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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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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5일 11시 21분 등록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는 말이 있다. 해석하자면 모든 것(一切)은 오로지(唯) 마음이 만들어낸다(心造)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그 유래를 살펴보자면, 이 단어는 불교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인《화엄경(華嚴經) - 대승불교 초기의 중요한 경전》의 중심 사상으로, 아래 문장에서 인용되었다고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즉,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의미라 하겠다. 위 문장은 《화엄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송(偈頌)으로, 삼세불은 과거불·현재불·미래불을 가리킨다. 이 일체유심조의 경계는 모든 것이 마음으로 통찰해 보이는 경계로, 마음을 통해 생명이 충만함을 깨닫는 경계이다. 곧 유심은 절대 진리인 참 마음(眞如)과 중생의 마음(妄心)을 포괄하는 것으로, 일심(一心)과 같은 뜻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이 연관되어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로, 바로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대사(元曉大師)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원효와 해골바가지.jpg


원효는 661년(문무왕 1년)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자게 된다. 그리고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날이 새어서 깨어 보니 잠결에 그토록 시원하고 맛있게 마셨던 물이 끔찍한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대오각성(大悟覺醒)하며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으로 읊었다고 한다.


"心生種種法生                마음이 생(일어나는) 하는 까닭에 여러가지 법이 생기고

 心滅龕憤不二                마음이 멸하면 감과 분 이 다르지 않네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앎에 기초한다

 心外無法 胡用別求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그 후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신라로 돌아와 스스로 수양하여 높은 경지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해 보자면, 쉬울 수도 또는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아니 바꾸어 생각해보면 ‘쉽다, 어렵다’는 말 또한 우리의 마음(생각)에서 비롯된 단어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 정의를 우리 삶에 견주어 본다고 하면 마음을 지배하는 자기 자신을 지배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네 모든 인생 흥망사가 우리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요즈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외모 제일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듯 하다. 얼굴은 V라인, 몸매는 S라인은 기본이요, 초코렛 복근에 심지어는 쇄골미인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젊은 여자의 경우 성격 못된 것은 용서해도 얼굴 못생긴 것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있다. 비만은 물론 보기 좋은 통통함도 다이어트 대상으로, 말라깽이 정도가 되어야만 날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니 대한민국 웬만한 여성은 모두 다이어트 대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외모로 인한 콤플렉스는 소심의 중대한 원인이 되곤 한다. 특히 이성을 대할 때 나타나는 두려움, 떨림의 증세는 부끄러움, 자신감 상실, 대인 기피증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디 이성뿐이랴. 사회 생활을 할 때 있어서도 상사 혹은 동료 와의 인간 관계에 문제점을 드러내게 되고 이러한 문제점은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몰고 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외모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굳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외모는 자신의 커버(Cover)와 같은 것으로,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일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외모로 인한 소심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로 접어들게 되면 모든 청소년들(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다고 하니 청소년이란 표현은 다소 과거적 표현일 수도 있겠다)은 전과 달리 이성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외모에도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나 또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전 스스럼없이 같이 잘 놀던 여자아이들이 웬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특히 육체적 변화가 눈에 도드라져 보였다.


그 한 예로 나보다 한두 살정도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선머슴 같은 성격으로 덜렁거리며 조심성없이 뛰어 놀기만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그러다 보니 옷차림도 남자 아이들과 비슷했었다. 특히 여름철 같은 경우는 거의 어린 남자아이들이 입는 것처럼 나시 속옷(런닝에 가까운)을 입고 놀곤 했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다보니 그러려니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아이의 가슴이 봉긋 나오기 시작하며 내 눈이 힐끔힐끔 그 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짐과 동시에 그 아이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도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그런 나의 태도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상관않은 채 여전히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놀곤 했었다. 나만 먼저 사춘기로 들어섰던 것이다.


사춘기로 들어서자 나의 외모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모에 관한 한 나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툭 튀어나온 넓디 넓은 이마가 그것으로, 앞에서 보기도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서 보게되면 눈 위에 위치한 이마가 곧바른 직선 형태로 올라가다가 갑자기 45도 형태로 꺽여 들어가는 그런 형태를 띠고 있었다. 영 보기 싫었다. 아버지의 이마를 닮았으며,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이마와도 비슷해 보였다. 이마의 형태만 그랬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외가 쪽 친척들이 거의 대부분 대머리였다는 것이다. 즉 나의 이마 형태상 그리고 생물학적 유전자상 대머리가 될 확률이 꽤나 높아 보였다.


