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김홍영
  • 조회 수 3820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9년 6월 1일 11시 54분 등록
 

이순신과 노무현의 죽음


세상에는 선악지향적인 사람과 손익지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선악지향적인 사람은 의사결정의 기준이 손익보다 옳고 그름에 있습니다. 옳은 일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손익지향적인 사람의 행동 동기는 선악보다 손익에 있습니다. 그것도 이기적인 손익에 의사결정이 좌우됩니다. 물론 겉으론 공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개인적인 손익이 우선입니다. 이들에겐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먹히지 않습니다.


노무현이 추구했던 정치적 이상, 그리고 그가 바라던 사회적 가치는 분명 진보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기보다 서민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자신의 선한 의지를 굽히려 하지 않았고 평범한 말투와 인간적인 약점투성이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려는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엄청난 비난과 무시를 당했습니다. 소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득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손익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 뻔뻔한 인물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손해 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묵묵히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손익중심의 인물들이 그 동 안 저지를 비리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이 끝가지 지키려 했던 명예가 무너지고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자 수치심과 죄책감에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불명예스런 일들이 발생했을 때 할복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자신에 대한 복수, 즉 자살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가져옵니다.


역사 속에서 죽음을 통해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한 수많은 인물들을 보게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임금의 칼에 죽느니 적장의 칼에 죽겠다던 이순신이 그랬고, 무장해제한 채 영국군에 맞섰던 간디도 그랬습니다. 비열하고도 폭압적인 권력 앞에 구차한 변명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난중일기’속에서 이순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아픔, 그리고 그와 고락을 나누었던 군사들에 대한 애정과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순신 또한 선악지향적 인물에 속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에 대한 충성과 백성들의 안정적인 생활이었고 자신도 그 백성들의 생활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적을 물리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으며 장수인 자신에게 누구의 격려나 보상이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손익지향적인 보수 세력들은 그를 평범한 인간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다. 부패한 정권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썩은 정권은 수많은 공을 세운 장군을 전쟁 중에 옥에 가두고 사형을 명하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옥에서 풀려났지만 그는 슬펐을 것입니다. 게다가 옥문을 나온 지 13일 후 그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평생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가 처음으로 신세 한탄을 적은 때도 바로 이 때였습니다. 넉 달 후, 그는 슬픔을 딛고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또 하나의 불행이 찾아옵니다. 그의 아들 면(勉)의 전사 소식이 그것입니다. 아들이 죽은 후 한 달 뒤 매정한 조정은 명량해전을 이끈 이순신에게 초유문(招諭文)과 면사첩(免死帖)을 보내지만 이순신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순신은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조정 대신들에 대한 원망대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아직 적에게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이순신 그 자신을 위해 당당하게 싸움터로 나갈 생각만을 하였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이러한 모습은 노무현대통령의 죽음에 아쉬움을 갖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운명이 주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향해 삶을 불태운 영웅들이었음을 추억하게 된다.




IP *.10.109.227

프로필 이미지
김지현
2009.06.01 15:27:48 *.218.12.47
원균 같은 사람이 득세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가 봅니다.
뜻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오히려 탄압받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형산
2009.06.01 15:56:11 *.246.146.19
평소의 모습답지 않네. 그래서 더 좋은 글로 느껴지는 것인가 아니면 나도 동감하는 탓인가?
긴~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주일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다. 우리 열심히 살아야지?
프로필 이미지
정재엽
2009.06.01 17:00:18 *.165.140.205
과연 노무현의 죽음과 이순신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의 죽음을 자결을 통해서 본인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다고 보시는지요?
역사가 모든것을 판단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히.
글쎄요..
그의 죽음이 오히려 과오를 지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면.. 
그리고 설사 그런 의도가 아니였더라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용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보이는 군요.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이 그정도의 분열은 분명히 예견했을 듯 싶네요. 그저 역사속의 인물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문제인듯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09.06.05 02:25:52 *.40.227.17
홍영 오라버니~ 까페 들어오셔여~
반드시!  꼭! 이여~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2 <크로아티아 여행을 기다리며 1> [4] 수희향 2009.06.10 3150
1051 헬스장에서 배우는 삶의 원칙들 외전(外傳) - 훌라후프편 file [8] 양재우 2009.06.10 9465
1050 헬스장에서 배우는 삶의 원칙들 [3] 양재우 2009.06.10 3454
1049 삶은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file [8] 한명석 2009.06.09 3084
1048 [10] <백범일지>를 읽고 - [안두희의 검은 편지] [4] 수희향 2009.06.08 3104
1047 나의 길, 나의 역사, 나의 소원 [3] 혜향 2009.06.08 3641
1046 '너는 어느 편이냐?' [4] 예원 2009.06.08 2858
104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file [1] 숙인 2009.06.08 4460
1044 높은 문화의 힘 [1] 김홍영 2009.06.08 3406
1043 칼럼 9 - 관음죽 분을 갈다. [3] 범해 좌경숙 2009.06.08 3993
1042 나의 펜싱의 정체성 [4] 백산 2009.06.08 3344
1041 의리를 아는 자 [2] 희산 장성우 2009.06.07 2924
1040 독립운동가의 자손 [3] 書元 이승호 2009.06.07 4069
1039 디자인식스의 자주성 확립을 향하여 [3] 혁산 2009.06.07 3150
1038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외모(外貌)로 인한 소심(小心) file [1] 양재우 2009.06.05 5734
1037 칼럼 8 - 이순신의 사람들 [11] 범해 좌경숙 2009.06.02 3610
1036 [8]이순신의 후원자 서애 류성룡 file [4] 정야 류춘희 2009.06.02 8904
» 이순신과 노무현의 죽음 [4] 김홍영 2009.06.01 3820
1034 삶의 전쟁터, 동대문 원단시장 [2] 혜향 2009.06.01 7155
1033 남은 자의 대처법 [2] 예원 2009.06.01 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