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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08시 08분 등록

팔딱팔딱 뛰어노는 햇살아래 맑은 바람을 품고 마눌님이랑 참으로 오랜만에 일요일 오후 한가로운 휴식을 즐기었다. 어린이 대공원을 거쳐 아차산까지의 세시간여의 산책은 어느덧 불혹을 넘기면서 튀어나온 나의 뱃살의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세상 가득 느껴지는 봄의 향내를 온몸 깊숙이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봄이다. 봄. 그런가운데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노라니 지난주 이메일로 전해져온 조카의 뭉클한 편지의 내용이 떠올라졌다.

 

‘안녕하세요 삼촌

삼촌 집에서 장장 6개월여를 머무르고 떠난 뒤

몇 달이 지나고..

이제야 글을 씁니다.

사실 한국에 있었던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살았던 환경과는 또 다른 환경을 체험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그리움

사회의 각박함. 등

무엇보다 삼촌을 보고 배운 것이 많아요.

모든 직장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야근까지 하며 맡은 일 하기에도 급급하여 다른 일들은 할 엄두도 안 난다고 생각했었는데..

삼촌께서는

힘든 직장을 다니시지만

주말마다 쉽지 않은 변경연 과제를 하시고,

한 달에 한번 정기적 오프라인 모임에도 참석하시고

책 읽으실 시간이 없으시지만 자투리시간(출장 왔다 갔다 하실 때) 에도 많은 책을 읽으시고..

자기계발에 여념이 없으신 삼촌을 보며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지금까지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되는대로, 계획 없이 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간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네요.

호주에 온 지도 2개월이 지났습니다.

학교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구요.

하지만 한편으론 좀 무섭습니다.

...... ‘

 

 

3살 한참 귀여울 나이에 재윤이는 나의 품에 안겼다.

누님이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어린 조카는 곧잘 삼촌의 등에 업혀 여러 신기한 곳을 함께 돌아보기를 좋아하였다.

‘저거 뭐야’라는 질문이 연달아 쏟아질 때면 나는 답변을 찾기에 급급했었고.

어느날 성당쪽으로 향하여 본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어색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금방 울음을 터뜨리는 통에 난처한 입장에 처하기도 하였었지.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또래 애들보다 정신적인 욕구가 강해서인지 자신에 대한 자의식에 빠지기도 했었고 철학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도 했었다.

이런 너자신을 볼 때 나와 정신적인 연령대가 비슷해서인지(?) 지방 출장길이면 곧잘 들려 밤늦도록 진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하였지.

어떤 꿈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

무엇을 하며 살고싶은지?

이런 질문에 너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예상치 않았던 답변에 나는 ‘돈을 벌고 나서는 그다음에는...’ 이라는 꼬리에 꼬리를 묻는 질문으로 너의 답변의 근원을 확인 할려고도 했었지.

 

자형과 맥주 한잔을 나눌 때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너에게,

‘너도 맥주 한잔 해보렴.’ 하며 잔을 내밀자,

그런 삼촌의 호의에 원샷을 하고난 다음에 하는 너의 말은,

‘이렇게 쓴술을 어른들은 왜마셔요.’라고 하였지.

그에대한 나의 대답은 ‘인생이 쓴만큼 술도 쓴거야. 그래서 마시는거고.’라는 우문을 하곤 했었지.

 

그후 몇 년이 지난 어느날 해외에서 걸려온 누나의 전화 한통화.

‘승호야. 재윤이가 대학 특례생 시험 준비 등으로 인해 아무래도 너희 집에서 신세를 얼마간 져야 되겠다.’

재윤이가?

그러면서 이어지는 누나의 한마디.

‘자형 친척도 많은데 아무래도 너가 편한 모양이다. 삼촌 집에서 지내고 싶어하니.’

나혼자만의 결정으론 그럴 것 같아 마눌님에게 상의를 하였다. 역시나 천사같은 마눌님은 언제나 그러했듯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하지만 조카이지만 아무래도 함께 생활하기가 신경이 쓰일텐데.

 

딩동. 드디어 도착을 하였다. 문을 열고 나가자 누나와 함께 들어서는 조카 재윤이.