그러다보니 이마를 가리고 싶었다. 앞머리를 길러 나의 흉측(?)한 이마를 감쪽같이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당시는 전국의 모든 중학생들이 예외없이 모두 빡빡머리를 해야만 하던 때였다. 나의 이마는 결코 가리워질 수 없었다. 내성적이며 소심했던 나는 나의 외모 때문에 더 자신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을 비롯 모든 주변 사람들이 귀엽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결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그들의 이마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TV 속 많은 연예인들 또한 내 눈에 먼저 띄인 것은 그들의 번듯해보이는 이마였다.


나는 이 치명적 약점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이마를 반듯하게 피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단 혼자있을 때만) 방바닥이든 벽이든 이마를 대고 내리 눌렀다. 물론 무지하게 아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 보면 이마가 조금이라도 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조금은 그렇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마가 부은 것이었지 결코 펴진 것은 아니었다. 최소 몇 달 정도를 아픔과 씨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통증에 비해 진도는 전혀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도 혼자 방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방문이 덜컥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나의 기이한 행동을 보더니 왜 그러느냐고 캐물으셨고, 나는 결국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너털 웃음을 지으시며, 그렇게 하더라도 결코 나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망선고’와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무척 슬펐다. 하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가슴에 상처 하나만 더 얹은 채로. 나의 미래가 너무 너무 슬펐다.



그때로부터 약 25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비록 이마에 대한 문제보다는 거의 머리숱에 대한 문제로 넘어갔지만, 솔직히 지금은 나의 외모에 대해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 왜일까. 나이가 먹어서 꾸며 보았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 상태기 때문에 이성에 대해 미혼일 때만큼, 사춘기일 때만큼 신경을 덜 쓰기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사람의 매력이 외모보다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모가 뛰어난다 한들 그 마음이 외양을 받쳐주지 못한다면 액면보다 훨씬 못한 평가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부부의 경우가 그렇다. 아무리 절세미인하고 결혼한다 하더라도 오래 얼굴을 맞대고 같이 살다보면 어디 외모만 보며 살겠는가. 자신을 아껴주는 마음,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하면 부부로서 오래 오래 사랑하며 살기가 쉽겠는가. 단 한번의 서약에 의해 평생을 맹세하고 사는 것이 결혼인진데, 아무리 부처라 한들 부부간 손뼉이 맞지 않는다면 하루하루가 고통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 나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나에게서 자신감이 설 자리를 없게 만들었으며, 소심한 나를 더욱 더 소심하게 만든 주원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얼굴 특히 눈 위를 쳐다볼 때는 열등감이 솟구쳐 올라 얼굴이 빨갛게 되었으며, 행여 그 사람이 나의 외모에 대해 듣기 좋지 않은 한마디라도 했다면, 나는 그 사람을 평생 미워하겠노라고 다짐까지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외모는 인생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 인생을 지배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영향은 줄 수 있을 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지배력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빡같은 이마면 어떠하랴. 머리 숱이 적으면 어떠하랴. 자신감을 가지고 활짝 웃을 수 있다면 그 웃음에, 미소에 사람들은 친근감을 보이지 않겠는가.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곱디 곱다면 누가 외모만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겠는가. 외모는 조금 떨어져도 그 사람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는가.


외모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우리 내적 마음이 삶을 지배한다고 보아야 한다. 앞에서 보았지만 존재의 본체는 마음이 지어낸다고 <화엄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외모를 꾸미기 보다는 마음을 가다듬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잘 꾸민 외모는 몇 명의 주변 사람만을 끌어 들일 수 있겠지만, 잘 수양한 마음은 인생 전반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본인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소심하며 자신감이 없다고 넋두리 하지 마라.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 소심은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지배하지 못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변명에 불과한 것임을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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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6.05 15:08:43 *.233.20.213
짝짝짝.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그 누구인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겠죠 (아니다. 늘씬한 연예인들은 아닐 수도 있겠다).
여하간 대다수 사람들을 기준으로 말하자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며 진정 기쁜 일 한가지는
외모보다는 내면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일인 것 같아요.

칼럼 진짜 착하신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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