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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02시 06분 등록
영화의 구성을 살피면, 신화를 이해할 수 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은 신화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영웅의 탄생은 범상치 않다. 곱게 자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린 시절 부모가 죽거나,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갖는다. 주인공의 혈통은 좋다. 우량인자다. 복수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들게 수련한다. 좋은 혈통이라, 주인공은 학습효과가 좋다. 시큰둥한 스승이 나와서, 가리키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주인공은 군말없이 훈련한다. 말이 스승이지, 독학이나 다름없다. 학습에 있어서, 독학은 어렵다. 어렵지만, 독학으로 얻은 실력은 강하다. 

어느 모 대기업에서는 15세 이전에 편모나 편부가 되버린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식적이지 않고, 다른 이들과 쉽게 융화되지 못하리라 판단한다. 그들의 생각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웅은 대기업이나 공직 생활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짜식이 실력은 좋은데, 적응을 잘 못한다면, 그 짜식은 영웅의 씨앗이 강한 것이다. 물론 영웅은 똘아이와 다르다. 똘아이의 행동은 단순한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다. 영웅의 기행은, 논리와 깊이가 있다. 적어도 그에겐, 현 시스템에 싸우겠다는 용기가 있다. 고려대에서 한 여학생이 대자보 붙여놓고 자퇴했다. 이것은 똘아이짓인가? 철이 덜 든 것인가? 영웅의 행동인가? 적어도 똘아이 짓은 아니다. 

현실에서 탄생은, 물리적인 탄생일수도 있고, 직장에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신화를 일반인의 일상에 적용시킨다면, 입사, 결혼, 상喪 과 같은 일이다. 각각의 경조사는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다. 동시에 지나온 날들에 대한 결별이며, 새로운 삶으로에 입구다. 

영웅은 주어진 환경과 부딪혀가며, 자신의 능력을 감지한다.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감으로 안다.  20세가 되면, 집을 떠난다. 슈퍼맨도 20세 언저리에 출가했다. 출가하면 메신져를 만난다. 그들은 힌트를 준다. 영화에서는, 세련되게 이야기 해준다. 마치 오랫동안 주인공을 기다려왔고, '오직 당신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미인이 이야기해준다.

요즘 영웅 영화가 재미없는것은, 대놓고 처음 부터 영웅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영웅이 되기 위한 갈등이나 방황이 없기에, 초장부터 관객과 공감하기 어렵다. 관객과 영화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 한 번 떠들어봐'라는 식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신화는 현실이다. 신화라는 드라마가 없기에, 재미가 없다. 극작가 김수현은 아바타를 보고, 재미없다고 평한다. 아바타에는, 테크놀러지의 껍데기만 있고 신화가 없다.  

현실에서는 소명을 알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직장 생활, 10년은 해보아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영화처럼 미인이 달콤하게 말해주기 보다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한국은 칭찬에 인색하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나보다 잘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개인의 강점을 스스로 아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강점은 옆에서 강점이라고 해주어야, 시동이 걸린다. 

영화가 현실과 비슷할때, 드라마의 극적 효과도 높아진다. 자신의 소명을 찾아야 하는데, 그 소명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항상 가까이에 있다. 슈퍼맨은 자기집 마굿간에서, 크립토나이트를 발견한다. 배트맨은 자기 저택의 지하에서, 박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 백이면 백. 처음 주인공은 이 소명을 거부한다. 소명에서 상처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구출해야하는 데, 팀원을 모은다고 하자. 순조롭지만은 않다. 특히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물은 완강히 동참을 거부한다.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슈'
'난 손 씻은지 오래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않아요'
'그곳에서 내 아내를 잃었어요', 라는 대사를 치면서 말이다.  

'외식업'이라는 키워드를 찾기 위해, 방황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 써빙보는 것이었다. 이제 보니, 방황하는 것도 일이다. 방황해야 방향을 찾는다.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방황하지 않으면, 분명하고, 견고하게 정리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떤 키워드로 바뀌어갈 지는 모르겠으나, 5년 동안 헤메대가 발견한 키워드는 '외식업 작가'다. 

영화에서 영웅의 출정은 멋있다. 팡파레가 울리거나, 아니면 드라마틱하기라도 하다. 퇴사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출정이었다. 하나도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멋없게, 다시 찾아가서 재입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실은 칼로 자릇듯이 깨긋하지 않다. 영화에서는 쿨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 일이 안되면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본다. 단,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람은 누구나, '나간다.' 집을 나가거나, 회사를 나간다. '나간다出'는 사실은 같다. 석가나, 예수, 스파이더맨, 배트맨, 슈퍼맨, 모두 나갔다. 별볼일 없는, 나도 퇴사했다. 이들의 나가는 이유는 하나다. 성장. 신화가 현실에서 살아나는 순간이다. 