자형의 해외 파견 근무로 인해 외국에서 생활을 하였던 3년이라는 시간은 과히 적은 시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덧 나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신장에다 얼굴의 여드름 자국이 과거의 순수하고 귀여웠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으니.

 

남들이 흔히 말하는 고3 수험생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조카와의 동침(?)이 시작 되었다.

올빼미형 조카는 새벽까지 교과서와 씨름하다가 우리 부부가 직장에 출근하고나면 일어나 외숙모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 대치동 학원쪽으로 향했다.

그런 조카와 더불어 나도 연구원 생활을 하고있던 터라 회사 일을 마치고난 평일에는 도서관으로 향하였고 주말이면 함께 열공 생활에 빠졌었다. 어찌보면 경쟁을 하듯 한쪽은 교과서에 한쪽은 어려운 인문서적에 빠져 서로가 생활을 하였다.

조카는 이런 삼촌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릴적 함께 만화책에 탐닉 하였었던 삼촌이 이제는 처음보는 두꺼운 책의 삼매경에 빠져있으니.

‘삼촌. 주말마다 책상에 앉아서 글쓰는게 뭐예요?’

궁금증을 못이겨 어느날 새벽 이런 질문을 하는 조카에게 구본형 싸부님과 변경연 연구원 생활 그리고 주말마다 이어지는 북리뷰 등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유심히 경청하던 조카의 눈망울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자신만만해 하던 조카도 시험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시자 어깨가 쳐지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어떤 격려를 해주어야 할까?

삼촌된 도리로써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실현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차, 녀석은 책장에 꽃혀있는 나의 책에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마음도 뒤숭숭하고 그러니 나쁘지만은 않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내심 나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을 조카가 들쳐본다고 생각을 하니 묘한 여운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던차 드디어 호주의 대학에 진학을 결정하고 나서 조금의 여유가 있을즈음 나는 한마디 제안을 하였다.

‘재윤아. 금주에 연구원 모임이 있는데 마음이 내키면 견학차 함께 갈래.’

어찌보면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자극제가 될수도 있겠다 싶어 권유를 하였는데, 역시나 나처럼 낯선 환경에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는 성격인 탓인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윽고 삼촌을 따라 나섰고 우리의 수업에 흥미롭게 참여를 하기도 하였다.

 

어느덧 약속된 6개월에 접어든날 드디어 조카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가져왔던 짐을 다시한번 점검을 하고 차가운 새벽 바람을 맞으며 리무진 버스로 가방을 옮긴후 조카가 차에 오르는순간 묘한 기분이 드는건 왜였을까?

짧은 기간이지만 그새 정이 든걸까?

나중에 지나보면 녀석도 삼촌 집에서 생활한것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겠지.

좀더 잘해줄걸.

조카도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차장 밖으로 흔들어 대는 손이 힘없이 늘어져 보였다.

재윤아 거기 가서도 너답게 잘살으래이~

 

 

자신의 여리고 감성적인 성격이 삼촌에게서 온것이라고 푸념을 하곤했던 재윤.

인생의 진로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을 하였던 재윤.

현실과 이상사이의 갭속에서 무언가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재윤.

그런 너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던 점을 너는 아는지?

이젠 한사람의 어엿한 성인으로써 훌쩍 커버린 너의 존재가 나에게 각인이 됨을 아는지?

장남으로써 책임감을 느끼며 어느새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속깊은 너의 넓은 등판을 두드려주고 싶었던 마음을 아는지?

 

머나먼 타국에서 홀로 떨어져 공부를 해나가며 그리고 자신의 존재성을 찾기위해 전력질주하고있는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떨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어느 날에는 뒤를 돌아보기도 하겠지만, 네가 선택한 너의 길을 굳세게 믿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갔으면 한다.

삼촌은 마흔살이 넘어서야 겨우 철이 들어가지만 영특한 너는 스무살의 아직은 영글지 않은 나이임에도 벌써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

 

서울의 거리에도 겨울을 뚫고 햐얀 목련의 찬란함이 피어 나듯이 너의 앞길에도 봄의 전령사가 지금은 도착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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