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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11시 57분 등록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하동으로 출발했다. 4월 3일, 새벽 6시 정각의 일이다.

  

  아버님, 어머님, 신랑, 이쁜이 둘, 그리고 나.

  시인을 만나서 싯구를 받아와야 한다는 나의 미션은 이렇게 우리 가족 모두의 봄맞이 짧은 여행이 되었다. 

  3월 11일에 처음 공포된 미션은 경남 하동이라는 그 물리적 거리만큼 온갖 상황으로 뒤엉켜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이것저것 상황을 조율하며 낑낑대던 나는 드디어 꼭 가야한다는 결심 아래 모든 상황을 평정하고야 말았다.

  어려웠던 상황은 시어머니가 하동중학교를 나오셨다는 것을 되새기고, 신랑의 출장일정이 다음 주로 조정되고, 큰 애의 학교에는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기로 결정하자 점차 풀리기 시작했고, 출발날짜가 다가오면서 가족들이 나보다 더 설레기에 이르렀다.
  나도 면접여행과 연구원 모임을 위해 연달아 집을 비워야 하는 미안함에서 벗어나 즐겁게 가족여행을 기대하게 되었다.


  어머님과 내가 준비한 푸짐한 간식과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악양으로의 긴 자동차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고 일찍 서두른 탓에 생각보다 밀리지 않고 화개장터에 5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재첩국과 재첩칼국수, 재첩파전으로 확실하게 섬진강을 느끼고 ‘최참판댁’에서 아이들에게 <토지>에 대해 설명하는 내 목소리는 흥분해 있었다. 큰 애조차 얼마나 내 이야기를 알아들었을지 모르지만, 잘 관리된 세트장과 풍경은 시험기간에도 밤새워 <토지>를 읽던 그 때와 최수지 주연의 드라마 ‘토지’를 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토지>의 감동과 가족을 남기고 나는 벗들을 만났고 우리는 박남준 시인을 만나러 갔다. 전화와 이미 만난 분들의 전언을 통해 느껴졌던 시인의 어색함이 우리를 살짝 긴장시켰지만 한편 푸른 봄날과 매화와 바람은 우리를 들뜨게 했다.


  시인은 말이 없었고 우리는 조용했다.

  차가 한 잔 돌아가고 침묵이 흐르는 동안, 처마 밑의 풍경소리와 시인이 틀어놓은 음악을 들었다. 조심스럽게 꺼내었던 책을 펴고 시 한 편을 읽었고 글 한 구절을 읽었다. 시 한 구절을 통해 우리의 침묵은 깨어졌고 시인은 슬픔과 시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차를 마셨고 시인이 내어준 떡을 먹었고 고로쇠물을 한 대접씩 마셨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써 내려간 글귀는 무엇을 본 것일까?

  나의 <적막>을 받아들고 한참을 침묵하던 시인은 한 구절 싯구를 적었다.

 
  ‘한 그릇 감로의 물바가지에 띄워지는 버들잎처럼’


  언제 보셨을까, 조심스레 내려둔 또 한 권의 <산방일기>를 달라 하신다.


  ‘어김없는 것들이 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꽃들, 그 초록들

  세상이 그와 같다면’

     

 
  두 구절을 품고 나는 다시 가족을 만났다.

  

  평사리 공원에서 뛰놀다온 나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별을 보았다. 천체망원경을 노래하던 아이는 별이 쏟아지는 쌔까만 밤하늘에 탄성을 질렀다.

 새벽에 읽는 시 한 구절은 나의 마음에 들어온다.


   ...

  얼었다 녹았다 겨울빨래는 말라간다

  삶도 때로 그러하리

   ...


  해가 뜨는 아침, 우린 함께 산자락을 산책했다. 바람이 부는 남해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남해군 노량리에서 이순신 장군의 ‘충렬사’에 들렸고 거북선에 들어갔다.


  8시간에 걸쳐 돌아온 나의 고향에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봄은 이미 나와 가족의 맘에 찾아왔다. 나의 새로운 꿈은 벌써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IP *.10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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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10.04.05 15:44:34 *.30.254.28
시인을 가장 고민하게 만든 선형....고심의 깊이 만큼 글도 멋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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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05 17:13:04 *.236.3.241
저 위의 빨간꽃 탐난다 ㅎㅎ

겨울풍경 읊을 때 선의 가늘진 목소리에
그리움도 깊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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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선
2010.04.05 23:17:00 *.106.7.10
ㅋㅋㅋ
빨간 꽃이 저도 참 좋았어요^^
'엉겅퀴' 가만히 입속으로 불러보면 잔잔한 물길이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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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4.05 17:20:53 *.219.109.113
좋은 봄 소풍이 되었구나.
그 기운으로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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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2:44:15 *.129.207.200
가족들이 한번 움직일려면, 준비할 것이 많군요. 준비 과정이 대대적인 공사 같습니다. 

듣고 보니, 초록이 어울리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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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선
2010.04.05 23:17:58 *.106.7.10
'듣고 보니' ???
난 원래 초록이 어울렸어! ㅋㅋㅋ
담 모임때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나갈까 고민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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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4.05 23:21:38 *.53.82.120
남 얘기가 아니지 않나?
아이가 몇살이라구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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