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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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남녀의 뇌는 마약중독자의 뇌활동과 비슷하다고 한다. 연인이 없으면 슬퍼하며 탄식하는 것은 중독자에게 마약을 주지 않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라는 것.
사랑에 빠졌을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 같은 화학물질은 상대의 결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해 사람을 눈멀게 만든다. 소위 ‘콩깍지’가 씌우는 것이다. 문제는 이 화학물질의 시효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 그러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아니라 변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랑은 이처럼 지속기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그 정체도 상당 부분 의심스럽다. 콩깍지가 씌웠는데 상대방의 진짜 모습이 보일 수 있으랴. 상당부분 나의 희망사항을 투사하여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에크하르트 톨레는 ‘현대인들이 빠지는 사랑의 대부분이 에고의 결핍감과 욕구가 극대화 된 것이고, 상대방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중독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사랑이 속절없이 끝난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상대방의 참모습을 보게 되면, 언제 사랑했느냐 싶게 냉정해지고 불화하고 서로 경멸하는 일이 일어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무슨 열병에 걸린 듯이 사랑을 갈구하고 또 갈구한다.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난무한다. 그런데 의외로 사랑은 흔치 않다. 고윤희는 싱글 남녀 천 명을 인터뷰해서 쓴 책 “연애잔혹사”에서 사랑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지만 겁이 나거나 다칠까봐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불능이 오히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사람들만 보아도 ‘열애’를 경험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드라마와 대중가요 속에는 사랑이 난무하지만, 막상 현실 속에서 사랑은 꼭꼭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짧고 모호하며 흔치않은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말이다. 일부는 사랑의 모순과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믿고, 또 나머지 일부는 있지도 않은 사랑을 평생 갈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사랑이 중요하다고 배우지만, 사랑은 귀하기 짝이 없다. 또 사랑을 본능적인 영역이라고 치부해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도 없다. 가정에서 일차적으로 사랑을 배운 사람은 행운아이다.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도 낭만적인 관계에서 사랑을 경험한 사람도 행운아이다. 그러나 평생 사랑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가정을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갈등과 실패만을 접할 수도 있다.
벨 훅스는 ‘사랑의 모든 것’에서 이 불합리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역시 무시와 모욕이 횡행하는 가정에서 자라났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을 너무 환상적이고 불가항력의 영역에 두기 때문에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녀가 찾아낸 최고의 정의는 이런 것이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확대하려는 의지’이다. 스콧 펙이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말한 이 정의에 접하고 벨 훅스는 환호한다. 먼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다.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하게 규정하고 나면 우리는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지나친 집착이나 파괴적인 흐름에 눈멀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에는 늘 충실함이 따른다.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이런 사랑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낭만적인 사랑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들 수 있다. 내가 나에게 주지 않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내게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으면 하고 꿈꾸는 사랑을 자신에게 주라. 친구들과의 우정은 어떠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일상과 꿈과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어떤 이성보다 소중하다. 사랑 때문에 우정은 평가절하 되었다. 벨 훅스의 말처럼, ‘낭만적인 파트너만을 위해 따로 남겨 두어야 할 특별한 사랑 같은 것은 없다.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 말만 걸어도 그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된다.’ 어떤 관계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나의 성장을 위해 그의 존재를 실어주었다면, 그 경험은 섬광처럼 우리 인생을 가른다. 우리는 날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사랑의 명확한 정의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벨훅스는 토로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완전한 친밀감에 대한 동경 대신 주변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데 반평생이 걸렸다. 나는 이제야 사람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깨닫는다. 외부로 드러나는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존재인 것을 느낀다. 그러니 사람을 품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앞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관계를 만드는 일에 푹 빠질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놀고 배우고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 밑줄 그어진 부분은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