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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일 08시 12분 등록

칼럼 8. 사마천과 베토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데미안 - 헤르만헤세」

새학기에 올라와서 학급임원 선거가 있는 날. 장두호가 부반장이 되었다. 첫인상은 어린 나이에 꽤나 냉소적인 이미지였다. 전형적인 모범생 느낌으로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고고학자가 꿈인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부반장이 된 것을 보니 성격이 심하게 모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두호를 만난지 1달이 훌쩍 넘은 4월 어느 날 너무 피곤해보여 무슨 일이 있냐고 했더니, 등교하기 전에 수영을 다닌다고 했다. 아침 6시부터 1시간동안 수영을 하고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학교를 온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등교시간은 나보다 항상 일렀다. ‘대단한 녀석! 나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5월, 가정의 달, 따스한 봄날의 아침 조회시간이었다. 출석체크를 하는데 두호가 자리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아침마다 함께 등교를 하는 친구도 두호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먼저 왔다고 했다. ‘이상하다! 학교에 지각할 녀석이 아닌데...’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두호어머니의 핸드폰에 전화를 했다. 한참만에 통화가 되었다. 두호어머니는 어제 밤 집안에서 사고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걱정이 되어 물으니 어머니는 망설이다가 아버지한테 두호가 많이 혼났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에 갈 수 없겠다고 내일 꼭 보내겠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다음날 조회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니 두호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헉~ 이런! 깜짝이야’ 두호의 얼굴, 눈 주변에 파랗게 선명한 멍자국이 있고 여기저기가 긁혀있다. 교무실로 두호를 불렀다. 아빠한테 맞은 모양인데 아무리 잘못을 해도 저 정도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실 두호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무능력하고 제멋대로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 가득했다. 자신의 삶에 지친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호의 부모님은 별거중이셨다. 그날도 술을 드신 아버지가 집으로 와서 어머니를 때리려고 한 것이다. 이제 중학교 2학년, 두호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를 보호해야할 남자였다. 아버지에게 맞서다가 그렇게 심하게 맞은 것이다. 그 일로 두호는 경찰서에 가서 아버지를 고발했다고 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중학생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해야하는 상황이,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가슴 아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호는 이웃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가 행패를 부릴 때 마다 아래층 부부가 항상 도와주고 있다고 그날도 그래서 자기가 이정도였다고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 아이들이 이런 상황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럼 횡단보도에 있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다쳤다고 하겠으니 너도 그렇게 아이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날 나는 두호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중학교 시절, 아버지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불쌍했는지, 그런 중학교 시절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름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두호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두호에게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의 한 조각을 보았다. 그녀석이 그런 냉소적인 인상을 풍기며 공부를 하는 이유를 이제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그녀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작년에 두호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반이 아니기에 자주 만날 수가 없는데, 중3 대상으로 청소년 모닝페이지반을 운영하면서 다시 두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고고학자가 꿈이던 두호의 관심사는 1년 사이 더욱 다양해졌다. 클래식음악, 와인, 피아노, 등산, 미술 등. 특히 두호는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다. 아이들은 두호에게 제발 가사없는 지루한 음악 좀 듣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만, 항상 진지하게 클래식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 두호가 추천하며 보내준 클래식음악을 가끔 듣는데 참 좋다. 두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운명을 듣고 있으면 참 좋다고, 나중에 커서 카라얀 같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은 아이들에게 좌우명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두호의 좌우명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구절이었다.

