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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4일 22시 28분 등록

 

저는 노빠입니다. '바보 노무현'에 흠뻑 빠진 사람이죠.

 

불의에 분노할 줄 알며,

가장 약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고 봉사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출 줄 알고,

힘들 일만 골라 하고,

에둘러 가지 않고 고통에 온 몸으로 맞서며,

무엇보다 시대 정신을 알고 의기 있게 자존심을 지켰던 사람...

 

저는 그의 영혼과 제 영혼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영혼의 교감이라고 할까요. 그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였으며, 그의 눈과 말과 행동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진실함과 추진력에 놀라워 하며 또 무언의 지지를 힘껏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 후보에 나서기 전까지는 솔직히 그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이 사람 누구야?’ 하면서 알게 된 그의 이력은 한 마디로 놀라움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독학하여 사법고시를 패스했으며, 촉망 받는 변호사가 되었음에도 돈 보다는 핍박 받는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변론하였으며, 민주화 운동에 직접 뛰어들었으며, 군사 정권의 불의에 대해 분노하였으며, 일신의 안위를 노린 정치적 야합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무모한 도전과 실패하기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런 그는 넘어졌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숱한 역경을 거치고 결국 우리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행보는 주변 장(場)과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제가 언급할 필요도, 언급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어떤 정치적인 판단을 내렸든 지지를 보냈었습니다. 이유는 그의 ‘진정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성’, 제가 그를 좋아한 이유입니다. 그는 해야만 할 일을 해야 할 바로 그 때에 한 사람입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했으며, 보살펴 주어야 할 때 보살펴 주었으며, 도전해야 할 때 도전했으며, 놓아야 할 때 놓았으며, 물러서야 할 때 과감히 물러선 사람입니다. 그는 에둘러 돌아가거나 장막으로 자신을 감싸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무장 없이 온 몸으로 맞섰으며, 쟁취했으며, 쟁취한 것을 과감히 내려 놓았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불의에 맞서 항거하며 그들을 이기고 대권을 잡았으나 그 무한 권력을 남김없이 놓았던 사람...

권력 자체가 아니라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원했고,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 가능함을 보임으로써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던 사람.

 

그를 보낸 오늘..... 하루 종일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죽음까지도 그다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는 이미 전사의 삶을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권을 재획득한 기득권의 치졸한 보복에 대해, 자신의 존재로 인해 발생한 사태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카드 한 장을 과감히 던져 버렸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주변 모든 사람의 짐을 홀로 짊어지고 스스로 제단에 올라 제물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가장 경건한 죽음의 길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으로,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곳에서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 바위 위에서 자신의 집과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이리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기에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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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中)“

 

오월의 짙은 녹음을 뒤로 하고 지는 꽃잎처럼 스러져 간, 내가 사랑했던 의로운 바보 전사의 마지막에 술 한 잔 올립니다. '그 동안 참으로 고생 많았습니다. 할만큼 했습니다. 이제 그만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안녕, 좋은 사람. 온 몸으로 교감할 수 있었던 나의 역할 모델, 나의 진정한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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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12:32:20 *.12.130.110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드렸으니 여기서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말씀만 남길게요...

그리고 나의 댓글달기 공백을 오빠가 열심히 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역시 오빤 정말 든든한 웨버야...
나도 오래 차칸 동생할께.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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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5.25 12:52:14 *.126.231.194
저 역시 멍하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일이 있어 그 멍함을 빨리 깼어야 하는데 뜻대로 안되네요.
가슴이 아파서 그런가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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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03:10:01 *.40.227.17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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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2009.05.29 23:59:45 *.142.217.231
희산님의 글에도 솔직함과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고독과 진실함 그리고 자신감까지..
 
그리고 글에 센스가 있어 지루하거나 건조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쓰고 싶어하는 어조로 말씀을 하셔서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

매번 희산님의 글을 눈으로만 읽다가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봅니다.
자주는 못해도 가끔을 흔적을 남기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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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5.31 22:59:26 *.176.68.156
마음 따뜻한 댓글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지켜보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이 드니 좋은 의미의 부담감이 팍팍 느껴지네요^^.

흔적 많이 남겨 주십시오^^. 댓글을 통한 대화와 교감이 변경연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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