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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5일 11시 57분 등록

칼럼 7: 제 2의 독자를 찾아서


이제 북 리뷰를 12번 해 보았다. 레이스 시절을 포함하여. 그러니 이제는 어지간히 틀이 잡힐만도 한데...아직도 걸음마를 하고 있는 것 처럼 어설프기만 하다. 내가 만일 저자라면...을 매우 신경을 써서 잘 쓰도록 해보라는 제시를 받고 있기에... 어떻게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같은 주제의 책을 20권쯤 펼쳐놓고 보았으나 별다른 해결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목차와 전체적인 구조만 보았다.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 (그는 천재를 지칭하지만 나는 보통사람으로 보고싶다.)이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 최소한 10년은 기본을 익히라고 했다. 하루에 적어도 3시간씩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명성을 얻은 후에도 하루에 10시간씩 빠지지 않고 곡을 썼단다. 선 수행을 할때도 가능하면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하라고 써있다. 특히 몸이 변하는 것을 보려면 적어도 100일은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김연수는 매일 원고지 15매를 쓴단다. 매일 매일, 나는 매일 매일 써야지 하면서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오전에만 쓴다.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고 있는 듯한 긴박감을 느끼면서, 지난번에는 너무 급하니까 머릿속이 백지처럼 변하더니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서  저장고에서 한 꼭지 빼다가 겨우 올렸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서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고 또 우리 홈페이지가 감기에 걸린 듯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더욱 심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 언제든 마음을 뒤흔드는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자기 자신과 지켜보고 있는 변경연 공동체에 신의를 지켜야 하니까, 어쨋든 써야한다. 그리고 끝까지 써서 책을 쓰고 졸업을 해야 한다.


우리가 숙제로 받은 책은 엄선에 엄선을 거듭하여 글과 내용이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다. 그러니 이런 책을 처음 읽게 되면 ‘훌륭하다, 놀랍다, 많이 배운다...’ 대체로 이런 내용의 느낌이 먼저 나온다. 우선 기가 죽고마니 자연히 꼬리를 내리고 자기 목소리로 말을 꺼내오지 못한다. 아무래도 발상의 전환을 하려면 우선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해야 하는데 숨을 너무 죽여 버렸나보다.


지난 일요일,  나의 오랜 친구와 간송미술관에 갔다.  내 친구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다. 오래전부터 늘 나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고, 책을 읽고 난 느낌들을 오래오래 나눈다. 주로 전화로, 특히 과학책과 그림책을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도서반장을 했고, 또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일을 했기에 책을 보는 눈이 참 높다.  그런 친구가 겸재전을 보더니 ‘인곡 유거’가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인왕산 자락에 있었던 그의 집 사랑방을 그려놓은 그림이다. 그 한쪽에 서책이 쌓인 서가가 보이고 도포 입은 선비가 책을 펼쳐놓고 있다. 겸재가 관아재와 이웃해 살던 후반 생애의 생활모습을 그린 자화경(自畵景 :스스로의 생활 모습을 그린 진경)이다.