외식업 시장은 크다. 많은 이들이 회사를 나오면, 외식업에 진출한다. 혹은, 직장인들 대다수가 카페를 꿈꾼다. 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출판시장은 크지 않다. 한국 성인 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외식업 서적이 천편일률적이다. 매뉴얼같은 책이 다수다. 물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난 적어도 책이라면, 어떻게 보다는, '왜'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라는 책은 임시방편이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외식업계에서 제대로 된 책을 내보고 싶다.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실존의 문제다.  우리 나라는 퇴사하면, 먹고 살 것이 마땅치 않다. 택시나 외식업이 고작이다. 회사 다닐때도, 막연한 두려움은 있지만, 회사는 성장하는 모듈을 제공한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임원등 목표는 분명하고 방법 또한 명확하다. 퇴사하면, 아무것도 없다. 성장의 마디를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성장판을 만들고, 그 판을 끌어올리는 것 또한 자기 일이다. 회사에 다닐때는,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다. 퇴사하면 아무도 봐주지 않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게으름,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프레임이 제공된다면 한결 쉽다. 자영업이 어려운 것은, 성장의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밖에 나와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답하는 것이 외식업 작가가 해야하는 일이다. 

이 일이 내 소명이다. 외식업은 내 인생에 항상 있었다. 집이 어렵게 되자, 시작한 것이 외식업이다. 어머니 몸에서는, 음식재료와 수도물 냄새가 났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손님에게 하대받고, 고개 조아리고 그러면서도 돈은 많이 못벌고. 외식업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오던 터다. 외식업에 소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장사꾼들을 보면, 그들의 머리에는 무궁무진하게 조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 이리저리 조립하면서, 결과물을 내놓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 이 소명을 거부해왔다.

방황하던중,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옳지만, 그 만큼이나, '내가 할 수있는 일로 공헌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자 한다면, 어린 것이다. 일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분리할 수 없다. 좋아하는 일 안에, 싫어하는 일이 있으며, 싫어하는 일 안에 좋아하는 일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 보다는, 좋아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 균형을 잡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 집은 외식업가家다. 친척들이 모두 외식업에 종사한다. 외식업 작가에게 유리하다. 어린 시절부터 외식업을 보아온 것도 그렇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고 싶은 것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콘텐츠의 근간이다. 영화, 연극, 영상, 광고, 포스터, 그래픽, 이미지....모두 텍스트에서 시작한다. 그릇에 담아야할 정신이 필요하고, 나에게는 외식업이 글에 담아야할 정신이다. 정신을 담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정신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일만 한다면, 경험만 쌓인다. 경험에 겹겹히 자신의 생각과 철학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을 깊게 건들지 못한다. 다른 이의 정신이란, 물론 책이다. 

일하며, 읽고, 쓰게 되었다. 

나의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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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4.05 05:29:31 *.236.70.202
건아..
너 정말 빠르구나..
아님 내가 벌써 객관성을 잃은건가?

한잎 한잎 정성스레 속을 채워넣은 김치같다.
맛있다.  ^^

P.S.   너만 서둘러 가지말고 나도 좀 끌구 가주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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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3:26:39 *.129.207.200
네가 나좀 끌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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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4.05 05:36:38 *.74.240.66
맑은 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생각해요,  더 많이...
그동안에도 그랬지만 ,   앞으로 1년 간 더 많은 글을 보게 되겠군요.
반갑고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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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3:28:07 *.129.207.200
뵙고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멀리 가셨군요. 5기 선배님들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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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10.04.05 09:11:08 *.142.217.241
"신화는 현실이다."
좋은 글이다.
결론을 멋진 한줄로 압축 하는구나..
빠른 너의 성장속도에 현기증이 느껴진다.
네 질주본능이 드디어 시작됨도 느낀다.

이번주가 회사 마지막 주다.
드디어 퇴사가 눈에 보인다. 
네 말대로라면 나또한 '나간다'.
그리고 조만간 방황이 시작되겠지...그리고 방향을 잡고..
내가 영웅이라면 말이다...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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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3:29:01 *.129.207.200
나가서도 잘할 것이야. 그렇게 셋팅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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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05 18:08:26 *.236.3.241
남들은 스프링캠프 막 차렸는데, 정규 시즌 개막한 인건이 ㅎㅎㅎ

머스탱 엔진 달았으니 함 달려 보그래이 ~
부지런히 따라가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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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3:29:33 *.129.207.200
별 말씀을, 아직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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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4.05 18:59:08 *.30.254.28
인건아..부탁이 있는데,
줄간격을 160 이상으로 해 주지 않으련? ㅎㅎㅎ
.노안이 와서 읽는데 한 참 걸렸다..

카운터에서, 글을 쓰다
홀을 돌면서 다시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번주는 힘들겠고, 다음주에 유끼 모여서 한잔 하자고 꼬서야겠다..
해물 닭한마리.....맛있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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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3:31:03 *.129.207.200
아, 저도 붙여놓고 보니까, 꽉 찬 것이 멀미 나네요. 

저희 가게에서 모이기에는 거리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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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4.08 01:14:31 *.68.10.114
현실속에서 자신의 영웅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명을 알기까지 10년...그 정도면 양호한 거?
지금 이순간 나의 삶이 영웅의 삶이라는 자부심으로 고고하렵니다^^
아...방학때 써빙알바 가능요~ㅋㅋ 오라버니를 통해 써빙알바의 소원을 풀수 있기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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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4.08 08:01:24 *.70.61.217
멋지군요.
한결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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