만나기 전에 연주자가 갖는 떨림과 비슷하다. 매달 긴장감을 갖고 일할 수 있어서 좋다.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다. 그간 우리 잡지도 지속적인 변화를 겪었다. 2008 12월호부터 다시 새로운 사이즈를 선보이고 있다.

 

나는 힘들다며 징징대거나 어리광부리는 걸 제일 싫어한다. 내 몸이 아픈 것 조차도 잘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건강하면 사람들은 너 한 번도 안 아프니?’라고 묻는다. 사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만 아픈 것에 기회를 안주고 아파도 그냥 지나칠 뿐이다. ‘나 아파서..’하고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때론 정말 아프고 싶을 때도 있다. 그냥 하루 혼자 충분히 아픈 걸 인정하고 쉬면 개운해지기도 한다. 포기라는 말도 내 사전에는 없다. 부모님은 나보다 10배나 더 강한 분들이다. 나는 그분들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아니면 그분들의 생활을 보면서 저절로 '강한 나'가 뼈 속에 각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Interviewer’s Note

 

씬플레이빌 회사 빌딩은 총 5층으로 된 아담한 빌딩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녀의 안내로 빌딩 전체를 둘러 보았다. 2층에는 연주씨 부모님이 오래도록 운영해오시는 악기 도매상이 있고, 3층에는 야마하 음악스쿨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야마하 스쿨은 전세계에 체인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음악 학교다. 나는 드럼세트가 놓여진 넓은 방을 구경했다. 내 눈속에 담긴 욕망을 재빨리 간파한 그녀는 레슨 시간표가 적힌 브로셔를 내 손에 쥐어주며 배우러 오라고 했다. ‘드럼 치기는 내가 해보고 싶은 20가지 일의 리스트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녀의 잡지사는 4층에 있었다. 홍보를 담당하는 이의 방은 안에 따로 있는데 사장인 그녀의 방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직원들이 쓰는 방에 자신의 책상을 놓고 함께 일하고 있었다. 월요일마다 한다는 편집회의가 얼마나 말랑말랑한 분위기에서 진행될지 저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리사가 개인 작업실로 사용하게 될 지하는 내가 방문하던 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미국에서 13년을 산 연주씨와 외국 생활을 오래한 리사의 모습 어딘가에 접점을 이루는 곳이 있을 것임을 짐작하며 나는 리사가 문득 궁금해졌다. 노래도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리사 이야기를 연주씨가 열심히 하는 것을 듣자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피아노를 전공한 연주씨가 잡지를 만든다는 소릴 듣고 매우 궁금했던 것처럼. 그런 연유로 리사를 다음 주에 인터뷰하기로 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것, 이보다 더 흥미로운 여행이 어디 있을까.

IP *.240.10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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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 16:59:19 *.96.12.130
매주 누나의 칼럼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부끄럽고, 혼란(?)스러워요. 다음 주 리사씨의 인터뷰도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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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9.03.12 11:31:46 *.240.107.140
종윤씨
나는 그저 사람을 만나는 걸 일년 목표로 세워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 뿐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종윤씨가 하는 것처럼 짧은 편지에 자신의 단상을
그렇게 짜임새있게 전달하진 못할거예요.
늘 감탄하며 종윤씨 글 읽고 있어요.
이전에 올려놓은 연구원 리뷰들도 가끔 둘러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종윤씨 글에 놀라죠...
혼란스럽단 생각, 하지 않아도 되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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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15:26:23 *.96.12.130
누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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