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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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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12시 06분 등록

사월맞은 하동은 이제사 기지개를 켜는데

 마음 급한 상춘객은 꽃 피우라 꽃 날리라

우격다짐을 한다   


네 식구 가족여행이 일 때문에 취소되고 딸아이와 둘이서 금요일 밤에 하동을 향해 떠났다. 전날의 숙취에다가 36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다 보니 눈이 감길 듯 말 듯. 참다 못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30분을 잤다. 5시간의 장거리 여행이 아이에게는 처음이라 이동시점을 밤으로 잡았는데 고맙게도 출발부터 도착까지 내리 숙면이다.

남해가 바라보이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고 딸과 평사리 공원에서 오전 나절을 보냈다. 섬진강을 보니 왜 섬진강인줄 알겠다. 풋풋한 아낙의 향내로 바람을 불어오고  잿빛 산하위로 새들이 V자를 그리며 속 깊은 이야기들을 소삭거린다. ‘한강 촌놈아빠를 닮아  아이는 바다가 아닌데 모래가 있네.“ 라며 쭈그리고 앉아 마른 갈대줄기를 휘젓는다.

풍경은 없고 풍경 보러 나온 행인을 풍경 삼아 화개장터 한자리를 잡고 진철, 웨버의 후배와 서먹한 한술을 뜬다. 한쪽은 까무잡, 한쪽은 뽀얗다. 웃으니 하얀 피부가 파르르 떨린다.

진철이 일러준 최부자댁이 식당인 줄 알고 잠시 헤매다가 최참판댁 너른 들판에서 일행을 만났다. 다들 얼굴에 색기가 발랄하다.

시인의 집에 이르는 길은 매화향이 그득하다. 마당에 나와 방문객을 맞는 시인의 품새가 사진 그대로다. 소박한 옷차림에 손가락에 문 담배가 수줍은 시인의 미소가 되고, 마중인사가 되고.

앞선 방문객들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며 악양산장 엉덩이를 내려다보며 꽃대궐에 앉았다. 벚꽃은 능선을 이루고 누군가는 노래에 취해, 누군가는 꽃에 취해, 누군가는 사람에 취해 그렇게 물들어 간다.

진중한 시인은 써니 누님의 흰소리 열 번에 무너졌다. 서화담과 황진이도 시작은 흰소리일까.

쑥떡, 좌경숙 씨, 공룡시대 어금니, 황차, 동네 밴드, 아침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술친구들, 도현이, 동종업종 종사자, 남주 형, 창훈이, 선형의 겨울풍경 낭독,  애로시 답사가 이어지고, 처마 밑 풍경소리는 변소를 돌아, 동산을 돌아 한 구비를 돌아 꼬리를 물고 흐른다.  

시인은 , 어렵다.”

『흩어진 것을 묶기도 하고 때로 묶여 있는 나를 풀어 놓기도 하는 끈 또는 매듭』, 박상현 님께

 
시집에 적어 준 시인의 메시지를 붙잡고 한참을 생각하다 여쭙는다.


씨익 웃으시더만 남는 책 있으면 줘 보란다.

『그대안에 담겨 있는 연두빛 세상』, 박상현 님께

화분 안의 새싹잎이 참 곱다.

  


시인과의 만남답게 그날의 풍경은 주로 메타포. 이쪽에서 눙치면 살을 붙여 큭큭큭, 저쪽에서 농치면 뼈를 발라 헐헐헐~

달궈진 양철지붕위로 노을이 물들고 아빠 따라 나선 아이는 세시간을 자고 배웅소리에 눈을 뜬다. 효녀다.

개울소리 졸졸졸, 강아지는 멍멍멍~~

사월은 잔인한 달.

움추린 언어들은 잠깐 온기에 호박처럼 짓물러 다만 흘러갈 뿐이다.

IP *.201.237.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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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10.04.05 14:20:00 *.30.254.28
허...달밤에 막걸리 걸치며 읽으면, 참으로 좋은 글...
글과 그림이 한편의 시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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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4.05 15:49:54 *.248.235.12
으악,
시인의 한마디 그 "연두빛 세상" 땜에
집안에 있는 연두색이란 연두색은 다 나오고
내 속에 있는 연두색이 모자라서  머리카락까지 연두색으로 물들여야 할....내 운명

연두빛 내운명....
그대 박상현의 연두빛은 어떻게 피어나려나.... 궁금하고....부채질도 해보고 싶고....
봄날이 흘러가는 것이 들립니다.

글이 사진같이 아름다워서....저절로 따라나오는 댓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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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00:25:27 *.67.223.154

"꽃과 나무와 새들이 노래하는 그대안의 연두빛"
 
내가 받은 글이예요.  그후로 연두빛이 바람난 봄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있네요. "으악~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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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05 18:27:46 *.236.3.241
저술여행은 재밌으세요ㅎㅎㅎ

 좌 선생님도 연두빛 새싹을 받으셨어요?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 색에
마음이 동하는 걸 보면 뭔가 좋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면접여행 때 목도리 해 주셔서 감기 안 걸리고
잘 놀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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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4.05 17:36:17 *.219.109.113
그대의 공주님이 나를 공주님을 만들어 주었지.ㅎㅎ

그림이 그대의 목과 넓은 가슴팍에 피어나는 새싹을 연상케 한다.

아이들도 새싹도 정성스레 잘 키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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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05 22:39:40 *.129.207.200
시詩 같은 산문이네요. 남도의 기분이 느껴지고,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정말 효녀입니다. 어찌 그리 잘자는지. 

우리 아이들은, 정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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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선
2010.04.05 23:15:09 *.106.7.10
전 '매듭'이 좋았어요 ^^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세요~
또 오빠의 넓은 가슴에 핀 연두빛 새싹으로 우리를 상큼하게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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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4.06 10:10:42 *.36.210.131
호호호.

꼿꼿하신 시인님 자빠뜨리기? 그랴도 그 덕에 미 발표작 애로틱 시까정 시인의 낭낭한 목소리로 직접 들어봤으면 뒤았지 뭘 더바랴.

정다운 이야기를 마치고 즐겁게 해산 하기 직전 뒷간 다녀오니 단체 사진 딱 한 장만 허용하셨다기에 갑자기 또 기습 팔짱끼고 사진 박기까정 딴엔 나도 아양 떨어대느라 애쓴 것이영. 흥흥흥

헌데 시인님 어찌나 완고히 두 팔을 당신 몸쪽으로 바싹 붙이고 새초롬이 계셨던지 오히려 그 좁은 틈 사이를 삐집고 들어간 팔장에 따사로운 온기가...  으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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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4.08 07:05:53 *.70.61.217
써니가 같이 갔구나,
그래서 꼿꼿한 시인 오장육부를 그 살살대는 웃음으로 활짝 열어젖혔고나.
아, 내가 못간 게 원통 절통하다~~
이제 써니의 계절이 춘풍을 타고 다시 날아드는 겨?
그대 때문에 변경연이 꽃밭으로 흐드러졌다야~
그대의 컴백을 가장 기뻐하는 일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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