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9년 5월 26일 20시 39분 등록

제로 돌고래 사진.jpg

정작 치유를 받는 것은 의사다

 

제로를 만나고 왔다는 내 말을 듣고 모닝페이저들은 제로에 대해 많이 궁금해했다. 그래서 우리의 파티 프로그램에 제로의 강의를 한 시간 넣었다. 고대하던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강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기 간증(testimonial)에 가까웠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어요. ‘환자를 치유할 때 정작 치유를 받는 건 의사라고요. 저는 OSP를 시작하면서 그 말을 늘 실감합니다. 저는 상처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아요. 기억할 게 상처 밖에는 없는 저 같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살을 수도 없이 시도하고, 상처 준 이들을 용서할 수 없어 악몽에 시달리던 내가 이렇게 달라진 것처럼요.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는 행복도 없고, 행복이 없으면 성공도 없습니다. 내가 바로 그 증거예요. 나의 경험이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치유의 한 걸음이 되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랍니다.”

 

그녀의 이야기

 

다복하던 그녀의 집에 풍파가 일었다. 그녀가 8살 되던 해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 타고 가던 오토바이가 자동차에 끼어 아버지는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버지는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그녀를 친척집에 보내야했다. 병원 간이 침대 하나에 동생을 끼고 잠을 청해야 하는 엄마는 그녀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것이 고통의 시작이었어요. 원치 않는 손님으로 간 나는 그곳에서 천덕꾸러기였습니다. 그곳 언니들은나는 멍청하다, 나는 바보다, 나는 병신이다, 나는 못생겼다 3시간쯤 외쳐야 겨우 밥을 주었고, 나를 발가벗겨 광에 가두곤 했습니다. 그것보다 더 심한 학대가 이어졌고, 외부에서의 폭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버지는 목까지 기부스를 하고 있었고 당시 30대였던 엄마는 백발 할머니처럼 늙어버렸습니다. 이야기한다고 한들 그분들이 무얼 도와줄 수 있었을까요. 유난히 키가 작은 내가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보니 자존감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분노, 두려움과 함께 수치심만 커졌지요.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과 공포와 내내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퇴원을 했다. 그녀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집 역시 안전한 곳이 되지 못했다. 폭력을 피해 온 곳에 또 다른 폭력이 시작되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다리에 장애를 갖게된 아버지는 신세를 비관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다 급기야 알코올에 중독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수발을 들며 포장마차로 생계까지 꾸려야했다. 그녀의 지난 세월의 상처는 방관되었다.

 

너의 고통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엄마마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덮어둔 것을 들쳐낸다며 야단을 쳤습니다. 부모에게서까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기분,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온통 원망과 고통으로 얼룩이 졌습니다. (불가피했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날 버렸던 부모님, 그런 억울한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둔 사람들, 잘못한 사람들이 심판 당하지 않고 거리를 보란 듯이 활보하는 세상, 오히려 피해자인 나에게그들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대항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아부해야 하는 자신이 싫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집안을 늘 공포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럴 때면 그녀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떨었다. 평온한 때에도 가슴은 늘 쿵쾅거렸다. ‘잊어야지, 용서를 해야지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화장으로 가린 여드름처럼 가리면 가릴수록 상처는 안에서 더 곪았다. 여자여서 그런 고통을 당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때는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단학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고등학생으로 입단을 했던 그녀는 국내 최연소 입단자였다.

 

책 중독

 

친척집에 있을 때부터 그녀에게 유일한 피난처는 책이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면 책으로 달려갔다. 혼자 있을 때도 그랬다.  책은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책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녀는 책에게 물을 수 있었다. 책은 친구였고, 그녀는 책과 대화했다. 학대를 받으면 책을 읽고 상상에 빠지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살고 싶은 욕망이 책을 읽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가책과 공상이 학대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한 말에 누구보다 공감을 한다.

