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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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인지는 모르나 어느 신인가가 너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 ‘변신 이야기’ 중에서
神은 자연의 은유(metaphor)이자 인간 욕망의 환유(metonymy)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신은 자연의 인격화된 존재이자 인간행동의 근원인 리비도의 화신으로서 인간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보려는 의도로 창조되었다. 신화는 자연, 때로는 신이라는 절대존재로의 變身(metamorphorsis)을 통하여 삶과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형상태로 들어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삶은 망망대해의 파도다. 나는 한 때 여신들을 지리게 한 미소년이었으나 외면의 대가로 미움을 사고 물고기가 되었다. 겨드랑이에서 지느러미가 돋을 땐 막막하였지만, 이제는 힘을 빼고 조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줄도 안다. 물고기로서의 멋진 변신을 위해 지난 사례들을 간 보며 나의 지향점을 가늠해 본다.
#1. 동피랑 마을, 꿈이 생동하는 달동네
경남 통영시 동피랑 벽화마을.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지만, 몇 년 전 만해도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달동네였다. 언론에 흔히 소개되는 ‘자본의 논리에 갈 곳 없는 서민’이 이들의 운명이었다. 이 때 시민단체인 ‘푸른 통영 21’이 놀라운 생각을 해냈다. ‘푸른 통영’은 2007년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걸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어 전국 미대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달동네 집 벽을 갖가지 벽화로 탈바꿈시킨다.
화사한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결국 철거방침을 철회했다. 벽화 하나로 달동네가 통영의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동피랑 마을에서는 흔한 구멍가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간판에 Café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브랜드를 획득하자 ‘달동네의 애환’은 찌질한 남의 집 얘기에서 돈 내고라도 감상하고픈 鄕愁로 격상되었다. 본질은 그대로인데 가치가 높아졌으니 관점의 전환이 이처럼 중요하다. 애환이라는 단어 속에는 표현하기 벅찬 여러 정서들이 묻어 있다. ‘달동네’ 하면 나는 뻥 뚫린 하늘, 뒷산, 갈대밭, 쥐불놀이, 술주정, 백수 아빠들, 세검정, 복날 흰둥이, 보름달, 부엉이, 철거민 딱지 같은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유년시절을 보낸 홍은동 산1번지의 기억 탓이다. 그 곳은 뭐든 농도가 짙었다. 몸 때, 목소리, 알코올 도수 뿐만 아니라 거칠게 포옹하고 단칼에 생깠다. 심지어 기억의 사진첩도 폴라로이드 흑백이다. 달동네가 아니더라도 북촌이나 삼청동을 걸어봤다면 알 것이다. 골목길, 하늘 향해 두팔벌린 계단이 주는 설레임, 속삭임, 그 냄새들. 동피랑 마을에는 ‘동피랑에 꿈이 살고 있습니다’는 그래피티가 있다. 하늘 아래 처음으로 달을 맞아 본 사람, 산 너머 친구가 그리워 공비마냥 능선을 타 본 사람은 안다. 거기서 꿈이란 이른 아침 숙취를 깨우는 김치국 냄새 처럼 맞닥뜨려지는 것임을.
#2. 스마트폰, 수평적 비즈니스모델의 승리
스마트폰은 애물단지였다. 이통사업자 입장에서는 소수의 데이터 헤비 유저들을 위해 구색을 맞춘 계륵이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상황이 역전되었다. 2010년 SK텔레콤은 200만대, KT는 150만대의 스마트폰을 공급할 계획이다. 올해 새로 출시되는 단말기 중에는 피처폰(일반 휴대폰)을 찾아보기 어렵다.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본격 출시되는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는 2.5억대로 전체 휴대폰 중 20%의 비중을 상회하고, 2013년에는 그 비중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과 구글이 전면전에 나서면서 스마트폰의 선호도는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노키아, 삼성, 모토로라 같은 메이저 제조사들을 제치고 이들이 글로벌 통신시장의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안철수 교수는 ‘비즈니스모델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설명한다.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을 여전히 하드웨어와 하드웨어간의 싸움으로 보는데, 기존의 수직적 비즈니스모델에 도전하는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의 확산이 시장 트렌드를 바꿔놨다는 것이다. ‘개방’은 수평적 비즈니스모델의 핵심이다. 애플, 구글 등은 오픈소스 전략으로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S/W업체와 소비자들이 직접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개방형 비즈니스모델의 목표는 시장표준 장악이다.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협조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개방형 모델은 웹 2.0 시대의 정서와 부합한다. 안 교수는 세상이 3차원이니 사물을 볼 때도 3차원적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기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모델적인 측면, 문화적인 측면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관점 전환은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여 일상의 신화를 창조하는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죽음과 변용(Death and Transfiguration), 두 번 산다
병약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겨우 25세의 나이에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다. 60년 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84세의 고령에 나치협력혐의로 재판에 회부되는 위기에 몰렸던 슈트라우스는 나치전범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은 이듬 해 세상을 떠난다. 유언의 자리에서 그는 “죽음이란 것이 내가 젊었을 때 쓴 ‘죽음과 변용’하고 똑같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죽음 직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25세 때 작곡한 교향시 ‘죽음과 변용’ 악보에 리터는 이런 표제시를 썼다.
“ 돌연히 다시 찾아온 죽음의 그늘이 사나이를 잔인하게 흔들어 깨우고, 병자는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의 힘 사이에서 마지막 무서운 싸움을 벌인다. 그는 필사적으로 죽음에 대항해 보지만, 드디어 죽음의 마지막 철퇴가 가해졌다. 육신은 두 쪽으로 나뉘고 그의 눈은 죽음의 어두움으로 뒤덮인다. 그 때 사나이는 그토록 바라던 하늘의 힘찬 울림을 듣는다. 세계를 구원하고 인류를 정화시키는 그 소리를! ”
변용(transfiguration)은 본래 예수가 제자들과 헬몬산에 올랐을 때 예수가 광채를 발하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로 나아갈 것임을 드러낸 사건을 지칭한다. 그가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이기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듯 슈트라우스는 죽음의 상황에서 삶의 환희를 역설적으로 완성하는 변용을 그리고 싶었으리라.
두 번째 태어남이란, 중심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먼 길을 당도하기 위해, 캠벨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스튁스의 강물에 몸을 던져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