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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31일 22시 48분 등록

 

“이순신의 죽음을 들은 우리 군사와 명 나라 군사는 각 진영이 연이어 통곡하며 마치 자기 어버이를 잃은 듯했다. 영구가 지나는 곳마다 백성들이 곳곳에 제물을 차려 놓았다가 상여를 붙잡고 통곡하며 ‘공께서 우리를 살리셨는데 지금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신단 말입니까?’ 이렇게 울부짖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모여든 군중으로 길이 막혀 상여는 가지 못하게 되고 길 가는 사람들도 눈물을 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중에서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최소 50만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뤄, 마지막 길을 떠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면을 염원했다. 노 전 대통령 운구차가 경복궁에 도착한 오전 10시50분께부터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광화문 4거리 일대를 장악한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거쳐 서울역 일대까지를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메웠다. 양 옆에 도열한 시민들은 운구 차량이 지나가자 오열과 함께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외치며 안타까워했다.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기 싫은 듯 영구차를 손으로 만졌고 이에 차량은 거북이 걸음으로 이동해야 했다.”

- <Views&News>, 5월 29일 기사 중에서

 

지난 주에는 자신의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다간, 가장 인간적인 영웅 두 사람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를 통해 만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그의 영웅적인 업적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어머님에 대한 효심과 가족에 대한 걱정, 나라일에 대한 근심, 부하들에 대한 신뢰와 불만, 함량 미달의 장수들에 대한 분노 등 그의 인간적인 심상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일신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을 절대 거르지 않는 그의 집요함과 사전에 꼼꼼히 챙기고 계획하는 그의 준비성이다. 전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백성을 살피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장수와 군사를 독려하는 그의 모습에서 의미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지난 주 내내 떠난 그를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했다. 생각은 많지만 표현하기는 어려운 그에 관한 많은 단상들, 그의 행적을 쫓아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살펴 보다가 ‘서프라이즈(http://www.seoprise.com)’ 에 올라온 고려대 박경신 교수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의 생의 의미를 짧게 잘 정리한 것 같아 여기에 한 부분을 옮겨 본다 :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그 이름도 후세에 전하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에 스러져가는 동안 일제와 결탁하여 치부한 자들이 반민특위의 위기를 돌파하고 다시 군사독재시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잡았다. 그 뒤틀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옳은 것'을 자신 있게 주장할 용기를 잃어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용기의 부재를 성숙함으로, 조직성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타인의 말에 반대를 하는 것은 너무 쉽게 '빡빡함'으로, 조금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에 대한 반대는 '버릇없음'으로 여겨졌다. 누구나 '법을 지키면 손해 본다'고 수군거리면서도 사법제도를 바꾸려다 '손해'를 보려는 사람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법을 회피하는 기술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왕따'를 무릅쓰고 고집스럽게 추구하였다. 누구도 3당 합당 때의 그처럼 수많은 동료들을 버리고 신념을 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하던 시절의 노무현을 서울대 출신 386 운동가들마저도 왕따 시킬 때 노무현은 '친구들을 사귀려고' 원칙을 굽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대통령 취임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서 흔치 않은 '사필귀정'을 실현해 보였고, 자신의 취임 일성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서 가려던 길을 갔다. 그 길은 노 대통령 영결식의 와중에도 경영권 편법 상속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사회의 '주류' 그리고 법원이 방패가 되고 검찰이 창이 되어 지켜주던 '주류'에 대한 '거부'의 길이었다. 예상치 못한 개인적 비리 의혹으로 자신이 가려던 길이 막히자 그는 생명을 내던지며 그 길을 뚫었다.”

 

지난 주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화두는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치열하게 살도록 만들었던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이어받는 길일까?’ 하는 것이었다. 두 영웅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그들의 삶은 그들이 정한 ‘가치의 치열한 추구’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새삼 가치관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삶의 열정을 어떤 가치 있는 것에 쏟을 것이냐가 먼저 정확히 다시 한 번 정립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삶을 돌아 본다. 나는 영웅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도, 누군가에게 영웅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이 살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번 연구원 1차 오프수업 때의 ‘나의 장례식’ 장면이 떠 오른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돈이나 승진 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을 더 많이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정했을 때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더욱 더 사랑해 주지 못 했던 가족과 친구에 대한 미안함,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못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휴머니즘과 공익… 우리는 사적인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모두의 이익을 조금 더 배려하고 우선시 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조금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을 사랑하고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 해 주는 것, 공동의 가치를 위해 나의 개인적인 이익을 조금 덜 추구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바보’의 삶일 것이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MBC의 신경민 앵커는 뉴스 끝 무렵에 그날 하루의 중요 사건의 시사점을 짧은 한 마디 멘트로 간결히 전달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었다. 다음은 <시네21> 김혜리 편집위원의 MBC 신경민 앵커와의 인터뷰 내용 중 한 토막이다.

 

= “스스로 젊은 날의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을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일 일관성을 지켰다면 지탱해 준 힘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김혜리)

“글쎄요. 그저 나를 계발하고 능력대로 평가 받고 싶었어요. 비루하게 살지는 않겠다는 자존심이 지탱해 준 것은 아닐까요?” (신경민)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 나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영웅들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한 번 살펴 봐야 할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인 업적 뒤에 담겨 있는 인간적인 면모와 노무현 대통령의 바보 같은 삶의 뒤에 담겨있는 영웅적인 투쟁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가 배우고 취해야 할 첫번째 마음가짐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로이 나만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 있는 삶의 목표를 돌아보고,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으로 그것들을 올곧게 추구하는 것, 그것이 그 분들의 삶의 진정성과 치열함을 나의 삶에도 투영해 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똑바로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해 볼 때이다.

IP *.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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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1:42:01 *.204.150.153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삶'에 포커스를 맞춘 삶.
참으로 지당한 말인 것 같아.

출발선부터 방향을 잘못 잡으면 삶이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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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희
2009.06.03 07:12:45 *.111.241.42
'비루하게'라는 비유가 좋아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라고 나오네.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 참 와 닿는 표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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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01:26:14 *.40.227.17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 =  희산 오라버니 ^^

그럼.. 희산 언니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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