 

대학은 철학과엘 갔다. 노트에죽고 싶다, 혹은 죽이고 싶다라고 반복해서 썼다. 그 때는 철학책과 종교책을 주로 읽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어 역학, 사주, 헤르만 헤세류의 문집, 쇼펜하우어와 니체 류의 철학 책들을 찾아 읽었고 심리학 책들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심지어는 성철 스님의 화두집 같은 불교서적을 탐독하기도 하고 크리스천인 부모님 몰래 절에 다니며 스님의 화두를 받기도 했다.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면 어느 것이든 찾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그녀를 더욱 책 중독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책은 답을 주지 않았다.    

 

학교 생활도 재미가 없었다. 스님들 화두에 빠진 그녀는 교수님 강의에 자꾸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정말 궁금해서 던진 질문인데 교수들은 반항으로 여겼고, 그런 일이 거듭되자 그녀는 학교의 8대 불가사의(일명 또라이)로 등극되어 심리적인 불이익을 당했다.

 

나는 그 때 독일 정신 병리학자 보르빈 반델로가 말한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극단적으로 강한 척하는 나와, 웅크리고 숨어서 고통 받으며 두려움에 떠는 어린 나, 이 양극의 두 자아 사이에서 조울증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그런 장애를 앓는 이들의 특징이죠. 마이클 잭슨, 마릴린 먼로, 에디트 피아프 같은 이들이 그 장애를 앓았다고 해요. 보다시피 그들은 극단적인 경쟁에서 스스로를 다그쳐 성공을 거머쥔 반면, 늘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거죠. 이들은 10명에 하나 꼴로 자살을 한다고 해요.”

 

한국에서는 답을 발견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커졌다. 한국에 살고 싶은 생각은 오래 전부터 사라졌다. 할 수만 있다면 고통을 준 사람들과, 고통 그 자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유학은 그저 핑계였다. 그녀는 다만 떠나는 것이 필요했다.

 

미국으로

 

다행히 아버지가 시작한 사업이 잘 되어서 대학 때는 집안에 여유가 생겼다대한민국을 뜨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무작정  미국으로 갔다이름도 조니야로 바꾸었다. 자신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가지지 않은, 편견없는 땅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조니야는 그녀가 당시 책에서 영향을 받은 세 명의 여자들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었다. 안 리와 아타 로딕, 한비, 이 세 명의 여자들은 그녀가 닮고 싶은 3가지를 각각 표상했다. 그것은 사랑세상을 향한 열정이었다.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의 조안 리에게서는사랑의 용기를 배우고 싶었어요. 당시 한 대학의 총장이던 나이 많은 외국 신부님과 사랑에 빠졌을 때 모두 그녀를 마녀라고 손가락질했대요.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대고 물었다고 해요. 10번을 물어도 자기 가슴은예스라고 대답했다는 그녀의 말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바디샵의 창시자인 아니타 로딕에게서는일의 가치에 대해 배우고 싶었어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열정을 가진 그녀의 일에 대한 자세와 정신이 인상 깊었지요. 세상을 바람처럼 떠도는 한비야에게서는 여행과 세상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구요.”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 어학 연수를 받은 그녀는 샌디에이고로 갔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미국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비자를 연장하는 방편이 있어야 했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는 대신 그녀는 저렴한 학교를 택해 비주얼 아트를 공부했다. 미국에는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다른 정보를 주었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이 햇살처럼 마음 속에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미국까지 따라온 상처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다고 저절로 다른 삶이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해준 첫 사랑

 

조안 리의 용기를 늘 생각하고 있어서였을까요. 그는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스웨덴의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아주 잘생긴 남자였어요. 내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그런 상대였지만 저는 첫 눈에 그에게 빠졌고, 내 인생에 이런 사랑은 단 한 번만 오는 거라는 생각으로 용감하게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결혼까지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스웨덴으로 돌아가 수술을 받았는데, 오겠다는 날 LA 공항에 나가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수술 후 독이 혈액을 타고 신장으로 잘못 들어가 그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를 생각했다.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 수술에서 깨어난 그가 무의식 중에 던진 말이 그녀의 이름 석자조니야였다고 했다. 괴롭힌 것 밖에 없는 그와의 시간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날마다 그의 부모님에게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동생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 너는 네 인생을 살아라’.

