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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5일 22시 11분 등록

…… ‘취업을 하지 못한 성인 자녀의 용돈도 부모가 줘야 한다’는 응답은 71%에 이르렀지만 가구주의 47%는 ‘현재 부모가 스스로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부모들이 옛날만큼 자식들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면서 책임만 지는, 한마디로 ‘봉’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가구주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부모들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답이 46.6%로 가장 많았다. ‘모든 자녀가 함께 생활비를 댄다’가 25.9%로 뒤를 이었고 장남이 주로 생활비를 대는 경우는 14.6%에 그쳤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담은 여전했다. 결혼 비용(88.8%), 대학원 교육비(81.7%)는 물론 ‘취업을 하지 못한 성인 자녀의 용돈도 부모의 몫’이라는 응답이 71.2%나 됐다.

복잡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사회조사’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인데 이런저런 내용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복잡해졌다. 그래서 뚝 잘라봤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내용만 잘라내어 보니 내용이 간단해졌다. 쉽게 말해서 이거다. 대학원 다닐 때까지, 그 뒤에 취업을 못하면 그 때까지 부모들이 용돈을 줘야한다는 거다. 그러고 나서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면 그때부터 부모들의 생활비는 부모들 스스로가 해결한다.
평소에 하는 말을 사용해서 상황을 꾸려보면 이렇게 된다. 서른 넘어 놀고 있는 자식이 말한다. “애인 만나러 가야 하는데 용돈 좀 주세요.” 대부분의 부모는 당연히 준다. 돈이 없으면 막노동을 해서라도, 달러 빛을 내서라도 준다. 그 상황에서 자식이 미래에 할 말을 지금 한마디 더 붙인다면 이렇다. “그런데 부양은 못해요. 생활비도 못 드려요. 알아서 사세요.”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돈으로 볼 수는 없다. 돈이라는 잣대로 절대 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건 한 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부모는 돈으로 계산하지 않지만 어떤 자식은 돈으로 계산한다. 이미 관계의 정립부터 다른 것이다.
만나이로 열아홉이면 선거권이 나온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생기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법적으로 미성년자가 아니다. 법조항의 표현대로 ‘심신의 발육이 충분하지 않아 판단능력이 부족한’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취업을 하지 못한 성인 자녀의 용돈도 부모가 줘야 한다’는 응답이 71%인 것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론 소득의 수단이 없는 자식들을 모른 척 팽개쳐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어찌해서든 돈을 마련해서 준다. 자식이 서른 살이든 마흔 살이든 마찬가지다. 그 돈으로 자식들은 술도 먹고, 입사 시험도 보고, 애인도 만난다. 그것을 욕하기에는 한국의 정서와 맞지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례를 끌어와 이러니저러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은 우리가지고 있는 사회구조와 삶의 방식 때문이다. 사실 그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넘어가자. 그런데 사회구조나 삶의 방식을 말하기에는 좀 억울한 일이 그 시점이 지나면서 벌어진다.

통계청 조사내용에 나온 것처럼 ‘현재 부모들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답이 46.6%로 가장 많다. 절반에 가까운 부모들이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해결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자식들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잡고 결혼하고 분가해 나간 자식들이 부모들의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능력있는 부모나 생활비 걱정이 없는 부모도 있겠지만 그건 논외로 치자. 왜 자식들이 생활비를 주어야 하느냐고 묻는 자식들 있을까봐 걱정스럽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그럼 너희들은 어른이 되도록 왜 부모한테 돈 받아서 썼냐?
부양의 문제는 제쳐놓자. 단순히 돈 문제로 좁혀보자.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나서 ‘내가 너 키울 때 돈이 얼마 들었는지 아느냐’ 또는 ‘키울 때 돈이 많이 들었으니 이만큼은 내놔라’ 하자는 게 아니다. 자식들이 돈 못 벌고 사람구실 하지 못할 때 부모는 어찌되었든 자식을 사람구실 하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거다. 그러면 부모가 나이 들어 생활이 힘들어 졌을 때 돌아보는 게 당연하다. 부모를 모시라는 게 아니다. 요즘 모시라고 강요하는 부모도 별로 없다. 단순히 생활비 정도는 보태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받을 때는 당연히 받고 나중에는 모른 척 한다.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다.

나라와 시대의 풍요로움을 말해주는 척도로 쓰이는 GNP로 계산해볼 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득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1인당 GNP는 2만달러 규모에 달한다.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마음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요즘 사회에 절대빈곤은 드물다. 절대빈곤이 드물다는 것은 옛날처럼 밥을 굶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힘들다고 말한다. 상대빈곤 때문이다. 밥만 먹고 사느냐고 말할 만하다. 단순히 밥을 굶지 않는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적 빈곤은 사람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핑계를 만들어낸다. 부모에게 보내 줄 돈이 없는 것이다. 차를 살 돈도 없는데, 공연을 보러 갈 돈도 없는데, 주식투자할 돈도 없는데, 그래서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태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부모들은 스스로 생활비를 해결한다. 자식들이 힘들게 살고 있어서 말이다.

우석훈은 현대를 살고 있는 20대를 ‘88만원세대’라고 불렀다. ‘88만원세대’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임시직으로 일해야 하는 20대의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우석훈은 책 ‘88만원세대’에서 이러한 경제적 구조를 인질경제라고 칭했다. 4050세대들이 1020세대의 고통을 인질로 잡아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우석훈의 말대로라면 현대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역시 ‘인질경제’라고 보아야 한다. 인질경제라는 표현을 빌려 온다면 이 경우는 ‘역(逆)인질경제’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1020세대가 5060 또는 6070세대의 고통을 인질로 잡아서 청춘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88만원세대의 인질경제는 사회 경제적인 구조의 문제이고, ‘역(逆)인질경제’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라는 점에서 많이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인질경제 역시 집에서의 세대구성으로 본다면 아버지와 아들 또는 삼촌과 조카라는 점에서 ‘역(逆)인질경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겁한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다 큰 자식에게 주는 용돈, 장성한 자식이 늙은 부모에게 드리는 생활비는 단순한 돈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돈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 돈에는 한 나라의 사회문제가 투영되어 있고,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삶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부모의 자식이면서 어느 자식의 부모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한 시대의 삶의 형태를 만든다.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아주 멀지 않은 장래에 발목을 잡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현재의 편리함 때문에 스스로 불리한 선택을 한다. 돈 때문에 우리는 예의도, 인간의 도리도, 부모도 외면한다.

IP *.163.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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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9.03.16 10:10:02 *.240.107.140
창, 글 이렇게 가면 되겠다.
좋다.
자기답다.
재미있고 눈물난다.
내 얘기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부모님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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