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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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 ‘선비사숙록’
돌아보면 나는 자연 속에서 편안했다. 그래서 나의 제2의 인생은 도시의 생활을 떠나 자연과 하나될 수 있기를 기원해 왔다.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마음을 얻고, 그 편안함 위에서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고, 그리하여 서로 함께 사랑하고 성장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왔다. 다행히 조금씩 그러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구체적으로 그러한 삶의 지표로 삼을만한 대상 혹은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사 알고 보니 선비 정신 안에 그러한 면모가 있었다. 새로이 몇 가지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역사 속에 살아 숨쉬면서 전승되어진 진정한 선비들의 모습이 바로 내가 찾던 나의 참조 모델이었다. 그들의 삶을 느끼면서 시대를 넘어 같은 ‘현재’에 함께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비 정신의 핵심은 ‘참자아의 완성과 타자의 성취 지원’을 자신의 주변의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서, (1) 오직 진리와 도의에 입각하여 자아를 확립하고 완성하고, (2) 소유의 ‘가난’을 마다하지 않고 존재의 ‘맑음’을 추구하며, (3) 배움을 통해 사랑하고 의로우며 예절 바르고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다. 그 학문으로서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지만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선비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비로서의 인생에서의 ‘치열한 실천’의 측면에서 퇴계 선생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이 ‘선비의 삶’인가를 보여주는 귀감이 되었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사랑은 이러한 개인성의 초극 위에서만 피어난다. 사랑의 세계는 자신 안에 갇혀 있는 ‘나’를 벗어나 자타간 긴밀한 존재 유대의 의식 속에서 상대방을 공경하는 가운데에서만 열린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과 공경의 정신을 “향리에서 아무리 비천한 사람에게라도 반드시 예를 다하셨”고, “손님이 오면 그가 아무리 나이 어리다 해도 반드시 계단을 내려와서 맞이하시고, 전송도 그렇게 하신” 퇴계의 삶에서 확인한다. – 김기현 저, <선비>, 163쪽
퇴계의 집안은 자손이 귀했다. 그런데 종손인 안도의 아들 창양이 병을 앓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안도의 딸마저 의원과 약으로도 치료할 수가 없는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 이 때, 안도가 자신의 여종을 보내 젖을 먹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퇴계는 손자에게 여종과 그녀의 아이를 돌아보라고 가르쳤다. 내 아이를 살리려고 남의 아이를 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퇴계는 증손녀의 생명이 걸린 일을 앞에 두고도 여종과 그 아이를 챙기고 있다. 양반과 천민,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 같은 세속적인 기준보다 도덕성을 먼저 생각한 결과이다. – 김권섭 저, <선비의 탄생>, 29쪽
거처하신 곳은 반드시 조용했고, 책상 주변은 반드시 깔끔하게 청소하셨다. 벽에는 도서가 가득했으나 늘 정리되어 어지럽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셔서는 반드시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하루 종일 책을 보셨다. 한 번도 나태한 모습을 뵐 수 없었다. 평상시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정제하신 다음, 날마다 <소학>으로 자신을 조율하셨다. - <퇴계언행록>
선생은 제자와 더불어 강론하다가 의심나는 곳에 이르면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반드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하였다. 장구에 대한 비루한 선비의 의견도 유의하여 청취하여 허심탄회하게 이해하고 반복하여 참고하고 고쳐서 끝내 바른 귀결로 돌아간 뒤에 그만 두었다. 그가 변론할 때는 기색이 부드럽고 말은 온화하여 이치가 분명하고 뜻이 발랐기 때문에 비록 여러 가지 의견이 분주히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조금도 휩쓸리지 않았다. 이야기 할 때는 상대방의 말이 끝난 뒤에라야 천천히 조리를 따졌으나 반드시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는 하지 않고 “나의 의견은 이러한데 어떨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 <퇴계언행록>
퇴계 선생과 관련된 많은 일화 중의 일부만을 전했지만 이 모두 행동으로 드러난 그의 학문 자세의 일단을 보여 준다. ‘말로 이치를 떠드는 자는 마음으로 얻은 자가 아니다’라는 성리학의 가르침이 평소의 삶으로 녹아들어 향기로 번져나오는 선비의 향기를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퇴계 사후 200년이나 지난 후에도 다산은 퇴계 선생을 시간을 넘어 스승으로 삼게 되었나 보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 이 일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1795년 다산은 충청도 청양의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후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퇴계의 편지글 한 편을 읽고 그 독후감을 써서 모아 두었다가 이 글들을 나중에 <도산사숙록>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묶어서 출판하였다. 였다. 수백 년의 시간을 초월해 옛 스승이 남겨놓은 편지를 읽으며 다산은 마치 자신이 친절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오늘 내가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는 학습과 사랑과 베풂의 실천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인생 선배로서의 선비들의 치열한 삶에의 고찰을 통해 나의 제 2 인생을 이끌어 줄 또 다른 좋은 스승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21세기 선비’가 되기를 꿈 꾸는 나에게 퇴계 선생과 다산 선생은 시간을 넘어 역사를 통해 좋은 가르침을 전해 주는, 살아 숨 쉬는 좋은 스승이 되어 주실 것이다. 이제부터는 보다 자세히 그들의 삶의 길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조밀하게 헤아려 보고자 한다. 그래서 나만의 <퇴계다산사숙록>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두 분 말고도 지행합일에 이른 또 다른 모범이 되는 선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과의 가슴 떨리는 만남을 통해 나만의 ‘선비사숙록’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선비의 생활철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 또는 학행일치(學行一致)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과 남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할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박하고 타인에게 후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생활태도가 권장되었다. 이 일관성은 세력에 따라 변하는 기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아, 지조와 절개가 선비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안으로는 한없이 단단한 정체성을 가진 외유내강의 인간상을 지향한다. 그들은 청빈과 검약을 통해 스스로 겸손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 <코리아니티>, 132쪽
선비정신은 우리가 물려받은 가장 훌륭한 정신적 유산이다. 자부심 강한 호학의 선비들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 - <코리아니티>,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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