 

그 때 나는 제대로 사랑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를 옆에 두기 위해 그를 무척 괴롭혔지요. 질투심에 불타서 그를 늘 의심했구요. 내 열등감이 나를 죽이고 그도 힘들게 한 것이지요. 상처가 있는 사람의 최고 피해자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가 식물인간이 되자 나는 비로소 그가 부족한 나를 참으로 사랑해주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결국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놓아줌으로써 그를 나의 첫 사랑으로 영원히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 제 자신을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것도 그 때입니다. 바로 그 때 저에게 죽음의 경험이 찾아왔습니다.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죽음의 사고

 

그 날은 2003년 10월 31 할로윈 데이였다. 그녀는 시험을 보러 급히 학교에 가느라 미국 샌디에이고의 고속도로를 140킬로로 달리고 있었다. 백 미러를 수정하려다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흔들리는 동안 차가 차선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쏠렸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결과는 360도 회전, 차는 빙글빙글 도로 중앙에서 돌았다. 그 순간 사정거리 안에 달려오는 차가 없었다는 건 하늘의 특별한 보호였다. 그녀는 아직 죽기에는 너무 억울한 사람이란 걸 하늘도 인정해준 것일까.

 

빙글빙글 도는 차 안에서 죽음을 감지한 순간, 갑자기 시간이 늘어지기 시작했어요. 물리적으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슬로우 모션 비디오가 작동하는 것처럼 나의 지난 삶이 집약적으로 그 순간 다 지나갔어요. 가장 안타깝고 가장 가슴 아픈 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내 인생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창 너머로 샌디에이고의 푸른 하늘이 보였어요. 억울했어요. 이 세상은 저렇게 완벽한데 왜 나는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을까. ‘당신의 딸로 태어나 내 인생이 비참했다고 엄마에게 악다구니하던 모습도 떠올랐어요. 엄마에게 속죄하지 않으면 죽어서 귀신으로 떠돌 것 같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 사고로 인해 그녀는 죽음이 아닌과 직면하게 되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그녀는 알았다. 진정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단 한 번도 행복하게 살아보지 못한 삶이라는 것을. 그 순간 그녀의 입술에 간절한 기도가 날아들었다. ‘살아 남는다면 이제는 저 파란 하늘을 잊지 않을 것이며,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진정 내 가슴이 뛰는 삶을 살겠노라.

 

치유-‘를 찾아서

 

신이 허락한 제 2의 기회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멋지게 성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복수하겠다던 집념도 내려놓았다. 30년 가까이 방치한 상처에 메스를 들이대기로 했다. 엄마는내가 널 위해 어떻게 살았는데하는 말로 늘 그녀에게 족쇄를 채웠고, 그녀는 그런 엄마를 비난하면서도 엄마가 잡은 손을 놓치 못했었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는자신으로홀로 서기로 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고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그녀는 기꺼이 여행길에 올랐다.

 

학교를 통해 소개받은 치료 센터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는 동안 의사가 4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이름있는 닥터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권위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추천하는 약물치료나 연기 테라피 같은 것으로는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치유가 안되는 건가. 죽음까지 경험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하는데, 나는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인가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자꾸 의사를 바꾸다 보니 나중에는 임신한 동양계 레지던트 닥터 마린이 제게 배정되었지요.”

 

그런데 마린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다. 마린은 그녀의 손을 먼저 잡았다.

조니야, 내 얼굴 좀 볼래요?”

“?”

그 동안 당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범죄자들처럼 죄를 짓지 않은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아요?”

