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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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2 - 고독 - 사무치는 외로움
이번 주에 북리뷰를 한 책은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선을 끌던 책이다. 짙은 눈썹과 얇은 입술, 조금 큰 키에 맑은 얼굴을 가진 사색에 잠긴듯한 한 남자를 본 것 같았다. 그냥 책이 준 첫인상이다.
이 책을 쓴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의학 공부로 시작했으니 도중에 철학을 선택한, 문명 전반에 걸친 폭넓은 연구와 분석력을 지닌 사회학자다. 독일의 유대인으로서 파란 만장한 세월을 겪고 난후 85세에 쓴 글이어서 초연한 침착함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아직도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직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일들이 어둠에 묻혀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인간의 진화과정의 특정단계이며 죽음은 또한 한 인간의 절대적 종말이다. 죽은 자는 소멸되며 다만 산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로 존재할 뿐이다.
현대 문명은 매우 위생적이고 신속한 방식으로 죽음을 배제한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죽음을 낯설어하고 죽음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죽어간다. 많은 이들이 병약하고 노쇠해진다. 삶들과의 이별은 사실 그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 서서히 쇠락해 간다는 것이 그 사람들을 삶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침상에 이르러 외롭게 죽어간다 . 따뜻한 밥처럼 그리웠을 따뜻한 마음 한조각 나눠받지 못한 채로.
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뼈를 가볍게 하여 높이 멀리 날아보고 싶었다. 늘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인간사의 즐거움을 따르게 되고 향락에 젖어 심신이 둔해지는 것 같아 죽은 감각을 다시 일깨워놓고 싶었다. 그래서 생활단식을 시작했다. 하루에 4리터의 물을 먹고, 산야초 효소와 죽염으로 쌓인 독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풍욕과 냉온욕을 병행하고 몇 가지 운동도 함께했다. 일을 하면서 함께 해야 했기에 집중도는 떨어졌지만 처음에 했던 약속을 잘지켰고 과정은 잘 마쳤다.
단식을 시작하며 기운이 없고 쇠약해지는 것 같아서 책을 열심히 읽었다. 아니, 나중에 기운이 없어져서 숙제를 하지 못할까봐, 일찍 책읽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밀린 책들을 읽어 나갔다. 자꾸만 다른 생각이 나는 것 같아서 자리에 앉아 책읽기에 몰두했다. 부엌을 오가는 시간이 없으니 집중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마냥 앉아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고독을 화두삼아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독을 묵상해보았다.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를 땅에 묻는다.”
유치환 시인의 글이다. 고독을 생각하니 자동 반사되어 떠오른 싯귀이다.
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매우 외롭고 쓸쓸함” 이다. 누구든 고독에 대해서 말을 해보라고하면 10인 10색의 답변이 나오고 개인사가 소설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때로는 씹어 먹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과 함께 삼키기도 하는 고독, 어딘지 멋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래되면 견디기 힘든 비중 높은 감정의 하나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손길이 그립다. 부모님이 앓아 누우시면 우리는 곧바로 달려가서 옆을 지킨다. 그러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오래 앓으시면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 형제들끼리 당번을 정하기도 하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는 가끔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깊고 푸른 색 눈동자에서 읽는다. 사람을 오래 기다린듯한 그런 시선들을 병원에 가보면 느낄 수 있다. 조용하지만 검은 푸른 색깔이다. 아이들의 눈동자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이때는 외로움보다는 어떤 그리움일 것이다.
우리는 비록 그런 감정들을 읽어 내린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 지 모른다. 많은 책에 고독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니 혼자서 푹 빠졌다가 자기 자신의 내면의 힘으로 다시 솟아오르라고 써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는 거란다. 고독을 견디는 방법의 하나로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어서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이 고픈 사람에게는 마음을 나누어 주어야하고 정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정을 나누어주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해결일 것 같은데....우리는 너무 기본을 무시하고 높은 정신세계에 머물기를 권장하는 것 같다.
나의 기억 속에는 참 외로운 주검 하나가 있다. 젊은 날, 죽음이 무언지 별다른 경험이 없었을 때의 일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던 동아리 방은 돌집 건물 5층에 큰 강의실 하나를 만들고 남은 공간을 칸막고 문을 내어 사용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물이 필요할 때 주전자에 줄을 매달아 두레박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고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여보세요, 물 좀 떠주세요.” 하고 외치면 마음 좋은 사람 하나가 지나가다가 수돗가로 가서 물을 길어 다시 줄에 매어 올려 보내주곤 하던 그런 낭만이 있었다. 그때는 물질적 풍요가 없는 대신에 끈끈한 우애가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에는 저마다 한 바구니씩 먹을 것을 들고와서 나누어 먹던 때였다. 나는 어느 해 포도를 가득 들고 올라갔었는데, 밥보다 먼저 포도를 먹어버린 사람들이 디오니소스처럼 변해서 옆 방 빈 강의실에 가서 큰대자로 누워 쉬기도 하던 때였다. 그 지붕 밑 강의실은 전망이 좋았다. 그러나 대형 강의실이었기에 비어있을 때가 많았고 우리 동아리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던 곳이었다. 그 강의실이 빌 때는 일대일, 혹은 삼삼오오 몰려가서 심각하게 인생의 제반 문제들을 의논 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가 빈 강의시간에 동아리 방에 올라갔더니 분위기가 자못 심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입심 좋은 선배가 전하는 말을 들어 보았더니, 전날, 우리가 애용하던 그 빈 강의실 위 천장에서 시체가 하나 나왔다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무서워서 머리끝이 쭈뼛 솟아 올랐다. 돌집 지붕을 고치기 위해서 강의실 천장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오래되어 뼈만 남은 채 고요히 누워있는 남자를 발견했는데 그 사람은 우리학교 의 선배였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그는 교복을 입고 그곳에 누워있었다. 먼지가 조용히 쌓인 지붕아래 천장에 그는 왜 올라갔으며, 어찌하여 한마디 인사도 남기지 않고 그곳에 누웠을까? 그때는 스무살 안팎의 대학생 수준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우리는 다만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그 일을 몇번 말하다가 곧 잊었다. 장난기 서린 몸짓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그 사건을 회상하기도 했으나, 그의 영혼을 위해 묵념 한번 하지 못했다.
산 자의 고독과 죽은 자의 고독이 마구 교차되어 내 마음을 훝고 지나가는 중에 갑자기 이 일이 생각이 나서 부지런히 자료를 검색해 보았지만 신문에도 났었을 그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 사람의 이름과 꽃다운 청춘을 그렇게 마친 이유에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쳐버린 우리의 무감각함이 조금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어 나중에 후회 할 일들을 더 이상은 만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 시작하는 것은 결코 늦지 않았으니 몸을 가볍게 하고 영혼은 맑게 하여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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