내 친구는 변경연에 원서를 내고 레이스를 하는 동안 줄곧 지켜보며 격려를 해줬다. 그래서 나는 과정을 다 설명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네이버에게 먼저 물어보지만 네이버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친구는 거의 막힘없이 대답을 해준다. 그래서 매우 안정감 있게 과정을 따라 갈 수 있었는데...이즈음에 드는 생각이 결국 우리가 책을 쓰면 제 1독자는 물론 자기 자신이 될 터이지만 이렇게 제 2독자를 미리 정하고 책이 되어가는 과정을 주-욱 함께 가면 아주 훌륭한 준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한 주일 한 주일을 쫒기며 글을 쓰다보면 결국 자기 가족 밖에는 사서 읽어줄 사람이 없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할 때 훌륭한 글을  베껴 적는 일부터 시작했단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공부 방법은 음악가도 미술가도 무용가도 다를 바 없다. 처음에는 보고 모방하며 배운다. 그런데 일정한 연습량이 쌓이면 스스로 쓰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문학 창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은 읽기에 좋을 만큼 아름다워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준비 1단계로 우선 나의 생각의 틀을 분석해 볼까 한다. 맨 처음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신문의 고정 칼럼을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에 잠깐 읽고 나가기 쉽게 생각 하나와 짧은 문장을 연결해서 썼다. 선생님은 글을 읽으시고 길게 쓰고 설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상황과 느낌들이 들어간 글을 길게 써놓고 보니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너무 많이 노출을 한 것이 아닐까? 혹시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피드백을 받아보니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인드라 망이니 나 말고 또 너도 칼럼 속에 등장할 수 있다. 혹시 본인이 보면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고 나는 좀 빼고 써달라고 주문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간결, 건조체 문장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덧붙이고 설명하고 꾸민 긴 문장을 다시 한 문장으로 요점 정리해 놓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소설은 속이 빈 강정과 같아서 읽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다. 모든 사람의 기호를 다 맞출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강물처럼 흐르는 글을 쓰는 것은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글 선배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글 속에 내가 들어가면 그 글은 수필이 된단다. 그리고 요즈음엔 한집 건너 한사람씩 수필가가 살고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나무 아깝게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내느냐고도 한다. 나는 이 모든 희롱은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당연한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습작 글을 소리내어 읽어본 적이 있다. 말이 되는 글인지 알아보려고...그리고 가끔씩 글쓰기 동아리의 그 혹독한 비평전쟁도 소문에 듣는다.


다시 하워드 가드너에게로 돌아가서 그는 정신의 비범성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그와 접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강력한 영향을 말한다고 한다.  글을 쓰기시작하고 글로써 세상과 소통을 하려고 하면  그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자극하여 그들의 의식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도록 자극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하는 열망이 있으면 그의 삶속에 동료를 위하여 헌신하는 습관이 먼저 몸에 들어와 있어야 할 것 같다. 만약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 처럼 엄격하고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다리달린 봄처럼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만 있다면 우선 마음을 활짝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늘의 깨달음이다.


너무 두려워 하지 말고, 너무 게으르지도 말자. 게으른데다가 두려움에 떨기까지 하고 있으면 그 글은 제 1독자인  자기 자신도 들여다보지 않을 석고뭉치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제 2의 독자를 찾아내서 그에게 공을 들임으로써 첫 번째 고개를  잘 넘어가도록 해보자.

IP *.24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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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5.25 12:16:56 *.8.27.5
네, 선생님. 쫓기지 않고 쓸 수 있는 여건이나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주부터 시작해서 하루, 이틀씩 벌어서 1주일의 여부 시간을 점진적으로 확보하려고 했는데... 토욜과 일욜을 멍하고 황망하게 보내고 나니... 도루묵이 되어 버렸네요 - -;;

다시 한 번 시간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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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5.25 13:17:53 *.126.231.194
선생님 말씀에 정신 번쩍 듭니다.
아직 적응이 안되어서 그런지, 마음 다 잡기도 어렵고 특히 시간관리를 못해서
늘 쫓기듯이 글을 써내려 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 글에 불만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폭발하고 제자리 잡겠죠. 글보다 마음 다잡는것이 더 어렵네요.
정신차리고 하루하루 정성들여 써봐야 겠습니다. 선생님 이번주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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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5.25 18:36:22 *.12.130.92
좋은 친구분에 제 2독자이시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어찌 선생님께만 해당하는 말일까요.
저희 연구원들 제 3의 독자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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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04:53:04 *.40.227.17
이쁜 좌샘~ .
저만 느끼는게 아닌가봐여..
저는 이제야.. 이제서야.. 갈아탄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리듬에 쪼~께 적응하고 있는 거 같아여.

함께 느끼고.. 호흡하고.. 격려하고.. 용기내라 힘 돋우워주시고..
제가 게을러지는게 눈에 화~악 들어오시믄.. 맴매해 주셔요. 헤헤^^
두렵지 않아여~. 좌샘이 계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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