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숙인
  • 조회 수 3787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09년 6월 1일 01시 20분 등록

마음이 무거울 때나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키가 작아 평소 운동화를 즐겨 신지 않는 나이지만 그때만큼은 신발끈을 꽉 매고 집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생각의 홍수가 밀물처럼 나를 다시 적실까 도망자와 같이 전속력으로 달린다.

평소 잘 뛰던 사람도 아니고 내 멋대로 속도를 내어 팔을 크게 휘두르며 달리다 보니 몸이 이내 놀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입 안에서 단내가 나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머리 속의 괴로움이 몸의 괴로움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그 복잡했던 실타래들이 실상을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바람이 달래주며 '힘내'라고 속삭여준다.

 

처음에는 무작정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뛰는 속도나 폼이 제법 규칙적이게 된다. 그리고 나면 '뛴다'라는 행위가 숨쉬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마치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팔을 휘두르며 땅을 내딛는다.

달리다 보면 내게 심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닫게 된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맞춰 비트박자를 맞추는 양 리듬감을 타며 달린다. 계속 달리다 보면 심장이 내 몸 이곳 저곳으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손 끝도 발 끝에도 심장이 달린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내 온 몸이 하나의 거대한 심장이 된 것 같다. 오랜만에 깨어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내 온 몸에서 들리는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그리워 그렇게 내달리나 보다.

내 심장이 이렇게 힘차게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그렇게 내달리나 보다.

 

플레이[PLAY] 버튼을 누른 채 무난하게 평이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종종 2배속 4배속으로 일이 진행될 때가 있다. 과열된 일상을 바라보며 삶의 피로를 느낄 때 리셋[RESET]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도 있으나, 삶에는 리셋이 없고 되돌려감기[REW]가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그럴 때면 잠시 일시정지[PAUSE]를 누르고 그렇게 일상과 떨어진 채 나를 뛰게 한다. 잊혀진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바람의 격려를 듣기 위해 나를 뛰게 한다.

 

집밖을 떠나 달리기 시작할 때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달린다. 그러나 떠난다 라는 행위는 결국을 잘 돌아오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올 때는 걸음걸이는 떠날 때보다 제법 경쾌하다. 답을 못 찾고 되돌아올 때도 있지만 내 몸이 여전히 뜨겁고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운동화를 벗고 먼지를 털어 신발장에 다시 고이 넣어둔다. '내가 너랑 조금 더 친해져야 할 것 같다' 라고 눈인사를 하며 '고맙다'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음날 아침 온 몸이 뻑적지근하니 근육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종아리를 손으로 주무르며 나는 내 일상이 다시 자동으로 플레이[PLAY]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많이 달려야겠다. 내 심장소리를 더 자주 들어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트박스 소리를 언제나 잊지 말아야겠다.

IP *.145.58.201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06.01 09:19:57 *.251.224.83
자연스럽고 편안한 글이 편안하게 읽혀서 좋네요.
때로 의식보다 몸의 반응이 빠른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마치 유체이탈처럼 뚝 떨어져서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껴보는 것이 재미있더라구요, 나도.^^
프로필 이미지
2009.06.01 10:37:27 *.246.196.63
명석 선배님~ 언제 한번 우리 같이 뛰어볼까요?^^
변경연 식구 마라톤 출전~ 헤헤
프로필 이미지
2009.06.01 12:15:15 *.204.150.153
필요하면 신발 끈을 고쳐 맬 줄 아는 쎄이.
그게 우리 쎄이의 가장 좋은 면이라 이 언냐는 믿고 있어.
쎄이야, 혼자 뛰기 심심하면 언냐, 오빠들 불러엉~ ^^
프로필 이미지
2009.06.02 08:00:12 *.246.196.63
하핫 그럼요 ^____^
언제나 땡큐 베리 마취!
프로필 이미지
2009.06.05 02:12:52 *.40.227.17
쎄이~  내도 달리기 좋아헌다~

생각이 많을 땐.. 몸을 심허게? 써?주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듯..

쎄이는 알고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신발끈을 다시 매고 [5] 숙인 2009.06.01 3787
1031 펜싱 ; 코치이야기 줄거리 잡기 [5] 백산 2009.06.01 4006
1030 [9] <난중일기> - 선조의 붉은 편지 [8] 수희향 2009.05.31 3529
1029 비루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 [3] 희산 장성우 2009.05.31 3555
1028 열정의 화신 [3] 書元 이승호 2009.05.31 3576
1027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산 2009.05.31 3659
1026 디자인이 역사를 바꾼다. [1] 혁산 2009.05.31 4225
1025 폭력의, 폭력에 의한, 폭력을 위한 영화 <똥파리> 정재엽 2009.05.28 4190
1024 인터뷰14:OSP마스터'제로'-진정으로 살아보기 전에는 죽지 말아야 한다 file 단경(소은) 2009.05.26 6131
1023 [40] 진짜 자기계발은 무엇일까? [5] 최코치 2009.05.25 7590
1022 창조적으로 살아보기. [4] 혁산 2009.05.25 4092
1021 칼럼 7 - 제 2 의 독자를 찾아서 [4] 범해 좌경숙 2009.05.25 3597
1020 40대의 청년, 권민 편집장을 인터뷰하다 [13] 숙인 2009.05.25 9377
1019 책 읽기에 대한 열정 [9] 혜향 2009.05.25 3524
1018 창조자의 초상(Exemplary Creator)에서 배운 것들 [4] 김홍영 2009.05.25 3330
1017 창조적 개념의 현대펜싱 [4] 백산 2009.05.25 3657
1016 [8] <열정과 기질>을 읽고- "먼 별 샤먼 완결편" [8] 수희향 2009.05.25 3540
1015 [7] ‘맹모삼천지교’가 더 현명한 게 아닐까? [4] 정야 2009.05.25 3536
1014 일주일간의 파우스트 계약이행 보고 [5] 서원 이승호 2009.05.25 3549
1013 바보를 기리며... file [5] 희산 장성우 2009.05.24 3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