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라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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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러분, 구라 랍니다. 전 이제 막 변경연 4기 수료식에서 돌아 왔습니다. 얼마 있으면 우리 별에서 ‘우주선’이 와서 저를 데리고 다시 고향 별 ‘화성’으로 떠날 것입니다. 떠나려고 생각하니 여기서 지냈던 1년이 너무 아쉽고, 함께 지냈던 10명의 4기 연구원들과 사부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그래서, 화성인이었던 제가 이 변경연 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좀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제작년으로 올라 가네요. 그 때는 제가 모닝 페이지라는 별에 살고 있었습니다. 옆 집에는 ‘빨간 여인’이 살고 있었지요. 그 여인은 속까지 새빨간 진짜 정열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모닝 페이지란 별에서 한참 잘 뛰어 놀고 있었지요. 이제 막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했고 제 속에 있던 재주들이 조금씩 들여다 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때, 그 빨간 여인이 제게 글을 써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여인이 무언가를 잘못 먹었음에 틀림이 없어. 나더러 글을 쓰라구. 세상에. 세상에…난 태어나서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글을 잘 쓴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어.’
그 여인은 연달아 제게 말했습니다. 그녀 특유의 약간 허스키한 보이스로.
“정말이야, ‘우주’ ? 그 때 전 우주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있었지요. -- 너의 여행기 매우 재미있어. 너도 멋진 책을 쓸 수 있을 거야. 난, 아주 좋은 선생님을 한 분 알고 있어.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도 편견이 적고 멋진 선생님이야. 너를 그 분께 소개시켜 줄께.”
그녀의 말에는 이상한 ‘긍정’의 자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저는 그 여인의 ‘긍정’ 마력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긍정 마력은 특히 저의 ‘선천성 똥 배짱’ -- 정확한 병명으로 말하자면 ‘까짓 거 일단하고 보자’ 라는 바이러스--과 결합이 되어 단 3일 만에 ‘변경연 4기 연구원 지원서’라는 것을 쓰고 말았습니다.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 다음 주였습니다. 1차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올라와 있는 거였습니다. 영문도 제대로 모른 채 저는 3월 죽음의 레이스 선상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책들을 한 주 만에 읽고 리뷰와 칼럼을 쓰는 일을 4번이나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 있더군요. 힘들긴 했었지만 오랜 만에 읽는 재미난 책들이 참 맛있고 재미있었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읽고 쓰는 것이 맛있고 재밌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린 것 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이 있더군요. 얼결에 제가 변경연 별에 당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연구원의 이름을 달고. 일주일 후였던가 저는 그 빨간 여인과 함께 우주버스를 타고 변경연이라는 새로운 별에 도착을 했습니다.
처음 변경연 별에 도착을 하니 속초라는 곳에서 입학식(?)을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알게 뭡니까? 우리 별도 아니고 변경연 별에 한쪽 구석에 있는 ‘속초’라는 곳이 어딘지를 도대체 알게 뭡니까? 그 날이 아마 4월 5일이었던가? 그 날 저는 처음으로 ‘사부’라고 불리우는 변경연 별의 대장을 만났습니다. 대장은 별로 말이 없었지만 이마와 눈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한 ‘긍정’의 마력으로 저를 꼬드겼던 그 빨간 여인 만큼이나 그 또한 긍정의 에너지가 차고도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말인데요.그 속초 가는 버스 안에서 말입니다. 그 사람들 잘 못 놀더만요. 춤도 잘 안 추고 노래도 잘 안 부르고. 처음에는 재미 없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모두 좀 심각한 듯 보이고, 글만 잘 쓰는지 흔들고 노는 것에는 약하더라구요. 조용하고 어색하고, 하두 그래서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별에서는 이렇게 놀면 추방 당합니다. 잘 놀라는 말이 완벽하게 보여 주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음에서 흥을 내어 흥겹게 놀라는 말입니다. 글쎄, 그들에게는 그 ‘흥’이 없는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되더군요.
‘일 년 내내 이러면 정말 힘겹겠다. 지금이라도 우리 별로 다시 돌아갈까?’
그게 그 때 제 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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