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9년 12월 28일 11시 36분 등록

칼럼 37 - 12월 26일 - 스테파노 축일 - 꼭지글 1

  어제는 그의 생일이었다. 식구들 마다 케익을 하나씩 사들고 들어왔다. 바빠서 다 챙겨주지 못했던 생일을 이제는 모두 잊지 않고 챙기고 있다. 그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 태어났다. 이 날은 카톨릭 교회에서는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이라고 부른다. 이교도들 사이에서 복음을 선포하다 돌을 맞고 순교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며 성인이 된 사도이다. 

교회는 말을 잘했던 스테파노에게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보며 그의 생애를 기린다. 독일에서는 12월 26일을 제 2의 크리스마스라고 하여 국가가 정한 공휴일이다. 교회에서는 당연히 성대하게 스테파노의 축일을 기념하는 미사를 올린다. 

남편의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다.

항상 천천히 느릿느릿 세상을 헤쳐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의 강물을 빠르게 거슬러 강 건너편으로 가버렸다. 미처 삶과 죽음의 철학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둘러 가버렸다. 그의 여동생은 “오빠, 뭐가 그리 급해서 발길을 재촉했느냐”고 물었고, 막내 동생은 “ 형, 이제는 좋우?” 하고 묻는다. 둘도 없는 오랜 친구를 떠나보낸 아이들의 고모부는 “품위를 잃지 않고 떠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하며 이제 그를 향했던 모든 근심을 내려놓았다.

저녁안개가 오늘처럼 뿌옇게 깔린 11월의 어느 날, 오랜 만에 카나다에서 돌아온 사촌누나를 반기며 우리는 잔치판을 벌렸다. 밖에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오자는 나에게 집에서 밥상을 준비해주면 좋겠다고 그가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바빴다. 집을 정리하고 함께 시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고, 틈새를 이용해서 목욕도 하고 머리도 염색하고 옷도 갈아입고, 그는 한껏 멋을 부렸다. 어린 시절 헤어진 후로 참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사촌이었다.

동생부부와 사촌누나 그리고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옛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물론 밖에서 이 집안으로 온 사람이어서 구비구비 사연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평창 이씨들은 그들만의 이야기에 몰입하여 다시 어린아이 마음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하하 호호, 유난히 목소리가 크던 그의 가족이다. 사촌도 같은 범주에 드는 것 같았다.

옛 추억을 회상하며 강원도 여기저기로 되돌아 가보는 동안 밤은 깊어졌고 이제 못다한 얘기는 다음 날로 미루고 잔치를 끝낼 시간이 되었다. 사촌누이가 일어서는 걸 배웅하기 위해서 일어서던 스테파노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옆에서 아이들의 고모부가 거들었다. 살짝 웃으며 다시 일어나려 해보지만 일어나지지 않는다. 갑자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가 혈압 약을 먹고 있긴 했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을 미리 생각두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 하다가 몇 군데 전화를 걸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가까운 병원으로 즉시 옮기란다. 119를 불러 광화문의 한의원으로 갔다. 매우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젊은 의사들이 응급처치를 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종합병원으로 갔다. 기본 조사를 하는 동안, 그제서야 신경외과 교수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의 병원으로 다시 옮겨갔다. 뇌출혈이 발생하고 적어도 3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뇌신경의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하기 때문이다.

닥터 고는 퇴근했던 길을 다시 돌아나와서 병원으로 왔다. 그다음에는 모든 일을  그가 알아서 돌보아 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남편의 테니스 파트너였다. 점점 더 중책을 맡게 되어 이즈음에는 함께 테니스 코트에 있는 시간이 매우 드물었다.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스테파노가 자리에서 일어나보려고 오른쪽 팔과 다리와 몸을 일으켰다. 몇 번이나 반복을 했다.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그러더니 조금 후에 구토를 하고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응급실로 들어갔다.

긴 시간을 수술실 앞 복도에서 지켜 서있었다. 고모부가 함께 있어주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닥터 고는 마스크를 벗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말했다. 새벽 3시반, 영화 속의 장면처럼 새로 지은 병원의 새 느낌이 무척 낯설었다. 그는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겨갔고... 나는 매일 정해진 두 번의 면회시간을 맞춰서 병원을 오고 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눈까지 내리니 그때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 병실의 스팀 가득한 더위에 숨이 막혀서 아침 회진이 끝나면 곧바로 호수로 산책을 나갔다. 꽁꽁 언 호수를 멀리 돌아나가면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려주던 카페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아가씨는 매우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아무 말도 없었고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금방 갈아내서 갈색 거품이 도는 향긋한 커피를 내놓고 쿠폰을 만들어 도장을 늘 찍어주었다. 한동안 거의 일정한 시간에 그곳에 가서 지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서가에 꽂혀있던 박완서의 책들을 집히는 대로 찾아 읽었다. 이 작가는 먼저 자기 이야기를 다 내어놓기에 외로울 때 읽으면 참 좋다. 금방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차거운 바람이 마주 불어오고 눈이라도 날리면, 그렇게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던 내가 생각이 난다. 기억 속에 나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어제도 그렇게 며칠 동안 연이은 성탄 휴가를 백곰처럼 단 음식 속에 파묻혀 지내다가 숨이 막혀서 밖으로 나왔다. 그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강물을 따라 이사를 왔다. 강물은 점점 더 넓어지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고 모여들었다. 갑자기 차거워진 날씨에 인적이 드물다.

