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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일 06시 26분 등록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결혼과 신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큰 사건을 통해 인생의 다른 면도 더불어 배우게 되는 것이 순리인가 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전직 대통령이 운명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삼우제를 치른 지금까지도 나는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 중 ‘부정’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고인이 죽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 같아서 믿을 수 없는 거다. 이순신에 대한 자료조사 중에도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을 가능성에 논란이 있다는 대목에 눈길이 더 갔다. 그렇게 내게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척 해온 것이지만 가장 깊은 아픔을 건드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몇 개월 간 내가 지독한 무기력증을 앓아 왔다는 자각이 드디어 들었다. 그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죽음, 멀리는 아버지의 상실에 큰 원인을 두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지난해 말 결혼 날짜를 잡고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아버지 고향에 내려갔다. 큰아버지는 한국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형제였다. 그곳에 가서야 그로부터 넉 달 전, 미국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에게 연락해도 받지 않았다면서. 황망했다. 그 때 나는 프랑스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 들어 있었던가? 미국에 언제 들어가야 할 지 몰라서 우리 자매의 미국비자 기간은 항상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지난 100여 일, 나는 무얼 하며 살았나 싶었다. 아픔에 대한 나의 촉수가 유달리 예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 잔인했다.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기존의 나답지 않은 모습에 스스로 흠칫 놀라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간 지나치게 솟아올랐던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이제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꽤 흘러 이렇게 또렷이 느껴지지만, 그 동안 나는 제대로 글을 쓸 수도, 무얼 할 수도 없는 정말 이상한 시간을 지내 왔다. 학교를 슬그머니 그만 나가며 논문 쓰기를 접은 것도, 결혼준비나 저작을 핑계로 직장을 알아보지 않은 것도 모두 이 무기력증 때문은 아니었던가. 글을 쓴 것도 오직 강제된 경우였는데, 논문에는 내 목소리가 한 줄도 나오지 않았고, (이젠 다 지워졌지만) 여기 올린 칼럼과 독후감도 나답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내가 인간관계를 거의 정리하다시피 하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다시 세상을 미워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인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분노와 무거운 우울감, 뭔가 답답한 마음이 계속 풀리지 않던 원인을 이제 찾아낸 것 같다.

반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은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 너무 섣부르다. 해외 경제학저널인가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도 불행도 곧 정상궤도(항상심)로 돌아오려는 회귀 성향을 가지며, 충격이 크더라도 길어야 2년이라고 하는데, 결혼이라는 행복 사건과 섞여 좀 더 빨리 제대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렇게 돌아온 내가 그 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IP *.10.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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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06.04 12:33:40 *.248.91.49
글로써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우리 신 아인!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려고 애쓰는 자기 혁명의 동지들!

"나다움"은 수많은 "너다움"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면
혁명적 동지에서 명단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이 날까?

내가 아인의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꿋꿋한 전사의 모습이 항시 살아있어서 아름답지만..
그 길에서 울고있을 어린아인은 어디서 위로를 받을까....안스럽기도 해요.

아인 신랑씨.... 우리 아인일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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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02:22:20 *.40.227.17
좌샘께서 아인의 마음을 잘 살펴 주시니..

저희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다시 태어난 아인을 맞이하면 되겠네요 ~

그지~ 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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