“?”

당신은 치유받을 수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니까, 당신의 고통은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순간 조니야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마린은 다른 의사들처럼 거창한 이름의 치유법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니야를 깊이 이해했고,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으로 조니야 옆에 있어주었다.

조니야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조니야 자신이예요.”

마린이 잡은 손에서, 그녀의 따뜻한 눈길에서 처음으로 단어로가 아니라 실체로서의 사랑이 조니야의 가슴에 내려 앉았다.  

 

내가 지금 하는 OSP를 두고 관련 학과의 박사학위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걸 강의할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 어디 파니, 융파니, 프로이드파니?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럼 나는당신들은 가진 학위 가지고 환자들을 진실로 치유했냐고 묻습니다.”

 

그럼 이론적인 백그라운드가 없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지요? 내가 묻자 제로는 대답했다. ‘진실이요. 환자들은 치유를 원하지 권위, , 이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예요. 치유의 핵심은 언제나 진실이예요.’

 

17개국 여행과 20개의 직업

 

치유를 지속하면서 그녀는 한편으로 차 사고 당시 자신에게 약속했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가슴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 먼저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시도해보고 싶은 직업 스무 가지도 정했다. 먼저 서부에서 동부로 미국 전역 여행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동안 모은 돈을 다 쓸어 부었지만, ‘그 돈을 다 쓰고 나면 그 다음엔 어떡하지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4개월 동안 미국을 여행한 후에는 호주로 날아가 1년을 지냈다. 워킹 비자로 농장에서도 일했고, 유명 휴양지 호텔 중국 레스토랑에서도 일했다. 두바이에 진출한 한국 건축회사의 지사장으로도 반 년을 일했다. 두바이에 머무는 동안 오만, 카타르, 아부다비 등 주변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중국에도 잠시 머물렀고 뉴질랜드에서는 양털 영업에 6개월 동안 간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인도, 홍콩 등지를 여행하였다.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는다는 애초의 약속을 잘 지켰다.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은 두려움만 이길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과 돈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은 언제나 열린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나는 야생 돌고래와 수영했을 때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호주에 머물 당시 야생 돌고래와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그곳엘 갔습니다. 그곳은 야생 돌고래의 천국으로 불리는, 퍼스 남부의 락킹햄이었습니다.”


락킹햄에서는
150불을 주면 반나절 동안 야생 돌고래와 수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야생 돌고래 특성상 강제로 수영을 할 수 없고, 돌고래가 나타나면 그 곳으로 배를 타고 가 돌고래가 원하는 만큼만 수영을 즐길 수 있다. 그들과의 수영이 특별한 것은 바로 그들이 뿜어내는 행복한 에너지 때문이다. 경험치 않고선 그 행복과 가슴 뛰는 존재감을 알기 힘들다. 지금도 그녀 안에는 야생 돌고래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들과 수영하던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신비의 약초를 먹은 것처럼 그녀의 가슴은 행복의 물결로 가득찬다. 락킹햄에서 그녀가 맨 처음 들은 말은 "Hey buddy, you are the first Korean" 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마는 적극성은 치유 이후 그녀가 누리는 가장 멋진 삶의 선물이다 


지구의 마지막 천국 몰디브

 

마지막으로 그녀가 머문 곳은 몰디브였다. 50년 후면 사라질, 지구의 마지막 남은 천국이라고 불리는 몰디브, 그곳에 가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치유를 위해 그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몰디브에서는 한 리조트 호텔에서 한국 손님 영업 담당 매니저로, VIP 가이드로 6개월간 일을 했다.

 

“‘사랑하라 단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내가 좋아하는 말이예요. 몰디브의 바다는 왠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현실을 잊게 해줄 것 같더라구요. 몰디브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너무 투명해서,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서핑 하기에도 아까운, 그런 바다는 몰디브 밖에 없을 거예요. 옷을 입고라도 당장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답니다. 떠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거기서 살았었다는 게 꿈 같이 느껴져요.”