사기열전을 읽으며 사마천이란 인물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 자꾸 두호가 떠올랐다. 중2 고고학자가 꿈이었던 아이, 중3 카라얀같은 지휘자가 되어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해 보고 싶고, 자신의 인생을 지휘하고 싶다던 아이. 지금 고1이 된 두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두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고고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여전하니?’ 바로 두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고학자의 꿈이 바뀌었다고 이제는 진로가 확실해졌다고 했다. 두호는 미술품이나 와인 경매사가 되어서, 디스토피아(dystopia:역(逆)유토피아라고도 한다.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맞다. 작년에 출근을 하는데 두호가 교무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그리고는 선생님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인터넷에 자신의 소설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200건이 넘었다고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가슴 벅차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올린 소설과 조회수를 보여준다. 모닝페이지를 하면서 동시성을 경험을 하는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일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 같다며 한껏 들떠서 이야기를 한다. 두호는 너무 쑥스러워서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당분간은 선생님만 알아달라고 당부를 하면서 교무실을 나섰다.

궁형을 얻었으나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고 사기를 쓴 사마천. 청각을 잃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베토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라는 <데미안>속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이들 모두는 꿈의 길로 자신을 인도하고 스스로 걸어간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우리 두호를 생각나게 하는 인물들이다.

두호의 꿈에 대해 전화통화를 하다가 문득 두호의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요즘 아버지랑은 어때?’ 두호는 너무나도 밝게 ‘환골탈태라고나 할까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렇게 사람이 변할 수도 있나 싶은데 너무 좋아졌어요. 이제는 같이 살아요.’라고 말했다. ‘참 다행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두호의 중학교 시절 아픈 기억들이 고등학교 시절 아름다운 추억들로 채워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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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5.03 08:47:43 *.67.223.154
그래그래,

"아무나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서 가슴안에 한송이 꽃이라도 피운적이 있는 사람이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FROM  OISOO

일빠 댓글...신난다.  두호 화이팅, 연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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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5.04 11:02:45 *.203.200.146
샘의 따스한 응원에 힘이 불끈~^^
정말 이쁜 꽃송이를 피워내는 일...
내가 먼저 피워낼 수 있으면 다른이가 피워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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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03 09:10:36 *.219.109.113
캬 ~ 컬럼 좋다.
아이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다.
다음 편에 어떤 아이가 등장 할까? 그런데 남녀 공학 아니야?
등장 인물이 맨날 남자네..... 연주 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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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5.04 11:23:59 *.203.200.146
지금은 남자중학교~ 일단 기억이 잘나는 것이 최근일이라 ㅎㅎ
예전 남녀공학 고딩들의 이야기도...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풀어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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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5.04 09:30:33 *.30.254.28
아, 좋다...두호의 꿈이 이뤄지길...
그 꿈을 응원하는 연주의 꿈도 이뤄지길..
연주는 선생님이 되길 참 잘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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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5.04 11:30:16 *.203.200.146
제가 아이들의 꿈을 응원할 때
아이들도 제 꿈을 응원해주더라구요~
그럴 때 가슴이 뿌듯해진다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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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04 11:00:52 *.236.3.241
연주같이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 주는 선생님들이 많으면 학교에
천복이 넘칠텐데 ㅎㅎㅎ 

다음편은 뭐야. 기대된다.
일연과 모짜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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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5.04 11:34:33 *.203.200.146
잘 읽어 줘야 하는데...
내 삶에 치어 못 읽거나...보여도 외면하거나...
그래서 부모 되기가...선생되기가...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하죠~
일단 내 삶이 바로서야...나의 아이들도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봐요. 부모나 선생이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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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5.04 15:43:36 *.116.154.76
오, 잘 읽었어. 두호를 보니, 내 생각도 나는군.

연주, 5일날 나랑 만나서 촬영해야해. 언니들은 모두 했다.

전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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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5.04 15:45:49 *.203.200.146
헉...언제들 다 하신거죠?
전화드릴께요~
어제 집에 도착하자마자 골아 떨어져서리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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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21:05:11 *.106.7.10
두호가 정말 힘들었을 상황을 벗어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래층 부부뿐만이 아니겠지. 아마 연주 샘의 힘이 가장 컸을지도 몰라
연주의 편지가 두호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연주야, 참 많은 복을 쌓고 있구나!
그래서 우리 막내가 그렇게 듬직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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