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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17시 01분 등록

한 동안 정신 없이 바빴다. 프로젝트를 동시에 두 개를 진행하게 되었고 또 교육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 모드를 바꿔가면서 부지런히 일했다. 오전에는 잠실로 출근해서 교육을 하고 오후에는 용인과 여의도를 오고 가는 강행군이었다. 일이 무난하기도 하고, 사람 사귀는 재미도 있고, 돈도 좀 더 벌 수 있어 일석삼조이지만 여유가 없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일을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고질적인 충동이 일어났다.

 

바다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면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일상이 권태롭고 바쁠 때는 누구나 떠나고 싶은 방랑의 욕구가 생긴다. 한 때는 책임감 없는, 철없는 짓이라고 폄하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부추기는 시대가 되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마페졸리는 방랑의 욕구는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으며, 그것은 잃어버린 성배, 혹은 하늘에 있는 별을 찾아 떠도는 욕망의 표현이고 무한의 손길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초원을 호령하던 몽골 유목민의 생활방식이 오히려 인간의 존재방식에 더 가깝다고 믿는다. 젊은 날,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간 인생길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했나

텅 빈 가슴속에 가득 채울 것을 찾아서

우린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끝없이 시작된 방랑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는 울었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하지만 떠남이 쉽지는 않다. 이 한 몸과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떠나고 싶어도 휴가를 여유 있게 내기도 쉽지 않다. 짧게 떠나는 여행은 오히려 갈증이 난다. 그리스로, 스위스로 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떠나지 못함을 아쉬워하게 된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떠나지 않고서도 일상에서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떠나고 싶은 욕구는 공간의 이동보다 현실의 불만족을 해소하려는 작용이 더 크지 않은가?

 

나는 요즘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아 책 순례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소설책이나 시집, 수필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꺼내 훑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읽어보고 상상해본다. 그들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나는 부다페스트의 침침한 골목길에서 여인들의 유혹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티베트 라다크 마을에서 소박한 마음과 자족적인 삶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매개로 나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얼마 전부터는 그 동안 미루어 두었던 철학 책을 다시 보고 있다. 살아갈수록 철학이 인생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이해할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읽고 있다. 상상하고 폭넓게 사유해보자. 이 내면으로의 여행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느낌을 조금 알게 되었다. 현실 너머의 현실은 분명히 존재하고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여행의 재미는 마치 나뭇가지가 어디로 뻗어나갈 지 모르는 것처럼 어떤 순간에 어떤 깨달음과 기쁨이 찾아올 지 모른다는 점이다. 계획된 여행보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영화와 음악을 통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반복은 지루하고 맛이 없다.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꾸준히 시도해보자. 여행이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새벽시장에서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출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밥 한 그릇이 너무 고맙고 나란 존재가 팔딱팔딱 뛰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얼마 전 좌석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작정 걷고 싶어서 한 정거장을 빨리 내린 적이 있었다. , 그런데 걸어가다가 20년 만에 절친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졸업 이후 다시 만난 이 기막힌 행운에 무척 놀랐다. 작은 변화가 예기치 않은 경험을 가져올 수 있다.


출장여행.jpg 

출장여행.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짬을 내 풍광이 좋은 곳을 찾아 구경하는 일은 별미를 먹는 것과 같다. 모든 여행은 출장이며 궁극적으로 귀향이다.

 

 

자신만의 성소를 찾아가자. 나에게 성스러운 곳은 산이다. 산에 오르면 속세를 벗어나 어릴 적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고갯마루 그늘에서의 막걸리 한잔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성당이나 절, 교회에 찾아가는 것도 좋다. 자연은 본디 성스럽고 종교적인 장소의 상징들 또한 마찬가지다. 성스러움의 체험은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한다.

 

삶이 고단하고 지치면 과감하게 일상에서 탈출하라. 떠날 수 없다면 일상에서 여행을 떠나보자. 매 순간이 여행이고 당신이 있는 그 곳이 바로 여행지다.

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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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
2010.06.30 11:00:43 *.219.138.90
오빠야, 한때는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내 삶이 고단하다 느낀 걸까,  그냥 알수 없는 마음이 내속에 늘 있었다. 그래서 떠나고 싶었고 탈출하고 싶었다. 
냠편은 나의 이 말에 '네가 욕심이 많아, 니 맘대로 되지 않으니 그런다'고 늘 말을 했지. 그래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정했던 나였지. 요즘들어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나를 가두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싶어. 그러면서 여행은 일상의 탈출이 아니란 명제를 얻었지. 여행은 일상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여행은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 그게 내가 깨달은 것이지. ㅋ
'매순간이 여행이고, 당신이 있는 그 곳이 바로 여행지다', 100% 공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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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7.02 02:14:11 *.154.234.5
그랬구나. 태희야.
너는 한결같은 버드나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 바닥에서 만난 사람들은 부적응자들 맞어.
특히 너는 그런데  나는 아직 좀 글허고 우리는 착한 부적응자.ㅋㅋ
난 아직도 내가 울산 출장갔을 때 너랑 너의 낭군님이랑 바다 앞에서 회 한사라, 너의 단아한 집에서 그림 한폭 봤던
그 기억이 또렷하다.
태희야, 신랑이 자주 해외 출장가서 외롭냐? 그럴땐 오빠를 생각해. 오빠..ㅋㅋ
보고잡다. 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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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0.07.01 18:25:51 *.35.254.135
음 저두 양희은의 한계령을 무척 좋아하고 잘 부른답니다.^^
그 노래를 깊이 좋아하는 사람 오랫만에 만나서 반갑고
담에 인연이 되어 소주한잔을 할 수 있다면 반주로 한계령을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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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7.02 02:19:30 *.154.234.5
이헌님, 제 어머니 고향이 순천이랍니다.
글구 제가 무지 좋아한, 근데 지금은 힘들어하는 이모가 여수에 삽니다.
그래서요, 올해 가기 전에 여수간다고 약속했거든요.
저  갈껍니다.
가면 이헌님을 꼭 봐야겠어요.
이유는 없구요. 그냥....은 아니고 노래 듭고 시퍼요.
제가 기타 가지고 가겠습니다.
전주에 사는 진철 총각도 대동하고..ㅋㅋ
만약 그때 보면 무지 반가울듯...
이건 나만의 착각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도 그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은데...
 어떡하라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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