 

그녀가 좋아하는 바다, 돌고래, 숙식이 제공되는 최고의 호텔, 나쁘지 않은 급여, 먹고 마시고 즐기기에 좋은 천혜의 환경, 그런데도 그녀는 몰디브에서 온전히 행복하지가 않았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게 되는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 느끼는 수동적 행복감과,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는 능동적 행복감. 몰디브에 있으면서 내가 느끼는 건 전자의 행복이지 후자의 행복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내면에서 소리가 들려왔지요. 나답게 하는 가치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나는 영영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가 진실로 가치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아름답고 자유로운 곳에 있어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소리 말이죠.”

 

그래서 그녀는 OSP와 함께( http://www.omegasuccess.biz )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아픔만 주던 땅으로.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 그리고 내장된 상처의 기억들로 불행했던 청소년 시절, 손목에 칼을 여러 번 그은 것은 그래도 살고 싶어서였고, 누군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길 바래서였다.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며 이름까지 바꿔가며 입술을 앙당 물고 떠났던 조국, 이제 그녀는 어디로도 도망칠 이유가 없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상처를 주었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멘토였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제로라는 새 이름으로. 그녀의 영원한 마음의 천국은 처음부터 몰디브가 아니라 한국이었던 것이다.

 

상처를 감싸안으며

 

진정한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30년 동안 증오하느라 삶의 에너지를 다 빼앗겼습니다. 용서하고 나니 진정으로 자기를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미워하는데 쓰던 에너지를 자신의 성장을 위해 씁니다. 증오와 분노는 더 이상 내가 밥이 아니라는 걸 알고 떠납니다. 내면이 치유가 안되면 주변에 건강하고 밝은 사람을 불러들이지 못합니다. 이미 프로그램화된 모든 것을 깨서 제로로 만들지 않으면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살게 됩니다.”

 

그녀는 지난 날의 고통들을 굳이 미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고통들은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했다. 지금도 상채기가 완전히 아문 건 아니다. 그녀는 아직도 아프다. 과거의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이전의 분노와 고통이 돌아올 때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기억에 불과한 것임을 기억하려 한다. 이제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 자신을 연민하듯 그분들도 연민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분들을 받아들인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분들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모이기 이전에 그 분들도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녀가 지내는 집은 호숫가에서 좀 떨어진 산자락 외딴 집이다. 내가 물었다.

외롭지 않아요?”

전혀요.”

정말요?”

외롭다는 건 공감, 소통을 원한다는 거잖아요. 나에게는 모든 대상(자연까지)이 공감의 상대거든요.”

~.”

자신의 존재감이 없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종종 사랑이란 이데아를 사랑하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기대 없이, 특정한 결과들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다.

기대는 인간이 겪는 불행의 가장 큰 원천이며, 인간을 신에게서 떼내는 것이다.

네 신적 공간에서 살도록 하라. 그러면 모든 사건이 다 축복이 되리니.

                                                                                                      - 닐 도널드 월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0030050.JPG

인터뷰 노트

 

지난 두 주 동안 나는 38선 경계지역에 있는 그녀의 집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한 번은 인터뷰어로, 한 번은 모닝페이지 5기 클로징 파티를 위해 10여명의 모닝페이저들과 함께였다. 종로에서 시작되는 6번 도로를 달리다 구리에서 46번 국도를 타면 북한강변을 따라 춘천까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춘천에서 화천 방향의 5번 국도를 타면 구비구비 접힌 산 자락들 사이로 믿지 못할 춘천댐의 비경이 펼쳐진다. 38선을 알리는 돌 비석에 다다르면 원평리 호수낚시터로 가는 좁은 길이 오른쪽으로 나있다. 달리는 내내 호숫가 저 편의 아름다운 집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동경하게 되는데,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낮은 탄성이 나온다.

