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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0일 12시 03분 등록

진태는 내가 처음으로 정식 교사가 되어서 가르쳤던 학생이다. 정보산업고등학교의 3학년이었는데 키도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크고 완전히 인상파여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학생중의 하나였다. 사실 그 반의 짱이어서 진태가 한 번 인상을 쓰면 아이들이 슬금슬금 피하곤 했다. 진태가 나에게 어떤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한적이 없는데도 괜시리 그 녀석의 눈치를 보게 되곤했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노트정리를 하게 하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진태가 공부는 안 하면서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밝게 웃는다. ‘정말 이쁘죠 선생님’하고 말을 하는데 그녀석의 눈빛이 강아지의 촉촉한 눈빛 같은 느낌이었다. 으아~ 이런 덩치에 이런 인상에 저런 눈빛이라니 내가 선입견을 갖고 있었구나하는 마음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2학기가 되어 3학년 학생들이 수시원서를 쓸 때 쯤이었다. 진태네 반 문(나무문이었다)이 구멍이 나있는데 아이들에게 정황을 물어보니 진태가 주먹으로 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녀석이었군’이라는 생각과 예전에 보았던 진태의 촉촉한 눈빛이 함께 기억이 났다. 그날 수업엔 기물파손으로 담임선생님께 지도를 받으러가서 그 다음 시간에야 진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진태에게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거야 라고 말하면서 화가 난 이유를 물었다. 화가 난 이유는 의외로 엄마때문이라고 한다. 자기는 애견학과를 가고 싶은데 엄마가 결사 반대를 하고 원서를 쓰지 못하게 하셔서 문을 쳤는데 구멍이 날줄은 몰랐다고 한다.

진태는 외아들이었다. 그런데 진태가 가고 싶은 애견학과는 당시 서울이나 경기지역에 과가 많이 없어서 수도권으로 진학을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했다. 하지만 진태는 중학교 시절부터 주먹깨나 쓰고 많이 놀아서 원하는 과에 합격을 하려면 전남 목포에 있는 전문대학을 가야했다. 진태는 학교의 거리나 학교의 수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애견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진태가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는 애견학과에 남자가 가는 것도 보기 안 좋고 학교도 너무 멀리 있으니 차라리 대학에 가지 말라는데요.” 나는 진태 부모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본 진태는 다른 어떤 것을 할 때보다 자신이 키우는 개, 주변에서 보는 개, 세상에 있는 멋진 개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다. 부모님께서 원치 않으시지만 진태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진태에게 샘이 생각하기에 네가 애견학과에 가면 정말 잘 할 것이라 생각해. 네가 개를 이야기를 할 때만큼 신나하는 것을 본적이 없거든. 엄마를 꼭 설득시켜서 네가 원하는 과에 갔으면 좋겠어. 화이팅~”

결국 진태는 원하는 과에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진태는 부모님 몰래 지원을 했다고 한다. 진태의 엄마도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진태가 원하는 과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고 한다. 졸업식날 원하는 과에 입학해서 웃으면서 떠나는 진태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진태는 졸업을 하고서 어떻게 알았는지 일년에 몇 번씩 연락을 해왔다.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 또는 가끔 생각이 나면 결혼 언제하시냐며. 진태는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타고 각종 애견대회에 나가서 모든 상을 휩쓸기도 했다. 진태는 간혹 자신이 애견대회에 나가서 경기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태가 직접 훈련시킨 진돗개의 멋있는 자태와 당당한 진태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전문대학의 2년은 정말 빨랐다. 진태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장학생이었기에 관련 직종에 취업도 문제없이 빨리 했다.

몇 년 전쯤 진태에게서 요즘 어디에 계시냐며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성남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얼마전까기 성남에서 일하다가 일산으로 옮겼다고 성남에서 일할 때 한 번 찾아뵐 것을 그랬다고 말한다. 자기는 요즘에 스포츠용품 판매하는 업장에서 판매 및 관리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의 일은 내 소견으로는 애견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진태는 사회 생활을 해보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피부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애견관련 일을 하기 위해 지금은 돈을 벌기로 했다고 한다. 진태는 여전히 집인 하남에서 일산, 수원 등을 오가며 애견과 관련 없는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진태가 행복해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며 웃으며 연락을 해주는 그날을 그려본다.

살아남아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원하는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IP *.203.2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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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8.30 12:14:44 *.10.44.47
어렵네..
현재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우짜든간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야.
그 담에 뭐할 건지는 그때가서 생각하자는 거.
지금은 상상도 못할 더 멋진 이유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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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30 13:28:04 *.30.254.28
길을 찾았으니, 진태는 괜찮아.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잖니...
모든 것이 한번에 다 되면 무신 재미가 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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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8.30 21:59:44 *.212.98.176
금요일에 연주를 오랜만에 봐서 참 좋았다. 방학동안 힘들었을텐데 피부는 여전히 뽀얗더라.
내공의 힘인 줄 아뢰오 ㅋㅋㅋ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는 건  가능성을 떠나서 복 받은 인생같은데 ^^
아무 생각없이 지낸 세월과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에둘러 가는 시간은
만족도도 다르고 질적인 차이가 있으니까. 

가슴을 흥분시키는 일이 있으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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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9.01 00:45:08 *.131.127.50

원하는 일과 연관되거나 연관시킬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하게되면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남게 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반드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온다.

난 25년을 기다려서 ...  내 년에 한 판 붙을 거야...
어린 나이에 코치가 되면서 포기한 시합.... 꼭 할거야...
 '2010-2011 veteran world master's competi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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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lgari rings
2010.10.13 16:49:27 *.78.56.36
ds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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