이렇게 '홀로 걸어감'은 사람들 속에 늘 몰려다니기를 좋아하던 내게는 보너스 시간처럼 생각된다. 늘 걷던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을이 시작되려는 하구로 물이 출렁이며 흘러간다. 소리내어 크게 노래를 불러본다. 물론 마스크를 하고 있었으니 노래가   메아리되어 되돌아 왔다.  앵~콜이다. 아는 노래가 다 끝나고 외우고 있는 시도 다 끝났다. 되돌아섰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어린 물오리 두 마리가 정답게 함께 떠내려 온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차디찬 물 위를 즐겁게 헤엄치며 떠내려간다. 갑자기 둘이 마주보더니 “쑝”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들어간다.  “아, 귀엽다..... 이제 어떻게 하나 보자.”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아래에서 그 가운데 한 마리가 뾰죽 머리를  내민다. 아니 그런데 또 한 마리는?

어린 물오리가 맑은 목소리로 짝을 부른다. “쭁쭁쭁” 대답이 없다.  다시 “쭁쭁쭁”, “쭁쭁”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애가 탄다. 앞서서 짝을 찾으며 흘러가던 오리가 다시 되돌아 와 아까 둘이서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던 그 자리에 다시 와본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혼자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더니 그냥 그렇게 강물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물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나는 다시 무거운 마음을 안고 불빛이 하나 둘, 물결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강물을 따라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어린 물오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IP *.67.223.154

프로필 이미지
수희향
2009.12.28 12:43:25 *.98.147.106
시작하셨네요, 샘...
여늬 칼럼들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올려주시는 글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2009년이지만 샘이시라면 잘 정리하시고 더욱 풍성한 한해 맞으실 것 같습니다.
샘 내년에도 홧팅이요!! ^^
프로필 이미지
2009.12.30 09:00:53 *.143.134.217
이쁜 좌샘~ ^^

이 글을 읽으니.. 장례식.. 그때가 생각나네여..
제가 좌샘.. 바로 옆.. 왼쪽에.. 앉아 있었는데여..
말씀하실때.. 목소리.. 떨림.. 호흡..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여.. ^^

좌샘~, 잠깐만여..
좌샘의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 사이로..
들리세여.. 누가.. 구여운 화음을.. 넣어주고 있네여.. (아, 물오리.. 다시 나왔나봐여.. )
함께 흐르는 '쫑~쫑~쫑~' 제게는 들리는데여.. ^^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09.12.30 11:14:10 *.67.223.154

수희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세심하게 살피며 배려해주는 그대들이 있어서
이 고비를 넘어가려하고 있어....고마우이...우워.....워

갑자기 "우히히힛" 에서 "쭁쭁쭁" 으로 모드가 바뀌니까...
도대체 헷갈려서 잠시 침묵 속에... 어지러운 꿈을 헹궈내고.......

숙제의 끝에 책이 한권 달려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
인시에 깨어 이빨을 갈아보려 했더니... 이러다간....풀도 못 베겠다. ㅋㅋ

이제 일어나서 홈피에 굳모닝하고...또 책콕해야 하는 오늘 하루도
황홀하게 피어나기를 .....나무 관세음 보살~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92 프롤로그 - 집이 나를 바꾼다 [3] 혜향 2009.12.28 3355
1391 [사자 7] <세상에 흩어진 한국 호냥이들과 함께> [2] 수희향 2009.12.28 3359
1390 FEMINITY [12] 효인 2009.12.28 2923
» 칼럼 37 - 스테파노 축일 - 꼭지글 1 [3] 범해 좌경숙 2009.12.28 3773
1388 끈적끈적한 거미줄처럼 [3] 숙인 2009.12.28 3635
1387 첫책에 대해서 > 어느 몽상가의 하루 [6] 혁산 2009.12.28 3056
1386 길 안내 [4] 백산 2009.12.28 2975
1385 [사자팀-칼럼9 ] 노리단2 [1] 書元 이승호 2009.12.28 2791
1384 컬럼 - IT 기술이 제공하는 핵심 가치 [4] 희산 2009.12.27 2675
1383 프롤로그 - 공간의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내 삶이, 내 꿈이 지루해진다 [2] 혜향 2009.12.22 3351
1382 칼럼 36 - 파자마 파티 [1] 범해 좌경숙 2009.12.22 3725
1381 어떤 순간에 느껴지는 [2] 백산 2009.12.22 2525
1380 성장통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원 2009.12.22 2576
1379 궁정식 사랑 효인 2009.12.22 12017
1378 [사자팀-칼럼8] 창조적 소수 사례모델 연구-노리단 [3] 書元 이승호 2009.12.21 3752
1377 [사자 6] <베이스 캠프: 먼별이가 송년회에서 건네 준 단어> [5] 수희향 2009.12.21 2655
1376 12월 오프숙제 - Twenty [1] 숙인 2009.12.18 3106
1375 12월 off 수업 내용 [1] 혜향 2009.12.16 2620
1374 [사자14] 내 눈길을 끈 small biz - 행복한 상상 [6] 한명석 2009.12.16 3642
1373 12월 과제발표 file [1] 효인 2009.12.15 2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