 

첫 방문에는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바삭바삭 맛있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로 투명하게 드러난 호수의 물빛을 즐기며 달렸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논에서 개구리들이 심하게 울어댔다. 한 마리가 아니고 수 십 마리의 개구리 떼들이 합창을 했다. 어두운 시골 길에 차를 세우고 그들의 합창 소리를 들었다. 어둠에 잠긴 산들의 실루엣 사이로 예쁜 달이 떠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마구 달려드는 기 막힌 순간이었다.

 

지난 주말 두 번째 방문에서는 노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함께 느닷없이 내린 비로 호수는 온통 물안개로 젖어있었다. 나무들은 더 싱싱한 초록으로 살아났지만 호수는 신비를 품고 침묵하고 있었다. 제로의 집에 도착한 우리들은 뒷산 계곡에 먼저 올랐다가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오후의 호숫가를 느리게 걸었다. 걷는 동안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부지갱이 나물을 뜯었다. 그리고 저녁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의 OSP 강의를 한 시간 들었다. 아픈 과거를 공개하는 그녀의 용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위로와 도전을 받았다.

 

개인 공간을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제로는 손님들을 어떻게 맞아야하는지 우리를 만나기 전에는 조금 불안한 모습이었으나,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순간 호수가 안개를 받아들이듯 편안하게 우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콜라주, 비전보드, 연극, 물건 경매, 책 교환, 자신에게 주는 편지, 칭찬샤워, 12주간 소감나누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그녀는 이렇게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모임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그녀의 강아지사랑이역시 우리들의 좋은 에너지에 취했는지, 우리 무리 속에 섞여 내내 하나가 되었다.

 

인연은 그렇게 인연을 낳는다.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허상이 아닌 날들을 위해 우리는 스스로가 더 아름다운 사람들로 성장해갈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IP *.51.218.19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2 신발끈을 다시 매고 [5] 숙인 2009.06.01 3787
1031 펜싱 ; 코치이야기 줄거리 잡기 [5] 백산 2009.06.01 4006
1030 [9] <난중일기> - 선조의 붉은 편지 [8] 수희향 2009.05.31 3529
1029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 [3] 희산 장성우 2009.05.31 3555
1028 열정의 화신 [3] 書元 이승호 2009.05.31 3574
1027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산 2009.05.31 3658
1026 디자인이 역사를 바꾼다. [1] 혁산 2009.05.31 4223
1025 폭력의, 폭력에 의한, 폭력을 위한 영화 <똥파리> 정재엽 2009.05.28 4189
» 인터뷰14:OSP마스터'제로'-진정으로 살아보기 전에는 죽지 말아야 한다 file 단경(소은) 2009.05.26 6130
1023 [40] 진짜 자기계발은 무엇일까? [5] 최코치 2009.05.25 7589
1022 창조적으로 살아보기. [4] 혁산 2009.05.25 4091
1021 칼럼 7 - 제 2 의 독자를 찾아서 [4] 범해 좌경숙 2009.05.25 3597
1020 40대의 청년, 권민 편집장을 인터뷰하다 [13] 숙인 2009.05.25 9368
1019 책 읽기에 대한 열정 [9] 혜향 2009.05.25 3523
1018 창조자의 초상(Exemplary Creator)에서 배운 것들 [4] 김홍영 2009.05.25 3328
1017 창조적 개념의 현대펜싱 [4] 백산 2009.05.25 3654
1016 [8] <열정과 기질>을 읽고- "먼 별 샤먼 완결편" [8] 수희향 2009.05.25 3538
1015 [7] ‘맹모삼천지교’가 더 현명한 게 아닐까? [4] 정야 2009.05.25 3536
1014 일주일간의 파우스트 계약이행 보고 [5] 서원 이승호 2009.05.25 3548
1013 바보를 기리며... file [5] 희산 장성우 2009.05.24 3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