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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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8 - 소주와 사이코드라마 - 꼭지 글 2
소주를 한잔 마시고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을 한 적이 있다. 두려워서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나를 다 내보일 수가 없었다. 사이코드라마는 마음의 극장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고 싶은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기가 꿈꾸던 세상 하나를 만들어보는 일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서면 그 공간과 그 시간은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때와 장소가 된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역할을 바꾸어 주인공에 맞먹는 악역을 해줄 수도 있고, 책상, 만년필, 일기장 같은 사물이 되기도 하고, 마음속에 깊이 감추고 있어서 제정신으로는 잘 말할 수 없었던 속마음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입고 걸친 옷들을 벗어버리고 , 나만의 색깔과 나만의 향기를 품은 참사람이 되어 한판 드라마를 펼쳐보는 것이다. 100가지가 넘는 이유로 미처 살아내지 못한 나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펼쳐보는 묘미가 있다. 그러나 용기가 없으면 도저히 뛰어넘지 못하는 벽이다. 상상력이 춤을 춰야하고 사회의 꼭두각시이던 내가 그 자리를 좀 떠나줘야하는데, 세상에서 쓰고 있는 가면이 너무 단단해서 “참 나”를 꺼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한참 상담에 열중해 있을 때 우리는 팀을 이루어 사이코드라마 수업을 했다.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한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우리는 그를 위해 그의 무엇이든 되어주던 사이코드라마를 하고 놀았다. 디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 주인공이 되어보아야 했다. 그렇게 초급부터 과정을 충실히 밟아나갔다. 고급 반을 마치고 수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워낙 주인공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양보를 하다보니, 나의 사이코드라마가 없이 그냥 끝을 내는 시점까지 왔다. 나는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어서 자꾸만 보따리를 쌌다. 먼저 집에 가겠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은 공부하러 또 독일에 가 있었고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국내 유학중이었다. 덩그러니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큰 아파트 구석방에서 내 영혼은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시이버님이 시월 어느날 돌아가셨고 그 한 달 뒤 우리 가족의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이 늘 우리와 삶을 함께 나누시던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이 두 사람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온전히 아이의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사랑이었다. 갑자기 나의 삶을 이끌어가던 실타래가 풀려버렸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상 한복판에 버려진 심정이었다. 죽고 싶었다. 늘 내 어깨를 누가 끌어당기는 듯한 힘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무력감에 휘말렸었다. 수시로 눈물이 났고 그 어떤 명료한 생각도 해낼 수 없었다. 마치 때되면 밥먹고 때되면 잠을 자는 자동인형같이 살고 있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염려를 하지 않았다. 나는 늘 일상을 씩씩하게 꾸려나가고 있는 당당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공허한, 자존심 하나로 실속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집으로 가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두 서너번... 드디어 주인공으로 나섰다. 교육과정의 끝에, 막판 1시간이었다. 시아버지를 모셔오고 신부님을 모셔오고 죽어서도 내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질문을 시작했다. “이 여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그렇게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끝내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냥 참고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상처입어 피흘리는 새끼 짐승처럼 울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죽음의 그림자를 그리 깊이 안고 겨우겨우 숨을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하루하루 말없이 그렇게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차디찬 무대 위, 맨바닥에 엄마 뱃속의 어린아이 처럼 쪼그리고 누워서 울었다. 그냥 “어어~ ”하고 울었다. 사이코드라마의 디렉팅을 하고 있던 우리 선생님은 음악이 흐르게 하고, 오리털 파카를 덮어주고 주인공을 불쌍히 여겨 돌보셨지만 주인공인 나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남아있는 힘을 다 끌어내어 울었다. 어른이 된 후로 남 앞에서는 한번도 울어보지 못했던 그런 울음을 토해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곳엔 조그만 틈새도,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히 애를 쓰며 살던, 상담 선생이라 불리던 나는 사라지고, 죽음의 힘에 이끌려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지칠대로 지쳐서 풀 한포기라도 지푸라기라도 붙잡아 삶의 기운을 얻고 싶었던 “참 나” 만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정신을 차려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마 그때 나는 울면서 스틱스 강의 시퍼런 물을 보았을 것이고 카론에게 마지막 동전을 막 건네주려 했는지 모른다. 퀴블러 로스의 말을 빌리면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 나의 성장을 위해서 다시 이세상으로 되돌아 왔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의 사이코드라마는 막을 내렸고, 우리는 서로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느낌을 나누고 헤어졌다. 말없이 마주잡은 손이 최고의 말이었다.
나는 그 후 보름을 몹시 앓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않고 학교도 가지않고 그냥 쉬었다. 목소리 조차 쉬어버려서 사실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목 놓아 울었던 목은 실핏줄이 다 터져서 마치 녹이 슨 철조망처럼 얼룩져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마음을 살펴주지 않으면 몸이 이렇게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집쟁이는 결국 몸으로 겪어야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원점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서는 결코 꺼내놓지 못할 마음의 비밀을 가슴에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욱 세심하게 마음을 쓰게 되는 것 같았다. 즐겁게 웃고 이야기하고 맛있게 먹고 마시고, 그리고 집에 가서 운다. 가끔 길을 가다가 홀로 눈물을 주르륵 흘려보기도 하지만 웬만한 자의식이 없으면 계속 울지 못한다. 애써 휴가를 내어 “통곡의 장”을 찾아가 보지만 사람의 발길이 멈춘 곳이 없다. 언제나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흐르지 못하고 쌓인 눈물들이 등으로 흘러 들어가서 언제나 등이 아프다. 사실, 등을 두드려 주는 사람은 사람에 대해 깊은 연민이 있는 사람이다.
내게 다가와 크고 작게 마음을 흔들고 생각을 일깨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엮어서 정리해 두고 싶었다. 인생의 어느 한 단계를 마무리 하고 새롭게 걸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 묵상을 시작했다. 자료조사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이미 나와 비슷한 체험을 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의 책이 많이 있었다. 사람의 한 생애가 본래 삶과 죽음의 연속이고 삶의 기쁨을 노래할 때 언제나 죽음도 함께 노래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한다. 죽을 힘을 다해야 죽음을 마주 볼 수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제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삶을 마주보려 한다. 아니, 살 힘을 다해서 삶을 노래해 보려고 한다. 노래방의 노래 수준을 보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니 글이 노래처럼 엮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노래가 강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가주면 좋겠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흘러가 새 봄의 언덕에서 풀 한포기의 생명으로 돋아나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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